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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중한 기계가 나무 사이에 들어서다

김연미 33383331@hanmail.net 2016년 12월 03일 토요일 10:51   0면

<어리숙한 농부의 농사일기> (36) 열풍기를 설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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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우스에 들어선 열풍기. ⓒ 김연미

나무와 나무 사이에 집채만한 기계가 설치되었다. 복잡한 전기회로가 있는 판넬과, 용도를 알 수 없는 모터 같은 것도 달렸다. 열풍기다. 말 그대로 뜨거운 바람을 만들어 하우스 안의 온도를 올려주는 기계다. 내가 아는 건 여기까지. 말로만 들었던 것의 실체가 눈앞에 있다. 생각보다 크다. 나뭇가지 사이에 비집고 들어앉아도 괜찮은가 하는 걱정이 든다. 기계가 뜨거워지면서 주변 나무들을 태워버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바람이 뜨거운 것이지 기계가 뜨거워지는 건 아니라며 괜찮다고 한다. 설치 업자가 괜찮다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며 지켜볼 뿐이다. 잘 모르면서도 아는 체하는 건 일을 그르칠 뿐이다.

작년 폭설에 일년치 밀감 농사를 완전히 망치고 나서 열풍기 설치를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열풍기라는 단어는 몇 번 들어봤지만 그게 어떤 건지,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 비용은 얼마나 드는 지, 우리 하우스에 그게 꼭 필요하기는 한 것인지, 등을 판단하기는 쉽지 않았다. 생각보다 설치비용도 많이 들었다. 일 년에 한두 번 쓸까말까 한 것을 그 비용 들여가며 꼭 설치해야 하는지, 자꾸 머뭇거리게 했다. 작년에 갑작스럽게 불어 닥친 한파에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하우스 한 켠에 불을 피워두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대처 방법을 몰라서, 혹은 그렇게까지 기온이 내려갈 줄 몰랐던 것이 피해를 더 키웠던 것이 사실이니까. 한 번 당해보고 대처 방법을 알았으니 앞으로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눈이 내리기 시작하자 주변에서는 하우스 온도를 높여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어떻게? 내 생각에는 찬바람 들어오지 않도록 문을 꽁꽁 닫아야 할 것 같은데 남편은 오히려 하우스 측면을 다 열어 놨다. 바람이 통해야 찬 공기가 고이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정말 그럴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지만 반박할 근거도 없었다. 하우스 안에 촛불이라도 켜 놓으라고 하는 동네 사람들의 말은 우스개 소리로 넘겨버렸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열풍기 시설이 없는 하우스에서는 곳곳에 깡통을 놓고 불을 피웠다고 했다. 일부는 절에서 사용하던 양초덩이들을 모았다가 하우스 곳곳에 놓고 밤새 태웠다고도 했다. 그렇게 한 하우스의 귤들은 무사했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우리는 일년치 수고를 다 폐기처분 해야만 했다. 날씨가 추워봐야 다 익은 귤에게 얼마나 피해를 주겠냐는 생각이 앞섰던 것이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속담이 여기에 해당할까. 아직 날씨의 무서움을 모르는 풋내기 농부였다. 피해는 상상 이상이었다. 그렇게 피해를 당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았더라면 뭐라도 해 봤을 걸 하는 후회를 뒤늦게 해 봤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자연 앞에서는 한 없이 겸손해야 된다는 사실을 실감하던 순간이었다.

결정을 못하고 미적거리는 사이 남편은 설치 업체를 알아보고 작업을 진행시켰다. 더 이상 추워지기 전에 설치를 끝내야 한다면서. 기술이 없으면 시설이라도 좋아야 한다는 누군가의 지론에 따라 나도 두말 하지 않았다.

네 명의 장정이 달라붙어 기계를 옮기고 전기선을 연결하고, 하우스 밖에 기름통을 설치하고 나서는 ‘닥트 연결은 다른 사람이 할 거니까 기다려보세요’ 하고 가버렸다. 한꺼번에 되는 일은 아니구나 하며 기다릴 수밖에... 하긴 닥트라는 걸 연결해야 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기계장비 하나 설치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꽤나 복잡하다.

닥트 연결할 사람은 며칠째 소식이 없다. 사이즈에 맞게 제작해서 가져 온다고 했는데 바쁜 모양이다. 오늘쯤 다시 전화를 해 봐야 하나 어쩌나.../ 김연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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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미 시인은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 출신이다. 『연인』으로 등단했고 시집 『바다 쪽으로 피는 꽃』을 펴냈다. 2010년 제2회 역동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젊은시조문학회, 한국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최근 서귀포시 표선면 가마리에서 감귤 농사를 시작한 ‘초보 농부’인 그는 <제주의소리>에 ‘어리숙한 농부의 농사일기’를 통해 하루하루 직접 흙을 밟으며 겪은 일상의 경험들을 풀어놓을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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