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세통Book世通, 제주읽기] (41) 제럴드 에델만 『세컨드 네이처』/김준기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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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럴드 에델만 『세컨드 네이처』김창대 옮김, 이음.
인문/사회과학이 대세였던 1980년대에 필자에게 유물론은 세계의 근본문제를 좌우하는 황금잣대였다. 그 유물론이 철학적 토대에서 세워진 매우 관념적인 것이라는 점을 깨닫는 데는 20여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돌이켜보면 근대 이후의 인문/사회과학은 자연과학에 큰 빚을 지면서 진화해왔다. 프로이트가 정신분석을 토대로 무의식이라는 문제를 얘기했을 때, 그것은 세기를 뒤흔든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러한 사건의 근저에는 진화론이 있었다. 다윈의 진화론이야 말로 유신론적 세계관으로부터의 탈출을 추동한 결정적 토대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신 중심의 세계관을 인간 중심의 세계관으로 바꾸는 데에 뉴턴의 물리학이나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의 천문학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렇듯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는 세계관은 자연과학 영역의 혁명으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동시대의 세계관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알아보려면, 21세기 동시대의 자연과학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를 공부하는 것은 필수불가결하다. 그렇지 않고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만 새로운 것을 끄집어내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의미 없는 일이다. 특히 자연과학이 밝혀내는 새로운 진리들을 인문/사회과학은 물론 기술과 산업의 영역과 만나게 하는 일은 융합의 시대를 이끄는 필수덕목이다. 그 가운데서도 뇌과학은 인문/사회과학은 물론 종교와 예술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그 파급력이 엄청나다.

이제 뇌과학은 자연과학자들의 일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그리고 인문과학을 관통하는 통섭의 학문이다. 뇌과학은 우리의 뇌를 단순한 물질적 대상으로 이해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인간의 정신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학문으로 진화하고 있다. 인문과학의 영역이었던 인식론과 존재론은 뇌과학의 진보와 더불어 자연과학의 영역으로 전이하고 있다. 뇌과학은 단순히 뇌라는 세포덩어리에 관한 연구가 아니다. 그것은 신경세포에 관한 연구로부터 시작해서 뇌세포들의 연동에 관한 다각적인 연구를 통해서 이제는 인간의 의식과 존재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결국은 인지의 문제가 자연과학자들의 연구대상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의식에 관한 자연과학자들의 연구는 놀랍게 진화하고 있다. 

의식이라는 문제는 인문/사회과학자들만의 연구 영역일 것 같지만, 자연과학, 뇌과학자들이 발표하는 결과들은 상상을 초월한다. <세컨드 네이처>의 저자 제럴드 에델만(Gerald M. Edelman)은 ‘뇌는 제2의 자연’이라고 말한다. 자연의 일부인 뇌를 또 하나의 자연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니, 인간 신체의 일부인 뇌 또한 자연 그 자체라고 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신체기관 중 하나인 브레인을 두 번째 자연이라고 명명하고, 브레인에서 의식이 만들어지고 작동하는 것을 자연과학적으로 풀어낸 것이다. 이제 자연과학의 연구성과는 인문과학적 문제를 뒷받침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간이란 무엇인가, 의식이란 무엇인가 등과 같은 존재론과 인식론 차원으로 진화하고 있다.

마음의 문제는 과학과 종교, 그리고 예술의 오랜 화두였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에 접근하는 근원적인 질문으로서 종교와 철학의 주된 관심사였다. 다윈의 진화론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거치면서 마음이 본격적으로 과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자리 잡은 이래 마음에 관한 이해는 인간이해의 방향을 좌우했다. 동시대 뇌과학은 뇌와 신경으로부터 나오는 마음에 대한 연구를 토대로 인간의 존재론과 인식론의 지평을 확장함으로써 인간이해의 패러다임 전환을 요청하고 있다. 특히 인간의 의식에 관한 신경과학의 관점은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구분하여 자아를 가진 독자적인 주체로 상정한 인간중심주의적 사유에서 벗어나 인간의 의식이 뇌작용에 근거한 자연과학적인 탐구의 대상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신경에 관한 연구는 뇌에 관한 연구로 이어졌다. 오늘날의 뇌과학은 인간의 의식을 규정하는 새로운 인식론의 근거로 작동하고 있다. 따라서 뇌과학은 동시대의 인문/사회/자연과학을 선도하는 첨단의 의제가 아닐 수 없다. <세컨드 네이처>(이음, 2009)는 제럴드 에델만이 뇌과학적 접근으로 의식의 문제를 다룬 책이다. 197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그는 신경과학연구소에서 뇌기능의 생물학적 기반을 연구하며, <신경과학과 마음의 세계>, <뇌는 하늘보다 넓다> 등의 저술을 통해 뇌과학적 관점에서 인간의 의식을 다룬다. 1975년에 최초로 ‘뇌의 회로에서 신경세포 사이의 대화를 담당하는 분자의 존재’를 밝혀낸 에델만은 몸과 마음을 분리했던 데카르트적 이원론을 넘어서, 뇌의 조성, 연결, 구조, 기능, 그리고 진화에서 얻은 통찰을 한데 묶어 신경다윈주의(Neural Darwinism) 이론을 펼쳤다. 

