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밥상 이야기> (10) 갈치호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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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치호박국. ⓒ 김정숙

호박이 익어 가면 갈치가 맛있어진다고 한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갈치와 호박의 조합은 이렇게 타고난 천생연분이다. 조선호박은 척박한 화산회토에서도 잘 자라는 채소다. 갈치도 제주에서는 흔한 생선이었다. 갈치 맛이야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 갈치가 가을로 들어서면 더 맛있어진다. 잘 익은 호박이 맛 제대로 든 갈치를 만나 가을은 초입부터 풍성했다. 호박국은 백번 눈으로 봐서도 모른다. 먹어봐야만 그 맛을 안다.

문화가 관광자원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던 이천년대 초쯤으로 기억한다. 지역축제와 문화관광 컨설팅 전문가들과 만남을 가졌다. 30대와 40대인 세 사람은 제주가 좋아 어른이 돼서도 틈만 나면 내려온다고 했다. 지금은 사라진 제주모습도 제법 많이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문화자원 중에서도 음식은 일 순위다. 점심으로 갈치국을 제안했다. 처음 듣는다며 어떻게 갈치로 국을 끓이느냐, 그것도 호박을 넣고... 나름 전국의 맛있는 음식을 두루 맛보았다는 그들은 전문가들답게 흔쾌히 체험을 결정지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서귀포시내에 있는 조그만 H식당을 찾았다. 지역사람들에게는 꽤 소문난 갈치국 음식점이었다. 예상대로 그들은 갈치국에 반해버렸다. 그 뒤로도 그 사람들의 갈치국 사랑은 지속되었다. 갈치국이 맛있는 음식점을 찾으면 알려주기도 하면서.

국을 끓이는 갈치는 싱싱해야 한다. 조림은 양념으로 덜 싱싱함을 감출 수 있지만 국은 아니다. 또한 갈치는 마리당 400~500g정도는 되어야 맛있다. 그 이상과 그 이하로 나뉘는 갈치 가격은 차이가 크다. 클수록 값을 쳐준다. 갈치는 냉동해서 시간이 흐를수록 살이 푸석푸석 하고 맛이 떨어진다. 제철 거라 해도 냉동저장을 오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갈치호박국의 재료는 갈치와 호박, 얼갈이배추, 마늘, 풋고추다. 물이 끓으면 호박을 넣어 반쯤 익힌다. 늙은 호박이나 단호박 다 좋다. 그런 다음 손질한 갈치를 넣고 한 번 끓으면 배추와 납작하게 썬 마늘을 넣는다. 배추가 살짝 익으면 집간장으로 간하고 다진 풋고추를 곁들인다. 초록과 주황, 은색이 조화롭다. 애써 꾸미지 않아도 맛과 모양이 화려한 국이다. 

일 년 열두 달 갈치호박국을 먹을 수 있지만 그 맛이 호박이 익는 계절만큼 하겠는가. 호박처럼 그저 우리 곁에 풍성하게 머물 줄 알았던 갈치가 ‘제주 은갈치’라는 새 이름을 얻으면서 가까이 하기엔 먼 갈치가 되었다.

새벽부두에 가면 경매장 한 켠 도시로 가기위한 아이스박스포장이 분주하다. 치솟는 갈치 인기가 식을 줄을 모른다. 그래서인지 옛날 갈치보다 더 맛있다. 인기는 한 방에 무너지는 생리를 가진다. 그 몸값 오래오래 지녔으면 좋겠다. 다만 갈치가 제주바다를 외면하지 않기를 기원한다. / 김정숙(시인)

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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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 시인은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출신이다. 200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에서 당선됐다. 시집으로 <나도바람꽃>을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30여년 동안 제주도농업기술원에서 일하다 2016년 2월 명퇴를 하고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에서 귤 농사를 짓고 있다. <제주의소리>에 ‘제주 밥상 이야기’를 통해 제주의 식문화를 감칠맛 나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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