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로 터전을 옮기는 이주민의 숫자가 한해 1만명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특히 이들 중에는 적지 않은 문화예술인들이 청정한 자연환경에 매료돼 바다 건너 제주로 향한다. 여기에 제주사회는 자연, 사람, 문화의 가치를 키우자는 분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유례 없던 이런 변화 속에 제주문화의 미래를 고민하는 목소리 역시 높다. 전통과 변화 사이에서 제주문화의 정체성을 지켜내면서 끊임없이 진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고민을 녹여내기 위해 제주출신 양은희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가 [제주의소리]를 통해 '양은희의 예술문화 이야기'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양은희의 예술문화 이야기> (19) '광주비엔날레'보다 앞섰던 제주, 부활 가능할까

2016년 가을 한반도에 비엔날레 붐이 분다. 광주비엔날레부터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까지 지역마다 수십억에서 수억을 들여 만든 미술축제가 선을 보이고 있다. 이름과 형식이 다른 것들도 있다. ‘미디어시티 서울’은 2년 마다 열리지만 비엔날레라는 명칭을 쓰지 않고, 안양공공미술프로젝트는 트리에날레이다. 2년마다 열리는 전시를 비엔날레, 3년마다 열리는 전시를 트리에날레라고 부른다. 기간과 초점을 둔 장르에 조금씩 차이가 있을 뿐 다양한 국내외 예술가가 참여하는 미술축제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비엔날레 신드롬’이 한국을 강타한 지 20여년, 10여개의 비엔날레가 들어서면서 낯선 서구에서 수입한 미술전시제도에서 한국미술의 세계화를 보여주는 창구로, 장르별 생존과 작가의 발표 공간으로 성장했다.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부터, 서예전북비엔날레, 광주디자인비엔날레처럼 지향하는 매체를 중심으로 예술을 포용하는 것들도 있다. 한때 국내 관객 수를 늘리기 위해 단체관람을 강요하던 시절도 있었으나, 지금은 자연스럽게 동호인들끼리, 미술교육을 위해 단체로 찾아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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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광주비엔날레 주전시장 입구. 사진 제공=양은희. ⓒ제주의소리

외국도 마찬가지이다. 현재 세계에 약 300여개의 비엔날레가 있으며 매년 새로운 비엔날레가 등장한다. 1895년 베니스비엔날레가 등장한 후 100여년간 소수에 그치던 비엔날레가 1990년대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냉전이후 사람과 자본의 이동이 용이해지면서 국가와 도시마케팅 차원에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유명도시부터 들어본 적도 없는 도시까지 비엔날레는 도시 간 경쟁을 부추기면서 들어섰고, 비엔날레도 없는 도시라는 명칭은 불명예스러운 일이 되었다. 

올해는 상하이 비엔날레, 싱가폴 비엔날레, 상파울로 비엔날레 등 이미 자리를 잡은 굵직한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다. 내년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비엔날레들의 동향을 알려주는 ‘비엔날레재단’이 2009년 유럽에 문을 열었고, 비엔날레 관련 인사들이 참여하는 ‘세계비엔날레포럼’도 가동 중이다. 이론가들은 이런 현상에 대해 논하고 글을 쓴다. 획일적인 미술 유행을 부추기고 소수의 전시기획 인력이 비행기를 타고 돌아다니며 그런 유행을 확산시킨다는 비판도 있고, 창작 인구의 증가로 그만큼 다양한 창구가 필요하며 비엔날레처럼 정기적인 대형행사가 적합하다는 찬성의견도 있다.      

제주에도 비엔날레가 열렸었다. 1995년 여름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필리핀 등 아시아 태평양 지역 60여명의 작가가 참여했던 ‘제주비엔날레’는 첫 행사라는 점을 고려해서 준비차원에서 ‘제주프레비엔날레’로 시작했다. 당시 미술협회 제주도지회(백광익 지회장)가 주최했던 이 전시는 ‘섬과 섬으로’를 주제로 8월 1일부터 17일까지 제주도문예회관, 서귀포시 기당미술관, 중문관광단지의 종합전시장에서 열렸다고 한다. 뉴스 기록을 보면 ‘제주비엔날레의 방향과 섬문화의 미래지향성’을 주제로 심포지엄도 열고 지금은 작고한 임영방 국립현대미술관장과 기무라 신노무 일본국립국제미술관장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여 대상 작가를 선정하기도 했다고 한다.  

몇 달 전 필자는 당시 기록을 찾고자 백광익 선생께 연락을 했으나 작업실이 물에 잠기면서 모두 소실되고 어딘가에 당시 찍어둔 영상이 남아 있을 것이라는 답만 들었다. (혹시 도록, 관련 자료 및 사진을 가지고 계신 분은 필자에게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야심차게 1997년부터 본격적인 행사를 열 계획을 세웠으나 예산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행사는 열리지 못했다. 아마도 추측컨대 1회 광주비엔날레가 막강한 중앙정부의 후원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비엔날레로 부상하면서 제주는 상대적인 박탈감 속에 동력을 잃었을 수도 있다. 

비록 1회 밖에 열리지 못했지만, 제주를 대표하는 변시지, 강요배 작가가 빠진 비엔날레였으나 좌절된 제주비엔날레는 나름대로 역사적 가치를 갖는다. 비엔날레 신드롬이 한국을 강타하던 초창기 광주비엔날레보다 1개월 앞서서 개최되었다는 점이다. 문민정부가 ‘세계화’를 내걸며 미술계에 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시절 베니스 비엔날레에 ‘한국관’이 문을 열고, 광주비엔날레가 준비되던 시기에 나온 ‘제주비엔날레’는 진취적이며 야심찬 제주 미술인의 모습을 보여준 행사라고 할 수 있다.

제주도립미술관이 ‘제주비엔날레’를 열고 싶어 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비록 미술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단계이기는 하나, 1995년 이후 좌절된 꿈이 다시 실현될 지 관심을 끈다. 비엔날레가 하나의 현상에서 흔한 제도로 자리를 잡은 오늘날, 제주의 미술계는 과연 이 꿈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효용성이 다된 지나간 꿈일까? 아니면 치열한 국내 비엔날레와의 경쟁에서 고유한 자리를 확보할 수 있는, 제주의 가치를 걸고 새로운 틀을 제시하고픈 꿈일까?   
 

▲ 필자 양은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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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교 시절 미술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고, 영어교육학으로 대학을 졸업했지만 예술과 철학에 대한 호기심을 포기할 수 없어서 미학, 미술사, 박물관학까지 공부했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 대학까지 졸업한 뒤 서울, 뉴욕 등 세계를 다니며 공부와 일을 병행했다. 그동안 큐레이터, 갤러리 디렉터, 프로젝트 매니저, 교수 등 미술과 관련된 여러 일을 하면서 예술과 사회의 역학관계를 체험하고 연구하고 있다. 11년간 체류한 뉴욕을 현대미술의 눈으로 조명한 『뉴욕, 아트 앤 더 시티』 (2007, 2010)를 저술했으며, 『개념미술』(2007) 등 다수의 책을 번역했다. 현재는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세계를 돌면서도 언제나 마음은 고향을 향해 있었다. 특히 요즘 문화예술의 섬으로 떠오르는 고향 제주를 주목하고 있다. <제주의소리>를 통해 글로벌 시대의 제주의 문화예술 비전을 고민하는 일은 또다른 고향사랑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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