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밥상 이야기> (14) 접작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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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접작빼국. ⓒ 김정숙

비거스렁이, 가을비 다녀 갈 때마다 기온이 반 뼘씩 내려간다. 겨우내 소 먹일 꼴 해놓고, 가을걷이로 일손이 바빠지는 계절, 이렇게 비거스렁이 하는 날이면 제주 아버지들은 돼지 추렴을 하셨다.

여럿이 합세하여 살아 있는 돼지를 눈대중으로 흥정한 다음 사서 잡는다. 고기며 갈비며 원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서 팔고, 내장이며 뼈, 부스러기로 남은 고기들은 골고루 나누어 가지고 고기값을 분담했다. 잡아서 나누다 보면 수고비는 고사하고 비싼 고기값을 치를 때가 있는가 하면 추렴 재미와 함께 잡다한 부속물들이 그냥 생기는 날도 있었다.

요즘 전문적인 도축과 달리 옛날 추렴이나 경조사 때 잡는 돼지는 여러 가지 뼈를 말끔하게 자르고 고기와 분리해 내지 못했다. 등뼈와 갈비도 고기를 붙인 채 적당히 나누었다. 제사나 집안 행사를 앞두면 아버지는 등뼈가 붙은 갈비를 사 오신다. 고기를 적당히 발라내 따로 쓰고 뼈는 모아서 푹 고아낸다. 여기에 무나 배추를 넣고 끓인 국이 ‘접작빼국’이다. 갈비뼈와 연결된 등뼈 무리를 ‘접작빼’라 했다. 무를 넣고 담백하게 끓인 국은 갱으로도 인기였다. 특히 등뼈와 갈비에 붙은 고기는 달고 맛있다.

핏물을 빼고 물을 넉넉히 부어 한 번 끊은 다음엔 뭉근하게 두 세 시간 이상 끓인다. 국물이 뽀얗고 엉켜 붙은 뼈가 낱낱이 깔끔하게 떨어져 나가도록 한다.

이걸 육수로 해서 국수를 말면 고기국수다. 떡국을 끓여도 맛있다. 다진 고사리와 고춧가루 마늘, 파 등 채소를 곁들인 고사리육개장도 이 국물이 기본이 된다. 뭐니 뭐니 해도 제철 무와 그 무청을 함께 넣어 끓인 국이 담백하고 맛있다. 지방은 적고 뼈에 좋은 칼슘, 무와 무청이 풍부하게 들어간 접작빼국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좋은 영양만점 음식이다.

요즘은 등뼈만 따로 팔아서 편리하다. 저녁에 한 시간쯤 끓이고 아침까지 그냥 두었다가 아침에 다시 한 10분 끓이고 둔다. 다시 저녁에 한 10분 끓이고, 이렇게 한 이틀 잡아 끓이고 식히기를 두세 번 반복하면 한 번에 오래 끓이는 수고를 나누어 쉽게 할 수 있다.

육수가 식으면 먹을 만큼씩 포장하여 냉장이나 냉동으로 저장하면서 이용한다. 소금 간 하고 쪽파를 고명으로 얹는다. 금방 지은 밥과 김치 하나로도 끝내주는 밥상이다. 우리 아이들이 엄지를 치켜세우는 외할머니 표 떡국은 이 육수가 기본이다. ‘동지’라고 하는 배추 꽃대나 무 꽃대를 살짝 삶아서 냉동저장 했다가 활용하면 좋다. 물러지지 않게 살짝 끓인다. 특이 무 꽃 동지는 시래기와는 비교 할 수 없는 맛과 질감을 준다. 쉽게 구 할 수 없는 것이 아쉽다.

돼지추렴은 이제 추억 속으로 사라진 문화다. 고기를 들고 올레로 들어서는 아버지의 따뜻한 얼굴, 좋으면서도 드러내 놓고 표내지 못하는 어머니의 묘한 얼굴을 번갈아 보던 그 순간이 참 행복했었다. 그 순간을 오래오래 접작빼처럼 우려먹을 참이다. / 김정숙(시인)

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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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 시인은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출신이다. 200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에서 당선됐다. 시집으로 <나도바람꽃>을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30여년 동안 제주도농업기술원에서 일하다 2016년 2월 명퇴를 하고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에서 귤 농사를 짓고 있다. <제주의소리>에 ‘제주 밥상 이야기’를 통해 제주의 식문화를 감칠맛 나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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