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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감지된 제주 예술계...'버틴' 예술인들에게 박수

양은희 yangeunhee@yahoo.com 2016년 12월 30일 금요일 10:04   0면

제주도로 터전을 옮기는 이주민의 숫자가 한해 1만명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특히 이들 중에는 적지 않은 문화예술인들이 청정한 자연환경에 매료돼 바다 건너 제주로 향한다. 여기에 제주사회는 자연, 사람, 문화의 가치를 키우자는 분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유례 없던 이런 변화 속에 제주문화의 미래를 고민하는 목소리 역시 높다. 전통과 변화 사이에서 제주문화의 정체성을 지켜내면서 끊임없이 진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고민을 녹여내기 위해 제주출신 양은희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가 [제주의소리]를 통해 '양은희의 예술문화 이야기'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양은희의 예술문화 이야기> (22) 2016년 제주문화예술계를 돌아보며

뉴스를 통해 다가오는 추상적인 현실과 일상 사이에서 반복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오롯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은 부족하다. 그러다 간혹 일상의 반복이 주는 편안함과 당연함을 깨는 큰 사건이 일어나면 정신이 번쩍 들기도 한다. 2016년 하반기에 드러난 통치자의 불합리와 부조리를 보면서 한국에서 이성을 잃지 않고 살기 위해서라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사는가?’

2016년 제주의 문화계는 무엇을 지향하며 어떻게 살았을까? 돌아보면 ‘문화’ 운운하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로 자연재해와 인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안목의 부족으로 현실이 더 고달프게 다가왔던 것 같다. 제주는 태풍과 홍수뿐만 아니라 쓰레기와 오수와 싸우는 첨예한 현장이 되었고 도시의 혼잡한 교통과 매연은 여기가 서울인지 제주인지 혼란스럽게 만든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나온 생각들 중에는 어느 것도 완벽한 것이 없다. 이런 현실 앞에서 문화라는 단어는 중요한 일을 해결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고 왠지 폼만 나는 ‘잘 만들어진 양복’처럼 다가온다. 

솔직하게 말하면 문화는 급박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별로 소질이 없다. 문화의 힘은 오랫동안 닦은 재능이 다시 오랜 기간이 지나서 인정을 받을 때 나온다. 생존을 위해 물질하는 해녀의 삶이 이제야 제주 공동체의 가치관을 대변하는 얼굴이자 중요한 세계인류유산으로 인정받는 것처럼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운좋게 빠른 시간 내에 인정을 받더라도 그만큼 빨리 사라지기도 한다. 

올해의 사건과 행사를 돌아보면 혜성같이 나타난 WCO와 동아시아 문화도시의 성과에 대한 논란 등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향한 모종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변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세계섬문화축제를 재가동시키려는 작업은 그중 하나이다. 

다음은 한정된 지면을 위해 지극히 개인적인 소견으로 본 문화계의 주목할 지점이다. 

먼저 그동안의 관례를 깨고 제주문화예술재단의 새 이사장으로 재야에서 활동하던 문화 운동가가 취임한 사건이다. 문화계에서 자기 의견을 피력하는 데 적극적이었던 그의 취임은 한동안 회자됐다. 그 스스로 세간의 복잡한 시선을 의식한 듯 자신에 대한 ‘호불호’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위계가 분명한 제주 문화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며 잔뼈가 굵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제주 전통 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제주시 원도심에 각별한 애정을 토대로 자리의 무게를 견디며 복잡한 문화계 현안을 어떻게 해결할지 기대해 보자. 

덩달아 제주도립미술관장이 새로 취임했다. 역시 관례를 깨는 임명이었다. 개방형 직위로 전환된 후 좁은 제주 미술계의 원로 및 중견 작가가 관장이 되면서 임명권자와의 친분이 거론되고 ‘자매 연임’이 논란을 일으키고 ‘1인 피켓 시위’가 벌어지는 등 논란이 많았던 자리였다. 이런 논란을 뒤로 하고 ‘육지’ 출신의 인물이 낙점돼 한동안 그 충격파가 미술계를 흔들었다. 중요한 것은 새 관장이 취임하면서 ‘미술 관장’에 대한 상식이 바뀌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미학과 미술사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갖춘 기획자가 미술관을 이끄는 시대가 열리면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벌써부터 ‘제주 비엔날레’를 추진하면서 미술계가 출렁이고 있다.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제1회 제주학대회도 중요한 사건이었다. 세계화의 거센 물결에 맞서기 위해 지역학이 부상하고 있는 요즈음 제주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몇 년 전 제주발전연구원의 제주학연구센터가 문을 연 후 나온 결과물로 제주를 연구하는 관련 연구소와 단체들이 모여서 제주문화의 원형과 형성에 대한 세미나와 포럼을 개최했다. 특히 관덕정에서 열린 ‘제주학 도서, 사진전’에서는 무료로 책을 나눠주며 관심을 끌었다. 향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학문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더 많은 학회와 연대하고 좋은 연구자를 유치하고 일반의 참여를 늘리며 집적 효과를 내는 일은 과제로 남았다.  
▲ 제1회 제주학대회 행사중 하나인 제5회 제주학 국제학술대회. 제공=양은희. ⓒ제주의소리

제1회 ‘더불어-놀다’ 연극제가 열려 시민들의 많은 호응을 받았다. 제주연극협회가 주최한 이 행사는 극단 세이레, 극단 이어도 등이 참가했으며 시내의 소극장 등 여러 무대에서 진행되어 오랜만에 무료로 연극을 보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시민의 문화향수 기회를 늘리려는 취지와 작은 극단의 열정이 만나서 좋은 전통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내년에는 더 많은 지원금이 나와서 더 많은 도내의 극단이 참여해 사람과 사람의 접촉을 늘려 가는데 연극이 앞장서기를 기대한다.  
▲ 극단 세이레의 공연, 제 1회 더불어 놀다 연극제 행사. 제공=양은희. ⓒ제주의소리

드물게 투쟁하는 예술인이 나타나기도 했다. 제주도립합창단의 전직 지휘자가 제기한 부당해고 구제신청이 지방노동위와 중앙노동위에서 잇따라 받아들여지자, 일단 연구위원으로 복직하기도 했다. 합창단 내의 복잡한 사정을 자세히 알 길이 없으나 자신이 불합리한 대접을 받았다고 생각한 것에 머무르지 않고 싸우는 예술인의 모습은 이채로웠다. 

이외에도 많은 문화 예술인이 올 한 해 동안 개인전, 음악회, 축제 등 여러 장을 통해 제주의 문화예술에 기여했다. 그들은 새해에도 많은 장애물과 편견을 극복하고 방향을 수정하면서 가던 길을 갈 것이다. 간혹 단비처럼 문화예술재단의 지원금이나 시와 도에서 주는 보조금을 받기도 하겠지만 대부분은 여태까지 해왔던 것처럼 자비를 들이면서 버틸 것이다.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필자 양은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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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희는 제주에서 태어나 초·중·고·대학을 졸업했고 영문학·미학·미술사·박물관학을 공부했으며, 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과 한국에서 큐레이터와 미술평론가로 활동해왔다. 뉴욕을 현대미술의 눈으로 살펴 본 <뉴욕, 아트 앤 더 시티> (2007, 2010) 저자이자  <기호학과 시각예술>(공역, 1995), <아방가르드>(1997), <개념 미술>(2007)의 번역자이기도 하다.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살고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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