<어리숙한 농부의 농사일기> (25) 추석맞이 대행사, 벌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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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년에 딱 한 번 보는 먼 친척들과 일 년에 딱 한 번 벌초를 위해 야산으로 향한다. ⓒ 김연미

흐르지 않는 강물을 상상한 적이 있던가. 흐른다는 건 사명이고 존재의 이유다. 흐르는 게 강물만이었던가. 시간도 흐르고, 그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도 흘러서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또 저만큼 흘러갈 것이다. 도저히 흐를 것 같지 않았던 여름날의 폭염도 어느 순간 피부에 와 닿는 공기의 서늘함에 허무해진 아침. 아들 딸 모두 대동하고 벌초를 나섰다. 나보다 앞서 흘러가 어느 야산에 누워있을 조상이라는 이름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뵈러 가는 것이다.

죽음과 삶에 한 몸으로 묶여 있던 이별이라는 슬픔이 저 홀로 흘러가버린 자리에는 무성히 잡초가 자라고, 사람들은 와서 아무렇지도 않게 그 잡초를 자르고 허물어진 산담을 고인다. 깨끗하게 정리된 산소에 절 한 번 하고 돌아서면 일년치 후대손으로서의 역할을 다 했다는 홀가분함이 주변을 산뜻하게 했을 것이다. 

그렇게 흘러내린 한 족보의 어느 지점에 오늘은 우리 가족이 서 있다. 물론 문중벌초를 하는 날이 따로 있기는 하다. 일 년에  딱 한 번 보는 먼 친척들과 일 년에 딱 한 번, 족보의 앞 페이지에 적혀 있는 이름의 묘소를 찾아 문중의 모든 남자들이 모여들어 벌초를 하는 날이다. 몇 군 데 흩어져 있는 산소를 벌초하고, 최근 조성한 가족공동묘지에서 마무리를 하고 나면 점심을 먹는다. 아침 새벽부터 남자들이 집을 나서면 집안의 여자들은 점심 준비를 했다. 예전에는 벌초날짜가 정해지면 여자들이 더 바빴다. 집안의 어느 대소사보다 더 많은 음식을 장만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인구의 감소는 매스컴에서만 오르내리는 게 아니라 집안의 대소사에서도 확연하게 체감되는 문제다. 갈수록 젊은 사람이 줄어들고, 그 몇 명 되지 않는 젊은이들마저 직장이다 타향살이다 해서 벌초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덕분에 점심준비는 집에서가 아닌 식당에서 차려졌고 집안 여자들은 느지막하게 정해진 식당으로 가서 같이 밥을 먹고 오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벌초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사람들이 줄었으니 일거리는 상대적으로 더 많아졌고 갈수록 산소는 늘어나고 있으니 일의 강도가 해마다 증가하는 것이다. 여기 저기 흩어져 있던 산소들을 한 곳에 모아놓았으니 그나마 예전보다 많이 수월해지기는 했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벌초를 할 수 있을까. 대책마련이 시급한 게 사실이다.

자식대가 끊기신 외갓집 묘소 세 곳과 시아버지의 묘소는 가족공동묘지로 이장되지 못했다. 다른 문중이라는 이유와 시어머님의 다른 생각 때문에 가족공동묘지에 가지 못한 묘소들은 문중 벌초 뒤 끝에 붙이기가 그래서 우리끼리 날짜를 따로 정해 벌초를 하고 있는 것이다.

육체노동의 개념을 모르는 아이는 호미질 몇 번 괭이질 몇 번에 벌써 힘든 기색이 역력하다. 조상이 무엇인지, 벌초는 왜 해야 하는지조차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예전처럼 할아버지 무릎에서부터 조근조근 설명을 들으며 자라는 것도 아니고, 집안에서조차 그저 추석 전에 어느 하루 시간을 내서 해내면 그만인 행사가 되어버렸으니, 모르는 게 당연할 수도 있겠다. 벌초를 왜 하는지, 여기 이분이 어떤 분인지 설명을 하려다 그만두었다. 어차피 설명을 한다 해도 아이들이 들으려하지도 않을뿐더러 나 역시,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 줄 만큼 깊이 있게 알고 있는 것도 없다.

역사의 물줄기는 수시로 변한다. 새로 만들어지고 가다가 없어지고, 앞을 가로막는 무언가에는 휘돌아서 가고, 더러는 고집스럽게 그 무언가를 뚫고 나가기도 한다. 지금 휘어져간다고, 어느 한 줄기가 스러져버렸다고, 혹은 새로운 물줄기가 생겼다고 노여워한다거나, 슬퍼하거나 기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가오는 추석명절, 그 명절을 준비하는 벌초가 지금까지 우리 역사의 본류를 담당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이게 영원히 이어질 거라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세심한 마음으로 들여다봐야하는 우리의 전통과 문화들을 다 감당하기에 이 세상은 너무 복잡하고 빠르게 변하고 있다. 흘러가는 시간과, 흘러가는 족보의 한 지점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의 일을 하면 그 뿐, 흘러온 과거의 길을 보며 흘러갈 미래의 가시밭길을 염려할 필요는 없다. 어느 길이든 처음은 모두 가시밭이었고, 자갈길이었으며, 무수한 시행착오 끝에 지금 이 길 하나를 마련한 것이니까 말이다.

말끔히 정리된 시아버님 산소에 나란히 서서 절을 했다. 남편과 내가 서고, 아들 옆으로 딸이 섰다. 두 번 절을 하고, 반절을 하는 내내 아이들도 남편과 나도 말이 없다. 그 약간의 침묵 사이 우리 어른들이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많은 이야기들이 아이들 마음속으로 아주 조금 전해졌다고 믿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 김연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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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미 시인은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 출신이다. 『연인』으로 등단했고 시집 『바다 쪽으로 피는 꽃』을 펴냈다. 2010년 제2회 역동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젊은시조문학회, 한국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최근 서귀포시 표선면 가마리에서 감귤 농사를 시작한 ‘초보 농부’인 그는 <제주의소리>에 ‘어리숙한 농부의 농사일기’를 통해 하루하루 직접 흙을 밟으며 겪은 일상의 경험들을 풀어놓을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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