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다큐멘터리 영화 <물숨>

예술은 시대를 반영해 각자의 형상대로 나타난다. 미술, 문학, 음악 등 분야를 불문하고 예술은 그 시대의 분위기, 사람들의 정서 나아가 시대정신을 선도적으로 반영해 표현한다. 일례로 지난해부터 광복 70주년, 국정교과서 논란, 한일 위안부 협상 강행 등 과거사와 관련한 사회적 이슈가 커지면서 영화 <귀향>, <동주>, <암살>, <덕혜옹주>, <밀정>, <인천상륙작전>과 같은 역사물이 잇달아 개봉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닐 것이다.

최근 제주 예술에 부는 바람은 ‘해녀’다. 제주해녀에 대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여부가 올해 말로 다가오면서 민관이 다방면으로 노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근래 집중적으로 미술·영화·사진 등 많은 예술분야를 통해 해녀가 제주도 안팎에서 소개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주목받는 결과물 중 하나는 바로 제주 출신 고희영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 <물숨>이다.

제주해녀를 소재로 한 <물숨>은 7년에 걸쳐 우도 해녀와 함께하며 그들의 삶을 카메라에 담은 작품이다. 앞서 그녀가 독립PD로서 수년 동안 제주해녀를 조사하며 만든 다큐멘터리 영상 <SBS스페셜-해녀삼춘과 아마짱>의 '스크린 버전 완결판'이라고 보면 된다.

29일 전국 개봉을 앞두고 여러 차례 시사회를 진행하며 호평이 이어지는 중, <물숨>을 미리 관람할 기회가 생겼다. CGV가 추석 연휴 특별히 서울 명동·압구정 CGV아트하우스(단편·독립영화 전용 상영관)에서 상영 기회를 마련한 것이다. 발 딛을 틈 없는 관광객 사이로 연휴의 절정을 느낄 수 있던 17일 오후 2시 명동, CGV 씨네라이브러리에서 <물숨>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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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물숨>의 한 장면. 사진 출처=네이버 영화. ⓒ제주의소리

영화 제목 '물숨'은 해녀들이 사용하는 단어다. 바다 속 작업 중에 숨이 남아있는 시간을 지나 자칫 위험한 상황이 됐을 때 그녀들은 ‘물숨 먹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물숨>의 영문판 제목은 ‘Breathing Underwater’다.

영화 배경은 2011년 우도, 4000여명 제주해녀 가운데 10%에 가까운 350여명이 우도에서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금이야 무법자 같은 사륜 오토바이와 밀려드는 관광객으로 섬의 미래까지 걱정해야 하는 지경이지만, 우도는 ‘섬 속의 섬’이라는 지리적 여건 상 어느 곳보다 해녀에게 생계를 의존했을 공간이다. 생활력 강한 제주해녀 중에서도 우도해녀를 택한 것은 이러한 배경도 포함돼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개봉 전부터 여러 면에서 주목을 받았다. 후반 작업 포함 제작에 7년 넘는 시간을 쏟아 부었고, TV드라마 <여명의 눈동자>·<모래시계> 작가로 널리 알려진 송지나가 원고를 썼으며, 명성 높은 재일제주인 2세 음악인 양방언이 음악감독을 맡았다. 여기에 항공·수중촬영에도 공을 들이는 등 여러 노력을 기울인 덕에 올해 열린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2관왕을 차지하며 이슈를 일으켰다. 

화려한 명성과 노력이 모아진 덕분에 많은 사람들은 감독이 과연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관심을 보였다.

<물숨>은 러닝타임 1시간 10분 동안 해녀가 무엇을 하는 직업인지, 어떻게 일하는지 관객들에게 설명하는 구성을 선택했다. 숨 참는 실력에 따라 작업 공간이 구분되는 해녀사회, 사계절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그들의 노동, 직업으로서의 장단점과 고충 등을 친절히 보여준다. 덕분에 제주와 해녀에 대해 모르는 사람도 영화가 끝날 때면 ‘해녀가 이런 사람들이구나’라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끔 필요한 정보를 요약·전달한다. 흡사 ‘제주해녀 소개 영화’로 부를 만하다.

자칫 밋밋할 수도 있는 이런 구성은 영상미가 더해지면서 흥미를 잃지 않는다. 높은 하늘 위 우도 풍경과 20미터 바다 속 모습까지 담아낸 수려한 화면은 영상 매체인 ‘영화’로서의 완성도를 높이면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기 충분하다. TV다큐멘터리 <차마고도>, 영화 <천년학>·<천년여우 여우비>, 게임 <아이온> 등 이미 여러 차례 작업을 통해 검증된 양방언의 음악은 다시 한 번 제 실력을 입증한다. 특히 콧등이 짠해지는 영화 말미에서 흐르는 음악은 애잔한 감정을 적절히 표현하며 오랫동안 여운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생생한 삶의 속살은 <물숨>이 가지는 가장 큰 매력이다. 그것은 어떤 실력, 자본으로도 얻을 수 없고 오로지 ‘시간’이란 노력을 기울일 때 드러나는 것이기에 더욱 빛난다. 아들 대신 손자·손녀를 키우는 늙은 해녀, 최후의 해녀 세대로 남을 수 있는 50대 젊은 해녀들의 현실적인 고충, 바다 속에서 숨진 어머니 해녀 영정사진 앞에서 통곡하는 딸 해녀의 눈물은 고희영 감독이 그들과 부대끼며 지낸 7년이란 시간 없이는 카메라에 결코 담을 수 없다. 자녀 걱정이 가장 앞서고 돈 욕심도 있는 모습에서 해녀는 평범한 우리네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주지시킨다. 영화는 포장과 이미지를 벗어던진 있는 그대로의 해녀를 보여주며 제주해녀가 환상 속의 존재가 아니라고 말한다. 

딸, 어머니, 동료를 삼킨 그 바다를 다시 들어가야만 하는 해녀의 운명은 아름답기보다는 오히려 비극에 가깝지만, 무엇보다 그런 여성들이 생을 이어왔기에 지금의 제주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물숨>은 내비친다. 영화의 마지막 '제주해녀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희망한다'는 자막은 자신을 있게 한 수많은 어머니 해녀들을 위한 감독의 진심 어린 헌정일 것이다. 

성능이 현격히 떨어지는 카메라로 촬영한 일부 영상이 삽입된 부분은 '옥의 티'지만 앞서 말했듯이 <물숨>은 훌륭한 해녀 소개 영화로 부족함이 없다. 제주와 인연이 있는 모든 세대들은 작품에서 반가움, 애틋함, 놀라움, 신기함 등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오멸 감독의 <지슬 2-끝나지 않은 세월>이 영상, 음악과 같은 요소가 제법 수준을 갖추면서 독립영화라는 한계를 넘어 제주4.3을 많은 이들에게 소개했듯이, <물숨>도 외형적인 요소를 탄탄히 갖췄기에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더욱 깊게 다가간다. 메시지만큼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지느냐. 중요한 시사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상업영화라는 한계로 인해 29일 전국 개봉부터 과연 얼마나 많은 스크린에 걸릴지 쉽게 장담할 수 없다. 영화 시설이 적은 제주지역은 더욱 그렇다. 제주해녀를 다룬 영화를 제주에서 만나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많은 도민들이 영화 <물숨>을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만약 메가박스 제주·아라, CGV제주, 롯데시네마 제주·서귀포에 간다면 '영화 <물숨>이 여기서 개봉하냐'고 한 번쯤 물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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