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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린 과수원은 아무도 돌보지 않았다

김연미 33383331@hanmail.net 2016년 11월 12일 토요일 08:34   0면

<어리숙한 농부의 농사일기> (33) 옛 이름과 새로운 이름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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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려버린 과수원의 귤나무. ⓒ 김연미
귤나무 두어 그루 완전히 말라 죽어 있다. 표정을 잃은 채 굳어있는 가지들은 웬만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승의 개념에서 벗어난 것들의 무념무상이다. 작년에 내렸던 폭설 당시 몸에 얼음이 박혔던 나무들이다. 하루 만에 몸에 박힌 얼음은 풀어졌지만 그 후유증은 결국 나무의 생명을 앗아가 버렸다. 혹시 모른다. 주인의 살뜰한 보살핌이 있었다면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모습으로 서 있지 않았을지도 말이다. 동사된 나뭇가지를 잘라내고, 두둑히 짚을 깔아 수분 증발을 막아주고, 소거름이라도 듬뿍 뿌려주고 나면 세심하게 와 닿는 농부의 순길 끝에 두꺼운 표피를 뚫으며 새순 두어 개 내밀지 않았을까 

그늘을 만들지 못하는 나무는 잡초에게 그저 좋은 사다리에 지나지 않는다. 죽은 나뭇가지를 붙잡고 올라타고, 휘감고, 끝내 나뭇가지 꼭대기 위에서 기세등등하게 하늘을 넘보는 잡초들. 바랭이는 말할 것도 없고, 강아지풀, 여뀌, 이름도 모르는 넝쿨들이 아귀처럼 달라붙어 있다. 잡초들은 죽은 나무 근처에만 무성한 게 아니라 살아있는 나무 아래서도 세를 죽이지 않고 있다. 일 년 동안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제 마음대로 자란 잡초들이다. 어디서든 발 붙일 곳만 있다면 뿌리를 내리는 잡초들 갖가지 영양분이 풍부한 과수원은 이들에게 얼마나 살기 좋은 공간이었던가.

전정을 하지 않은 귤나무들은 가지와 가지사이 바람 한 점 드나들 틈 없다. 함부로 자란 머리카락처럼 무성한 나뭇가지 사이로 며칠 째 세수를 하지 못한 아이들 얼굴 같은 열매들이 매달려 있다. 얼기설기 그어진 상처들과 주근깨 많은 얼굴이다. 아무도 돌봐 주는 이 없었다는 증거다.

팔린 과수원은 아무도 돌보지 않았다. 올 봄, 비바람을 막아주던 비닐하우스가 해체되고, 그 안에서 곱게 자라던 나무가 한 순간에 밖으로 내쳐졌다. 시시때때로 병충해를 방제하고 가지 하나하나를 골라 볕과 바람이 잘 통하도록 가지를 잘라주며,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도록 영양을 공급받던 나무들이다. 가뜩이나 부족한 영양분은 잡초들이 먼저 차지해 버렸고, 올가미처럼 넝쿨들이 나뭇가지의 우듬지를 타고 올랐다. 새순마다 달라붙은 진딧물과 각종 병해충에 온전한 이파리가 없을 지경이다. 비와 바람과 땡볕이 사시사철 나무들을 힘들게 했다. 그럼에도 나무들은 새순을 올리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가을 바람이 불면서 노릇노릇 색깔을 내며 제 몸속에 달콤한 과즙을 준비하고, 타고 난 유전자의 기억대로 제 할 일을 잊지 않고 수행해 내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이 대견하고 가엽다.

치솟는 땅값만큼이나 밭은 빠르게 팔렸고, 자고 나면 그 밭 한가운데 건물들이 솟아나고 있지만, 가끔 이렇게 방치된 채로 잡초에게 농락당하는 땅이 있다. 멀쩡한 밭이나 과수원을 하루아침에 갈아엎어 건물을 짓는 모습도 적응이 안되지만,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는 과수원이나 밭도 결코 유쾌한 풍경은 아니다. 과수원에서 자란 열매가 더 이상 열매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 농작물 하나 제대로 키워내지 못하는 밭의 굴욕을 어느 누가 헤아려 줄 것인가.

주어진 이름에 맞게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거나, 제 이름과 상관없는 다른 일을 해야 하는 것, 그 모두가 서로에게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존의 이름과 새로운 이름 사이에서 방치되고 버림받아야 하는, 팔려버린 과수원 귤나무의 처지가 씁쓸하게 다가온다. / 김연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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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미 시인은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 출신이다. 『연인』으로 등단했고 시집 『바다 쪽으로 피는 꽃』을 펴냈다. 2010년 제2회 역동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젊은시조문학회, 한국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최근 서귀포시 표선면 가마리에서 감귤 농사를 시작한 ‘초보 농부’인 그는 <제주의소리>에 ‘어리숙한 농부의 농사일기’를 통해 하루하루 직접 흙을 밟으며 겪은 일상의 경험들을 풀어놓을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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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의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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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정기 2016-11-14 08:23:43    
항상 글 속으로 들어가 음미하며 열독함다요!
117.***.***.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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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린 과수원은 아무도 돌보지 않았다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