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세통Book世通, 제주읽기] (31) 존 롤즈 『정의론』/이유선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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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롤즈 『정의론』황경식 옮김. 이학사. 2011년.
성실하게 살다보면 언젠가는 인간다운 삶을 살 줄 알았다. 비록 상아탑의 유령 취급당하는 시간강사로 떠돌면서 살아온 삶이지만 강단에서는 늘 학생들에게 다른 사람을 사람으로 대할 것을 요구했다. 다른 사람은 네가 이겨야 할 경쟁상대가 아니라고, 너의 이익을 위해서 희생시켜도 좋은 수단이 아니라고, 네가 함부로 무시하거나 경멸해도 되는 대상이 아니라고, 그리고 그 사람의 고통이 너의 삶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고. 

그러나 그 학생들이 그와 같은 가르침에 따라서 살고 있으리라는 순진한 믿음을 갖기에는 내 자신의 삶이 그런 삶과 거리가 멀다. 매일 매일의 먹을거리를 구하는 일과 편하게 잠들 수 있는 장소를 확보하기 위한 고단한 삶은 타자의 고통에 대해 무감각해지거나 애써 외면할 것을 요구한다. 내 새끼를 굶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남의 자식이 얼마나 배를 곯고 있는지 돌아볼 여유가 없다. 크건 작건 돈이 걸린 거래를 하게 될 경우에는 상대방이 나를 등쳐먹는 사기꾼이라고 가정하지 않으면 바보 취급을 받는다. 혹여 상대방으로부터 어떤 경제적인 이득을 취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면 내 자신이 성취한 전리품에 도취되어 그가 입었을 손해에 대해서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학교를 졸업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든 제자들도 나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모두는 모두에 대해 사기꾼이며, 서로를 위한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얼마 전에 고위 공직자가 ‘대중은 개, 돼지’라는 영화 대사를 실제로 진지하게 말씀하시는 바람에 잠시 고생을 하셨다. 나를 포함한 개, 돼지들은 매우 분노하긴 했지만 높으신 분의 통찰에 감히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었다. 늘 부족한 먹이를 쟁취하기 위해서 상대방을 언제라도 물어뜯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삶이 개, 돼지의 삶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먹을거리와 잠자리에 대한 걱정으로 충혈된 눈을 부릅뜨고 먹잇감을 찾아 헤매는 삶에서 인간의 체취를 맡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경쟁을 통해 나보다 약한 자의 것을 빼앗는 것은 옳은 것이고, 이긴 놈이 다 가져가는 것이 정당하다는 규범을 마음 깊이 새기고 있는 한, 결코 인간의 길로 도약하지는 못할 것이다. 약육강식은 금수의 길이지 인간의 길은 아니다. 생물학적인 생명을 부지하는 데 전력을 쏟아야 하는 삶을 사는 한 개, 돼지로 죽을 수밖에 없다. 

2. 공정한 사회를 위한 사고실험
롤즈의 『정의론』은 우리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요건을 성찰한 책이다. 흥미롭게도 이 책은 소련과 미국이 냉전구도 속에서 이데올로기 경쟁을 벌였던 1970년대에 등장했다. 그 시기는 공산주의는 악이고 자유민주주의는 선이라는 도식이 진리로 간주되었던 시기이기도 했지만, 가치나 규범의 문제를 철학의 문제 영역에서 배제했던 분석철학 때문에 사회철학이나 정치철학의 논의가 학계의 주류로 등장할 수 없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롤즈는 이 책을 통해 제한적이긴 하지만 소위 자유민주주의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점을 드러냈고, 이후 로버트 노직이 롤즈의 재분배론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면서 본격적인 자유주의 정치철학 논쟁에 불을 지폈다.

