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밥상 이야기> (11) 꿀오미자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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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꿀오미자차. ⓒ 김정숙

곱게 늙는 감나무처럼 가을비가 내린다. 온전히 귀 기울여야만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를 지니고 막둥이 마농꽃을 씻고 있다. 이렇게 여러 날을 두고 내리는 비가, 연적 같다. 밖을 보면 세상 마음이 편안해 지다가도 이제 수확을 기다리는 일터를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지끈 복잡하다.
 
이런 날은 따뜻한 오미자차가 제격이다. 눈 내리는 날 만큼은 못하지만 이래저래 복잡한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 달고, 쓰고, 시고, 짜고 매운 맛을 한데 버무린 붉은 차를 삼키면 전신이 뜨거워 온다. 우리 삶이 이런 맛인 걸!

식품보다 한약재로 더 많이 알려진 오미자는 그 이름처럼 다섯 가지 맛을 지닌다. 한라산이나 태백산 등 깊은 산에 사는 덩굴성 식물로 빨갛게 익으면서 가을의 시작을 알린다. 한라산에는 붉은 오미자와 함께 흑오미자가 있어서 그 명성이 높았다. 지금도 제주특산 상품에는 오미자가 있다. 한라산국립공원에서의 채취가 불법인 만큼 이제는 재배로 그 자리를 대체한다.

붉은 오미자는 재배기술이 정립되어 제주는 물론 문경이나 장수 등 육지지방에서 더 많이 생산되며 그 명성을 쌓고 있다. 반면 흑오미자는 까다롭다. 잘 열리지도 않고 재배기술도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취미로 재배한다면 열려도 되고 안 열려도 되지만 ‘업’의 개념으로 가면 농부의 땀을 보상 할 수 있어야 재배가 가능하다. 그나마 아쉬운 대로 그 자리를 붉은 오미자로라도 채울 수 있어 기술의 발전을 고마워 할 따름이다. 

다섯 가지 맛 중에는 신맛이 가장 세다. 상큼한 신맛이다. 여기에 천천히 잘 음미해야만 알 수 있는 짠맛, 쓴맛, 매운맛 그리고 단맛이 어우러지면서 향과 함께 깊은 특유의 오미자만의 맛을 낸다. 오미자는 말렸다가 우려내어 차, 음료, 양갱 등 여러 가지로 활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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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미자. ⓒ 김정숙

요즈음은 꿀이나 설탕이 흔해서 생 오미자를 당에 절여 두었다가 그 액을 걸러내서 쓴다. 발효액을 만드는 식이다. 이 때 당은 오미자가 상하지 않게 거의 오미자와 같은 무게로 넣어야 한다. 꿀을 사용 할 경우는 설탕량 보다 20% 정도는 더 넣어야 한다. 꿀은 설탕만큼 달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꿀은 또한 자체 풍미가 있어 오미자 향을 방해하기도 한다. 취향대로 꿀과 설탕을 잘 섞어 쓰면 좋겠다.

3개월쯤부터는 조금씩 오미자액을 떠내어 이용 할 수 있다. 가을에 담그면 이듬해 봄까지 그렇게 이용하다가 더워지면 걸러내서 액만 냉장보관 한다.

오미자차를 마시며 내리는 눈을 감상해 보라. 겨울은 하나의 창밖 사치품에 불과하지 않으리. 여름엔 시원한 음료로 그만이다. 진한 분홍빛에 새콤달콤한 맛이 눈과 혀를 사로잡는다.

육지 지방에서 그 빛을 발하고 있는 오미자가 부럽다.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제주 오미자. 예쁘고, 성품 좋고, 재주 많은 옆집 새각시를 몰라보고 있는 것만 같다. 돌하르방 병에 담긴 오미자차도 좋지만, 오미자를 통한 오감만족을 파는 곳 어디 없을까. 이 가을, 제주 오미자차의 변신을 보고 싶다.

유리병에 담가 놓은 오미자차를 본다. 가족들을 위하여 특별한 뭔가를 준비한 거 같아 뿌듯하다. 제주에 제주다운 음료, 여기 하나 추가요! / 김정숙(시인)

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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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 시인은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출신이다. 200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에서 당선됐다. 시집으로 <나도바람꽃>을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30여년 동안 제주도농업기술원에서 일하다 2016년 2월 명퇴를 하고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에서 귤 농사를 짓고 있다. <제주의소리>에 ‘제주 밥상 이야기’를 통해 제주의 식문화를 감칠맛 나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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