에델만은 인간 의식의 본성을 ‘제2의 자연’으로 규정한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며, 뇌는 인간 신체의 일부분이다. 따라서 뇌는 그 자체로 자연의 산물이며 자연의 일부이다. 에델만이 주장하는 바, ‘인간의 의식은 제2의 자연’이라는 생각의 근저에는 뇌가 수행하는 의식작용은 일종의 자연 현상이므로 자연과학의 탐구영역으로 볼 수 있다는 시각이 깔려있다. 근대적 인간관은 인간의 의식을 물리법칙에 따르는 물질세계와 달리 물리적 공간을 차지하지 않고 물리적 법칙과는 다른 세계로 보았지만, 물리적 세계와 사유하는 주체를 완벽하게 나눠서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의 분열을 야기한 근대철학은 패러다임의 전환을 맞이한 지 오래다. 객관실체로서의 자연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의식이 인지하는 바의 그것 또한 자연이다. 요컨대 인간의 마음은 ‘또 하나의’ 자연이다.

그는 몸과 마음을 분리하는 이원론에 반대하고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의 분열을 극복할 새로운 접근법으로서 ‘뇌기반인식론’(brain-based epistemology)을 제안했다. 뇌기반인식론은 인간의 지식을 분석함에 있어서 뇌에 기반을 둔 주관성이라는 측면을 포함시킴으로써 진리를 의견과 신념에, 사고를 감정에 결부시켜 설명한다. 그는 뇌의 작동방식을 살피고, 뇌의 주요 특성과 개념을 정리함으로써 의식의 본성에 접근하고자 했다. 또한 뇌의 조성, 연결, 구조, 기능, 그리고 진화에서 얻은 통찰을 묶어 신경다윈주의 이론을 발전시켰다. 그에 따르면 뇌는 논리적 연상장치가 아니라 선택적 시스템이다. 의식 자체를 하나의 객관 실체로 보고, 선택적 시스템으로서 뇌가 작용하는 방식에 기반해 인간의 의식과정 및 지식 획득과정을 설명한 것이다.

과학적 의제와 방법론을 예술과 융합하는 과학예술은 뇌과학과 긴밀한 연관관계를 가진다. 그것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인식의 과잉과 결핍의 상황을 넘어서 과학적 이해의 바탕 위에서 예술적 상상과 창의를 실천할 것을 제안한다. 특히 뇌과학은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에 관한 체계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임상병리학 수준의 마음에 관한 이해를 극복하고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갈 것을 권면한다. 의식과 무의식, 기억, 감정, 감각 등 뇌작용에서 나오는 마음의 문제는 예술적 소재나 주제로서도 매우 친숙한 영역이다. 하지만 예술이 다루는 이러한 문제들은 과학적인 개념과 거리를 둔 직관적 감성의 수준에 머물러왔다. 

무의식에 관한 다다이스트들과 초현실주의자들의 실험은 인간의 정신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바탕으로 예술의 지평을 확산해왔다. 그러나 이후의 예술은 무분별하게 오해와 편견을 키우면서 무의식기반예술의 모래성을 쌓으며 벌거벗은 임금님놀이를 해왔다. 인간의 마음에 관하여 예술이 채택하고 있는 낡은 과학적 의제들은 현대미술의 병폐를 지탱하는 온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뇌과학기반예술은 무의식 오남용을 벗어나 인간의 마음에 대한 체계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차원의 예술을 열어줄 키워드이다. 이제 뇌과학은 인문/사회과학 영영 뿐만 아니라 예술의 창작과 비평에 있어서도 새로운 길을 열어주고 있다. 인간 의식에 관한 새로운 인식이 새로운 예술의 길을 열어주고 있다는 점. 탈근대와 융합을 이야기하는 이 시대에 두 눈 부릅뜨고 귀 기울여볼 대목이다. /김준기 제주도립미술관 관장·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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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기 관장

현 제주도립미술관 관장. 미술평론가

홍익대학교 예술학 석사, 미술학 박사과정 수료.

전 부산비엔날레 전시기획 팀장, 부산시립미술관 큐레이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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