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후 칼럼] 국정농단, 듣고 싶은 것만 들었던 유권자 책임도...박정희 시대 뛰어넘어야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상징적 역할과 최종 정책 결정은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 정부수반이 맡는다. 한 국가의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은 국민들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진 존재다. 사람들의 일상적이고 미세한 삶의 안정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정치의 핵심인 대통령에게 큰 문제가 생긴다면 국민들이 불안하고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의롭고 공평무사하며 투명한 시스템이 붕괴되면 신뢰가 깨지고 격렬한 분노로 이어진다.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시위는 박근혜 대통령 스스로 불법을 저질러 촉발되었다. 직권남용, 독직, 뇌물수수의 문제를 자신과는 무관하고 사심을 품지 않았다는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진퇴문제를 국회로 떠넘겼기 때문에 자진 하야는 어려울 것 같고 탄핵이나 국회 합의 절차에 따라 끝날 것으로 보인다. 하야든 탄핵이든 조속히 물러나야 한다. 

특검의 철저한 조사와 국회 처리를 거쳐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는 일이 급선무다. 이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어떤 이유로 정부 수립 이후 최악의 대통령으로 기록될 인물을 뽑았는지 성찰이 필요하다. 대통령제라는 현행 제도의 허점부터 정치와 사회의 부패까지 그 원인은 다양하다. 국회, 언론, 검찰, 학계 등 청와대의 범죄행위를 견제할 수 있는 엘리트 집단의 책임도 간과할 수 없다. 앞으로 추진될 정치제도 개혁, 정경유착 근절 같은 스펙타클한 접근 방법은 가시적인 개혁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번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유권자들은 왜 잘못된 선택의 함정에 빠지게 되었을까. 개인의 비합리적인 믿음과 결정은 심리학에서 ‘생각의 오류’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아주 지적인 사람들이 나치의 폭력정치를 긍정하는 비이성적인 자세를 취한 이유다. 독일 작가 롤프 도벨리는 ‘생각의 오류’는 시스템적 합리성과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에만 입각해 생각과 행동이 빗나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지식을 과대평가하고, 익숙하고 선호하는 방향으로 잘못 들어가 오류에 빠진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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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오후 최순실 등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언론재단앞 대형스크린에 박 대통령 담화 장면이 생중계되는 가운데, 광화문광장 너머 청와대 본관이 보인다. 출처=오마이뉴스 권우성. ⓒ제주의소리

첫째, ‘후광효과’이다. 민주주의는 연약해서 쉽게 파괴될 수 있다. 권력은 세습의 유혹이 강하다. 세계적으로 부자, 부부, 형제간에 권력이 승계되는 족벌주의가 성행하는 것은 후광을 등에 업기 때문이다. 박정희라는 선대의 후광은 후손의 역량을 따지지 않고 대중을 쉽게 현혹시킬 수 있다. 사람들은 스스로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만 후광의 매혹을 뿌리치기는 쉽지 않다. 투표가 심리며 합리적이지 않은 이유다. 경제가 어려울 때 박정희는 판타지가 된다. 객관성·균형·개방성에 입각한 역사 지식은 쓸모없고, 합리적 이성적 판단은 마비된다. 후광효과는 고정관념을 만들어 사회를 분열시키고 반대편과 약자 차별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둘째, ‘귀납법의 오류’이다.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 투철한 국가관과 애국심, 깨끗한 분’이라는 확신은 여타의 문제를 덮고 무조건 지지를 보냈다. 박정희 후광이 더해져 귀납의 심리는 고착된다. 귀납법은 정치 선전에 유효한 수단이다. 지지자들은 박정희의 신탁을 받은 박근혜는 5년 동안 변함없이 최선을 다할 것으로 믿고 투표장에 나간 것이다. 처음에는 박근혜를 의심하기도 했으나 점차 호의를 갖고 확신하게 된 결과다. 허울뿐인 정치적 수사와 이미지를 보편적이고 타당성이 있는 원칙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맹신이다. 확신은 일시적이며 위험하다.

셋째, ‘가용성 편향’이다. 사람은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 익숙한 것들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본다는 이야기다. 지난 4년 동안 박근혜의 일탈적 행위를 지적한 목소리는 너무 작았다. 엘리트 계층은 ‘가용성 편향’에 빠져 권력 농간에 눈을 감았다. 권력에 굴종하고 아부하는 인간의 심리가 악용된 것이다. ‘가용성 편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자신이 한 일은 선한 의도였다는 박근혜의 강변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권력자의 범법 행위에 둔감해지고 국민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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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후 소통기획자. ⓒ제주의소리
분노와 고통을 이해조차 하지 못한다.

박정희 시대는 저물고 있다. 역사는 되풀이 될 가능성은 있으나 앙시엥 레짐을 고수한다면 한국의 미래는 어두울 뿐이다. 박정희 신화를 청산하는 일은 ‘생각의 오류’를 깨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비합리성은 악마가 기승을 부리는 토대다. ‘생각의 오류’는 서로 연결되어 있어 다루기는 쉽지 않다. 회의하고 비판적인 의심의 칼날을 벼려야 시대를 변화시키고 연약한 민주주의를 살릴 수 있다. / 권영후 소통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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