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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의 외로운 싸움, 공생의 해법은 없나

김연미 33383331@hanmail.net 2016년 10월 01일 토요일 10:25   0면

<어리숙한 농부의 농사일기> (27) 그물망으로 해바라기를 감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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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물망으로 감싼 해바라기. ⓒ 김연미

키 큰 해바라기 하나 우뚝 서 있다. 과수원 입구 길가, 작년에 심었던 해바라기 씨를 거두었다가 올봄 다시 뿌린 곳이다. 내심 작년보다 더 풍성한 결실을 기대 했었는데, 달랑 이거 하나 남았다. 다른 게 몇 개 있기는 했지만 제대로 크지도 못하고, 풀숲에 묻혀 있다가 어느 순간 빈 쭉정이만 남아 있었다. 관심을 덜 준 탓이리라.

저 혼자 나고 자라서 크고 고운 꽃을 피우더니 빈틈없이 씨앗을 품었다. 어느 일류 기하학자가 그리더라도 따라오지 못할 완벽한 나선형을 그리며 제법 실한 씨앗들이 박혔다. 아직은 덜 여문 것인지 씨앗 끝에 달린 꽃술이 다 떨어지지 않았다. 저게 떨어지면 수확을 해야지. 유일하게 남은 내 가을걷이 대상을 바라보며 수확이 될 때까지 온전할까 하는 의문이 든다. 바람이나 태풍 같은 기후 걱정보다 새들이 더 걱정이다. 풀숲에 묻혀서 꽃을 피웠던 작은 해바라기들은 이미 그들에게 씨앗을 몽땅 털린 상태다. 씨앗을 물었던 빈 잇몸들만 앙상한 채 풀숲에 쓰러진 해바라기 사체가 민망할 지경으로 말이다.

사실, 새들과의 전쟁은 농부가 치러야할 가장 지난한 싸움중 하나다. 새들뿐 아니라 노루나 족제비들도 농부들이 가꿔놓은 농작물을 망쳐 놓는 주범중의 하나. 해바라기를 비롯한 콩 등의 씨앗을 뿌리면 꿩 같은 산새들이 다 주워 먹어 싹을 피울 게 없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새들의 눈을 피해 씨앗을 일일이 다 흙에 묻으며 파종을 해도 어떻게 아는지 땅속에 있는 씨앗까지 파먹는다고 했다. 올 초 하나하나 땅을 파가며 심은 내 해바라기 씨앗, 그 발아율이 적은 것도 아마 이런 이유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실제로 작년에 심었던 보리콩은 꽃까지 어여쁘게 피고 난 뒤 토실토실 열매가 맺히기 시작하자 정말 누가 와서 손으로 까먹은 것처럼 꼬투리들이 까졌다. 처음에는 까치가 와서 그랬나 했지만 지금은 족제비 종류가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을 해본다. 결국 덜 익은 콩꼬투리 몇 개 딴 것 외에는 아무 것도 남아 있는 게 없었다. 고구마 줄기 몇 개 묻었더니 나보다 더 열심히 고구마 이랑으로 출근하는 꿩과도 안면을 텄다.

어느 봄이던가. 푸른 보리밭에서 그림처럼 단란하게 놀고 있는 노루 가족을 본 적 있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푸른 융단처럼 깔린 보리가 노루의 등을 푹신하게 받쳐 주고 새끼 노루들은 마냥 신나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천진난만 그 자체였다. 보리밭 안에 평평한 운동장이 생겼다. 빙그레 웃음이 맺히다 동시에 드는 탄식, 아, 저걸 어쩌나... 자식처럼 키운 보리가 하루아침에 못쓰게 된 걸 보는 농부의 마음이 고스란히 내게 전달되는 순간이었다. 

생태계 보존 운동의 성과, 그 반대급부에 선 농부들의 현실이다. 어떤 이론을 갖다 대봐도 생태계보존의 깃발 아래서 농부들의 입장을 대변해 주는 이는 없다. 온갖 오해의 눈초리 아래 야생동식물과의 싸움을 외롭게 하고 있는 농부들. 공존 공생의 해법은 없는 것인가.

버려진 그물망 쪼가리를 주워와 해바라기를 감쌌다. 혹시 수확기를 놓쳐 자연적으로 떨어져버리는 씨앗도 받고, 새들로부터의 방어막도 칠 겸 해서다.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딴에는 정성을 들여 그물을 쳤으나 모양이 영 우습다. 그런 나를 보고 남편이 혀를 끌끌 찬다. 새들이 와서 좀 먹으면 어떠냐는 의미다. 그러나 하나 남은 해바라기를 지키기 위한 내 행동에 무리가 있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미 많은 해바라기 씨앗이 새들의 먹이가 되었고, 이제 이 해바라기는 유일하게 남은 내 올해 가을걷이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무거워질 대로 무거워진 머리를 더욱 깊숙하게 숙인 해바라기가 가을 하늘을 등지고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 김연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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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미 시인은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 출신이다. 『연인』으로 등단했고 시집 『바다 쪽으로 피는 꽃』을 펴냈다. 2010년 제2회 역동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젊은시조문학회, 한국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최근 서귀포시 표선면 가마리에서 감귤 농사를 시작한 ‘초보 농부’인 그는 <제주의소리>에 ‘어리숙한 농부의 농사일기’를 통해 하루하루 직접 흙을 밟으며 겪은 일상의 경험들을 풀어놓을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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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의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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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정기 2016-10-02 00:02:44    
와 닿슴다요.구절 구절이....이 귀농인도 꼭 같이 당하고? 느꼈으나 글발 약해 표현치 못한 사연들 들 들이요.소리에 계속 올려 주이소~ 예!

1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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