롤즈는 국내에서 대히트를 쳤던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졌기 때문에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철학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자유주의 정치철학은 그저 재분배론이나 정의론의 관점에서만 언급되기에는 고민의 깊이가 남다르다. 경제적인 재분배의 문제만 해결되면 혹은 공정으로서의 정의의 개념만 현실화되면 자유민주주의는 흠잡을 데 없는 정치 체제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데 그의 관심이 있었다고 말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그는 자유주의자로서 근본적으로 개인의 자유가 실현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에 대해 고민했다. 자유주의자에게 자유를 실현한다는 이야기는 한 개인이 자기 나름의 인생 목표에 따라 자신의 삶을 완성해 갈 여지를 보장할 사회적 조건을 만드는 것과 분리될 수 없다. 각각의 개인은 고유한 사적 영역에서 자신의 삶을 돌볼 수 있어야 하고, 그의 완성에 대한 추구가 타인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 한 사회는 그 영역이 부당하게 침범되는 일이 없도록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롤즈가 이 책에서 재분배론에 대해 언급한 것은 개인의 경제활동의 자유만을 강조하는 시장주의자들에게 사회구성의 원리를 내맡겼을 때 각 개인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되는 결과가 귀결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소련과 미국의 냉전구도 속에서 이데올로기 경쟁은 중앙집권적 계획경제 대 시장질서라고 하는 경제체제의 정당성의 문제와 관련이 있었다. 전자는 관료주의와 부정부패를 낳음으로써 몰락해 갔고, 후자는 능력주의(Meritocracy)로 나아감으로써 사회를 무한경쟁의 정글로 만들었다. 무력한 개인은 전체주의적인 폭력에 노출되거나, 약육강식의 정글에서 희생되어야 했다. 롤즈의 자유주의적 대안은 시장 질서를 유지하면서도 개인의 사적인 공간을 확보하는 방법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 

주지하다시피 롤즈는 모든 사람이 합의할 수 있는 사회구성의 원리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믿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옳다고 믿는바가 다르고 추구하는 삶의 목표 역시 다르지만, 그 사람들이 각자의 특수한 처지를 떠나서 서로의 입장이 되어 볼 수 있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면 최소한도로 합의할 수 있는 몇 가지 원리를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은 물론 현실 공간에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롤즈는 ‘원초상태’라는 가상의 공간을 상정한다. 거기서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나면서 가질 수밖에 없는 유·불리한 조건들을 모두 내려놓은 채 사회구성의 원리를 합의하고자 한다. 원초상태에서 작동한다고 가정된 ‘무지의 베일’은 개인의 후천적인 우연성의 요소를 배제하기 위한 장치이다. 각자는 내가 어떤 자질을 가지고 태어났는지, 또 어떤 부모를 두었는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장애가 있는지 없는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나에게 불리하지 않을 사회 구성의 원리를 합의하고자 한다. 그 사람이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아마도 그런 상황에서 그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원리에 합의하려 할 것이다. 

이런 사고 실험을 통해 롤즈가 도출한 원리는 다음의 두 가지이다.
“첫째, 각자는 다른 사람들의 유사한 자유의 체계와 양립할 수 있는 평등한 기본적 자유의 가장 광범위한 체계에 대하여 평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
둘째,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은 다음과 같은 두 조건을 만족시키도록, 즉 (a) 모든 사람들의 이익이 되리라는 것이 합당하게 기대되고 (b)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된 직위와 직책이 결부되게끔 편성되어야 한다.“(105쪽)

문장이 복잡해서 그 뜻을 단번에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첫 번째 원리는 평등한 자유의 원리라고 불리는 것으로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자유를 누려야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 원리는 소위 차등 원리로서 경제적 불평등은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될 때에만 용인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이 두 번째 원리는 시장질서가 정의롭지 않다는 것을 함의하는 것으로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롤즈는 “모든 사회적 가치들—자유, 기획, 소득, 재산 및 자존감의 기반—은 이들 가치의 전부 또는 일부의 불평등한 분배가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한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이익을 주지 않는 단순한 불평등은 부정의”(107쪽)라고 주장한다. 

롤즈의 이런 주장에 따르면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의 CEO들이 가져가는 임금은 모두가 부정의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얼마 전에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제안한 최고임금이 최저임금의 30배를 넘지 않게 해야 한다는 법안이 공론화되지 못한 점은 매우 아쉽다. 이런 상황은 아마도 한국 사회가 능력주의에 지나치게 순응하여 능력 있는 분들의 몫을 감히 왈가왈부하지 못하게 된 탓이거나, 아니면 롤즈가 위에서 말한 ‘자존감의 기반’을 평등하게 분배받지 못한 기간이 오래되어 나처럼 스스로를 개, 돼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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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유선 교수

현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고려대학교 철학과 및 동대학원 졸, 철학박사
전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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