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밥상 이야기> (9) 고등어가 마농지를 만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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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어와 마농지. ⓒ 김정숙

인생사에도 고등어 같은 사람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맛있고 영양가 좋고 비싸게 굴지도 않는 사람.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만만해서 좋은 사람. 성질 급해서 빨리 상하는 단점이 오히려 인간적인 사람. 늘 궁핍한 어머니 장바구니도 은근슬쩍 고기냄새를 풍겨주던 고등어. 그런 고등어 같은 사람 있었으면 좋겠다.

어려웠던 시절에도 제주 사람들에게 생선류는 친근하고 자주 볼 수 있는 식품이었다. 지금은 황금어족이 된 갈치, 한치도 쉬웠다. 고등어는 더 쉬웠다. 싱싱하면 국 끓이고, 조금 물이 갔다 싶으면 조림하고, 여유 있으면 원초적이고 자연적인 저장법으로 소금해서 말린다. 특히 여름내 물린 마농지를 넣고 조린 고등어는 인기였다. 마농지 때문에 고등어가 맛있어 진 건지, 고등어 때문에 마농지가 맛있어 진 건지는 모르겠다. 고등어는 고등어대로 마농지는 마농지대로 제 맛을 냈다. 고등어에 마농지와 마농지를 담았던 간장으로 간하고, 풋고추 큼직하게 잘라 넣고 참기름 조금 쳐서 조린다. 참기름보다 유채기름을 더 많이 먹었다. 비주얼은 그냥 심심해 보인다. 무 깔고 고춧가루를 비롯한 갖은양념을 한 요즘 고등어조림과는 다르다. 민낯과 화장한 얼굴의 차이처럼 어느 게 더 좋다는 것은 개인의 취향이다.

제주도 사람들은 생선조림에 많은 양념을 하지 않는다. 좋은 생물에 덧씌울 양념은 필요치 않았고 시간이나 경제적 여건이 충분하지 못한 데서 탄생한 문화다. 성의 없음이 절대로 아니다. 점점 단순하게 조리한 음식이 좋아 지는 건 나이를 먹는 때문일까. 생선을 생선 맛으로만 먹고 싶은 아집일까.

고등어는 찬바람과 친한 어족이다. 찬바람 불 때가 맛있다. 굽기 보다는 국이나 조림으로 많이 먹었다. 요즘은 구이나 조림이 대세다. 머리, 꼬리 다 떼고 살만 떠내서 굽기 좋게 냉동 포장한 제품은 이제 전국구다. 그래도 먹었던 입은 어디가지 않는 법. 소금 간 하고 찬바람에 하루쯤 말려 구운 생물 고등어 맛을 따라 올 순 없다. 마르는 동안 맛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말리는 게 여의치 않으면 뚜껑을 열고 냉장실에 하루 이틀 두었다가 굽는다. 싱싱하면 냉장실 냄새를 크게 해치지 않는다. 다소 번거로운 일이지만 내겐 기다림을 보상받는 즐거운 일이기도 하다. 
 
요즘은 어족들도 계절을 무시 할 때가 많다. 제철이 아닌데도 풍년을 이루는가 하면 손꼽아 기다린 계절이 돌아와도 가난한 바다가 있다. 미세먼지 주범이라는 황당한 풍문 때문인지 올해는 소비가 뜸하다고 한다. 꼬리를 치켜세우고 금방이라도 바다로 튈 것 같은 고등어가 콧방귀를 뀐다. 이런 날 집에 마농지가 남았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 김정숙(시인)

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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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 시인은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출신이다. 200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에서 당선됐다. 시집으로 <나도바람꽃>을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30여년 동안 제주도농업기술원에서 일하다 2016년 2월 명퇴를 하고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에서 귤 농사를 짓고 있다. <제주의소리>에 ‘제주 밥상 이야기’를 통해 제주의 식문화를 감칠맛 나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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