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밥상 이야기> (17) 방어수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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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어수제비. ⓒ 김정숙

고모님은 가셨어도 방어수제비는 남아있다. 입맛도 사상도 순수하던 시절 처음먹은 방어수제비의 맛은 한마디로 환상적이었다. 작은 고모님은 제주시 한경면 바닷가마을로 시집을 갔다. 고모부는 작은 고깃배를 부리는 어부셨다. 그 덕에 웃뜨르인 우리 집에도 찬바람을 빌어 넉넉히 생선을 말리는 날이 있었다. 우럭이며 조기며, 갈치, 고등어 등 여러 가지 생선이 빨랫줄에 빨래대신 널려 있을 땐 저녁이 기다려지곤 했다.

어느 해 가을, 친정나들이 한 고모님을 졸라 그 바닷가 마을로 놀러갔다. 바닷게가 마당을 들락거릴 만큼 고모님 댁은 바닷가에 있었다. 바다에서 놀다가 바다로 지는 해를 처음 보았다. 그 뭉클함은 잠자리까지 따라와 파도소리와 함께 잠을 설치게 했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올레 밖 작은 포구에는 여러 사람들이 오가고 차도 한 대 대기 중이었다. 큰 생선은 차로 옮겨 실어지고 다른 생선들은 사람들이 골라 가져갔다. 그렇게 큰 생선을 그 때 처음 보았다. 나 혼자서는 들지도 못할 만큼 컸다. 방어라고 했다. 그 날 늦은 아침으로 고모님은 방어수제비를 끓여 주셨다. 자세한 맛은 기억나지 않는다. 국물까지 아주 맛있다는 것 밖에는.

그 후로도 한참이나 그 음식은 기억 속에만 있었다. 생선 맛을 구별할 줄 아는 나이가 되고나서 알았다. 방어라는 생선이 특별히 맛있는 생선은 아니라는 것을. 방어는 살집이 붉고 두텁다. 자연산 횟감으로 인기가 높다. 그러나 회 이외에는 이렇다 할 음식은 없다. 제주에서 싱싱한 생선은 거의 국거리가 된다. 통으로 써도 되지만 횟감을 뜨고 난 머리와 뼈를 고아 낸 국물에 무를 넣고 끓인 국이 더 좋다.

익으면 파를 넣고 소금이나 간장으로 간한다. 국물이 시원하고 담백하다. 수제비는 이 국물을 기본으로 해서 끓인다. 생선가게에서 회를 뜨고 난 머리와 뼈만 구입 할 수 있다. 몇 천원이면 세 네 명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된다. 재료도 조리도 단순하지만 맛있다. 가을이 깊어지면 꼭 한 번쯤은 끓이고 싶은 음식이다. 냄비 째 식탁위에 올려놓고 수저소리, 후룩 쩝쩝 소리 내며 격 없이 먹고 싶다. 

싱싱함과 뼈에서 우러나는 맛. 굳이 빼야 할 냄새도 없고 더 보태야 할 맛도 없다. 있는 대로 우러나는 맛, 맛과 맛이 어우러져 더 시너지가 나는 맛. 솔직한 맛이다. 어느 시대 어떤 곳, 어느 누구, 무엇을 막론하고 솔직함은 그런 것이다. 모름지기 뼈대는 그래야 하는 거다. 그게 생선 가시에 불과 할지라도.  / 김정숙(시인)

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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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 시인은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출신이다. 200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에서 당선됐다. 시집으로 <나도바람꽃>을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30여년 동안 제주도농업기술원에서 일하다 2016년 2월 명퇴를 하고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에서 귤 농사를 짓고 있다. <제주의소리>에 ‘제주 밥상 이야기’를 통해 제주의 식문화를 감칠맛 나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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