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밥상 이야기> (19) 신년특집-무 옥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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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 옥돔국. ⓒ 김정숙

해가 바뀌는 길목에선 날씨도 널을 뛴다. 맑다 흐리다 비 내리다 개고, 햇살도 비추고 바람 사이사이 눈발도 날리다가 또 한 해를 보낸다. 이슬도 내리고 서리도 내린다. 영상과 영하를 오르내리는 기온, 맑고 포근한 날이 있는가 하면 춥고 바람 센 날이 있다. 이파리, 열매 다 떠나보내고 마음마저 비운 들이 갖은 변덕을 다 받아 줄 채비를 하고 있다. 그럼 그렇지, 변덕은 받아 줄 누군가가 있어야 할 수 있는 거다. 그 누군가가 사뭇 그리워지는 때. 이런 변덕을 다 받아주는 음식이 무를 넣고 끓인 옥돔국이다.

새해 첫날에는 무 옥돔국 곁들인 외상을 받고 싶다. 모든 절차를 양력에 맞춰 살면서도 정작 새해 첫날은 그냥 해돋이나 보는 첫날일 뿐이다. 서류에 밀리고 시간에 쫒기며 맞이한 새해에 첫 끼니로 참 어울릴 것 같은 음식이 무 옥돔국이다. 그 첫날에 옥돔국 곁들인 반상을 마주하고 싶다. 같이 어우러져 먹는 식탁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밥상. 국, 밥, 나물과 고기 등 영양소를 고루 갖추고 다양한 조리법이 어우러진 밥상으로 스스로를 응원하고 싶다.

제철 무와 만난 옥돔은 시원 담백한 국물 맛이 으뜸이다. 뭔가 허전하면서도 벅찬, 복잡한 심기를 어머니 손처럼 따뜻하게 다독여주기에 충분하다. 사실 옥돔은 예나 지금이나 귀한 생선이다. 잘 생긴데다가 맛까지 있어 그 품격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제사나 명절에 '갱'은 주로 옥돔과 미역을 넣고 끓인다. 비몽사몽 헤매면서도 쌀밥에 옥돔국은 얼마나 맛있던가. 옥돔구이는 사철 먹을 수 있지만 무를 넣은 옥돔국은 겨울에 먹어야 제 맛이다. 며칠 전에 제주에 30년이나 사셨다는 지인에게 무 옥돔국을 대접 했다. 처음 먹어 본다며 감탄에 감탄을 한다. 제주음식 중에 첫째는 여름에 먹는 물회, 두 번째는 겨울에 먹는 무 옥돔국이라고 순위를 매겼다. 거기다가 만들기까지 쉽다. 물이 끓으면 옥돔을 넣는다. 옥돔이 살짝 익으면 채 썬 무를 넣고 익힌다. 국간장이나 소금으로 간하면 끝이다. 송송썬 파와 깨를 고명으로 뿌린다.

간단히 만들어 지는 음식이지만 꼬장꼬장하고 청빈한 선비 같은 느낌을 준다. 하여 한낱 국이라고 후루룩 먹지말자. 잠시 꼿꼿하게 앉아 침샘을 자극하자. 그리고 국물 한 숟가락 목구멍으로 천천히 내린다. 다음엔 젓가락으로 옥돔 살을 한 점 떼어 입에 넣는다. 다시 무와 국물을 한데 떠서 먹는다. 다시 국물을 떠서 전체적인 맛을 음미하고 식사를 시작하자. 무 옥돔국은 그렇게 먹어야만 할 거 같다. 그러면 무 옥돔국처럼 맑고, 맛은 시원 담백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 옛날에도 먹었고 지금도 변함없는 음식. 다른 반찬들과도 입속에서 섞이지 않도록 먹고 싶다. 새해 첫날에.

변덕스럽고 어지럽혀진 입맛을 무 옥돔국이 씻어 줄 거 같다. 더 보태지도 빼지도 않고 각자 자기성분 그대로 어우러진 맛. 오래 남는 건 조리 실력이 아니라 진실한 맛이리라.  / 김정숙(시인)

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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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 시인은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출신이다. 200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에서 당선됐다. 시집으로 <나도바람꽃>을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30여년 동안 제주도농업기술원에서 일하다 2016년 2월 명퇴를 하고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에서 귤 농사를 짓고 있다. <제주의소리>에 ‘제주 밥상 이야기’를 통해 제주의 식문화를 감칠맛 나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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