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강창민 제주대 건축학과 4학년

제주대 재학 중인 건축학도로서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제주건축에 대해 많이 배우고,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로 여겨 ‘2016제주국제건축포럼’에 참석했다.

지난 9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문화변용: 동아시아 해양실크로드에 건축을 싣다’라는 주제로 열린 포럼은 동아시아의 주요국가인 일본, 중국, 한국 그리고 태평양에 면한 미국서부 지역의 저명한 건축가들이 제주에서 모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아마도 내가 알기로는 제주에서 개최된 건축 관련 행사 중 가장 글로벌하고 가장 의미 있는 행사가 아닐까 한다. 

행사장에서는 제주 건축가뿐만 아니라 일본 오키나와를 비롯한 타 지역 건축가도 많이 볼 수 있었으며, 특히 도외의 건축학도들이 이 포럼을 참석하기 위해 단체로 찾아온 사실에 놀랐다. 제주에서 나처럼 건축을 배우고 있는 학생들에게 이번 포럼은 제주 건축에 대한 자존감을 세우고 앞으로의 제주 건축에 대해서 다양하게 고민하고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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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일 열린 2016 제주국제건축포럼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첫 번째 강연자인 일본 건축가 토요 이토는 ‘아시아의 생성적 건축’이라는 강연에서 젊은 세대의 지역 이주와 이주를 통해 발생되는 행위가 도쿄의 거주와 문화를 바꾸는 현상을 소개했다. 강연을 들으면서 현재 제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떠올렸다. 지금 제주는 젊은 세대의 문화 이주민들이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있으며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제주로의 이주를 고민하고 있다. 최근 제주의 건축 ‘붐’ 또한 이러한 문화 이주민으로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제주에서 가장 관심이 뜨거운 구좌읍 월정마을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해안을 끼고 형성된 월정마을의 유명세는 몇몇 외국인의 의한 문화 공유 공간에서부터 시작됐다. 해안도로를 끼고 있는 주택의 담벼락 밑에서 팔찌를 팔며 바다와 함께 하였던 문화 풍경은, 몇 년 사이 막대한 자본의 유입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제주다운 풍경을 유지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월정마을의 고유한 지역성은 자본의 논리에 의해 밀려났지만, 작은 마을에서 있었던 행위의 기억과 진화하는 건축의 지역성을 포괄하는 제주 건축의 가능성을 토요 이토의 강연에서 찾을 수 있었다.

두 번째 강연자인 미국 건축가 톰 메인은 동양 건축가와는 다른 방식으로 장소성의 건축적 해결방식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버티컬 팜’과 같이 도심 안에 커다란 스케일을 가진 건축을 통해서 교통, 식량, 주거 등 도시의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인데, 우리 제주에서도 가능한 일이 아닌가 한다. 최근 제주에 일어나는 대규모 건축행위는 우리들의 삶에 직접적이고도 부정적인 환경을 형성한다. 대형 건축의 증가로 인해 극심한 교통정체, 부동산 가격의 상승과 같은 부작용들을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시장의 요구에 의해 지어지는 건축물이며 합법적인 절차와 필터링을 통과한 건축이다. 그런데 자본의 욕망에 의해 생겨나는 이러한 비문화적 건축들이 톰 메인이 제안하는 ‘다수의 의제’란 전략으로 수정된다면, 오히려 제주 건축의 다양성, 미래상으로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역발상적 생각이 들었다. 

20년, 30년 후의 미래에 지속적으로 팽창하는 제주 도심 속의 건축물이 버티컬 팜과 같이 제주의 기후환경에 순응하면서도 도시의 여러 기능을 복합화·집중화해, 동시대적인 제주 사회상이 반영되고 그 시대의 새로운 기술이 결합된다면 새로운 제주 건축의 방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 발표자인 중국 건축가 추이 카이는 ‘장소기반의 합리주의’ 건축이론을 제안하면서 중국과 같이 지역마다 역사가 깊은 지역에서의 건축 태도로서 건축가 자신의 작가적 욕망을 소거하고 땅에서 비롯된 건축을 담담하게 담아내는 건축 수법을 보여줬다. 어쩌면 글로벌주의의 공습으로 피난처를 찾지 못하는 아시아 건축의 위기에서 적절한 해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발표자인 최문규 건축가는 제주에 진행 중인 ‘서귀포 파크 호텔’을 활용한 문화 예술 창작 공간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건축의 공공성을 주제로 한 건축의 본질적 태도를 강조했는데, 도시나 인간의 삶에서 건축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것은 제주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장소의 기억을 통해 공공성을 회복한다는 점에서 우리가 쉽게 지워버리는 제주의 기억들에 대한 가치를 다시 상기시켰다. 

마지막 순서인 토론에는 톰 메인과 츄이 카이의 격렬한 대화가 좌중을 즐겁게 했다. 이는 건축의 보편성과 지역적 특수성의 충돌이었다. 다행히 최문규 교수가 변증법적 통합의 결론을 유도했지만 톰 메인은 이해를 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학교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서로의 주장으로 맞서는 토론의 장을 함께한다는 것에 흥미로웠다. 제주 건축의 지역성을 찾는 것이 제주 건축인의 사명으로 생각해왔던 우리들에겐 또 다른 세상을 보는 기분이었다.

이번 포럼을 함께하며 난해했던 주제인 ‘문화 변용’의 의미를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게 됐다. 제주 건축은 마치 섬에 갇혀 있듯 지역성의 껍질에 갇혀있는 것이 아닐까? 건축에서 지역성과 장소성을 논하는 아시아의 건축가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향수는 진화의 적(敵)이다!”라고 거침없이 주장하는 톰 메인의 눈빛에서 제주 건축의 미래를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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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창민 제주대 건축학과 4학년. ⓒ제주의소리
시 생각하게 된다. 

문화 변용이란 이러한 문화교차를 통해 발전적 진화를 하는 것이 아닐까? 2016제주국제포럼의 가장 큰 수확은 앞으로 제주 건축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제주의 기성 건축가뿐만 아니라 미래의 제주 건축을 짊어져야 할 후배 건축학도들에게 다양한 사고를 갖게 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이다. 앞으로도 이러한 문화교류가 지속돼 제주가 건축을 실은 동아시아 해양실크로드의 중심지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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