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로 터전을 옮기는 이주민의 숫자가 한해 1만명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특히 이들 중에는 적지 않은 문화예술인들이 청정한 자연환경에 매료돼 바다 건너 제주로 향한다. 여기에 제주사회는 자연, 사람, 문화의 가치를 키우자는 분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유례 없던 이런 변화 속에 제주문화의 미래를 고민하는 목소리 역시 높다. 전통과 변화 사이에서 제주문화의 정체성을 지켜내면서 끊임없이 진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고민을 녹여내기 위해 제주출신 양은희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가 [제주의소리]를 통해 '양은희의 예술문화 이야기'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양은희의 예술문화 이야기> (23) 권력자 미의식 사회를 바꿔...자본 연계한 시대, 제주는?

인간은 태어나서 자라면서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보고 경험하고 그에 대한 감정을 구축하고 저마다 독특한 미적인 취향을 만들어간다. 이런 미의식은 성장한 후 삶의 태도뿐만 아니라 패션, 예술 등 선택의 기로에서도 발현된다. 

요즘 한 권력자가 얼굴에 집착해 온 시간이 고스란히 언론을 타고 전해진다. 10년 전 사진과 최근 사진을 비교해보면 마치 아름다운 조각을 다루듯 세밀하게 얼굴을 다듬어 온 그 만의 미의식을 드러내준다. 주름이 없는 얼굴, 흐트러짐이 없는 머리 모양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매력적인 권력자가 되고자 했을까? 불멸의 아름다움을 통해 무한한 권력을 갈구했을까? 외모도 중요한 자산인 시대에 늙음을 인정하기 싫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인간의 최소한의 자기방어였을까? 

권력자도 인간인지라 미(아름다움)에 대한 관심이 없을 리 없다. 눈과 귀 등 감각기관을 보유한 인간은 정돈되고 질서있는 미의식부터 약간의 불협화음과 남다른 취향을 드러내는 미의식까지 넓은 범위를 오고간다. 감각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잘 드러내는 동시에 인간은 기본적으로 감각을 통해 경험을 쌓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드러낸다. 그렇게 쌓인 경험을 토대로 어떤 물건이나 예술작품을 아름답다고 판단하기도 하고 형편없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한 독재자는 음악이 ‘첫사랑’이라고 홍보하기도 했다. 일부 권력자는 ‘덕후’처럼 몰두하며 물건을 사랑하기도 하고 ‘한량’처럼 이것저것 다 섭렵하며 포식자처럼 취향의 범위를 넓히기도 하다. 인간의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들이다. 

권력자의 미의식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사회에 변화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사회주의 국가의 통치자는 영화에 크게 공을 들인다. 빠른 시간 내에 많은 사람에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관할하는 도시와 국가에 질서정연한 구조를 세우고, 아름다운 건물을 세우며, 강력한 군대를 유지하는 것이 위대한 문명을 창출한다고 믿는 권력자도 있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군주들이 그러했고 근대에 들어서면서 제국주의를 표방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정치가들이 지향했던 바이다. 

나폴레옹 3세는 산업화로 몰려든 인구와 주거문제, 위생문제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프랑스 제국의 위엄을 보여주기 위해 오스망에게 19세기 후반 파리를 정비하도록 지시했다. 오스망은 오래된 파리의 모습을 지키려는 반대파를 무시하면서 파리를 가장 근대적인 도시로 만들었다. 건물과 거리, 광장과 공원을 갖춘 아름다운 도시이자 사람들의 이동을 원활하게 만들고 통치하기에도 효율적인 도시가 됐다. 결국 통치자의 미의식은 권력의 아름다운 발현, 즉 통치의 성공과 밀접한 것이 된다는 것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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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망이 일군 파리의 모습. 현대 파리의 토대가 됐다. 제공=양은희. ⓒ제주의소리

독재자가 아름다움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예술에 심취해 탄압과 약탈의 역사를 쓰는 경우도 있다. 히틀러는 한때 미술학교 지망생이었으나 입학에 실패했다. 남아있는 그의 그림을 보면 제법 묘사력을 갖춘 화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당대의 진보적인 예술보다 고전적인 예술에 심취했다. 특히 유대인 작가들이 보여준 진보적인 미술을 싫어했다. 좌절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서인지 모르지만 그의 군대가 유럽을 장악하면서 수많은 미술품을 약탈했다. 남이 가진 아름다운 것을 빼앗아서라도 자신의 만족을 취하려했던 그의 욕망의 표현이었다. 

뿐만 아니라 약탈한 미술품을 모아서 전시할 미술관을 계획하기도 했다. 고향인 오스트리아의 린츠에 계획했던 미술관과 아트센터는 비엔나를 뛰어넘는 문화수도를 꿈꾸었던 독재자 히틀러의 ‘최고의 아름다움’을 향한 열망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나치가 유대인 집과 교회, 미술관 등에서 약탈한 작품들은 2차 세계대전 말기에 연합군에게 발견되었고 히틀러의 미술관은 실현되지 못했다. 

유교국가 조선의 왕에게 ‘아름다움’은 외모나 예술과 거리가 멀었다. 몸과 마음을 닦고 유교경전을 읽으며 사색을 하고 글을 쓰는 것을 중요시했던 시대에 미의식은 진리 또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와 같은 개념과 동일시됐다. 평정심을 유지하며 백성을 다스려야 하는 군주가 지나치게 하나에 탐닉하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었다. 예를 들어 여성편력이나 예술품 수집은 마음의 평정을 깨는 일로 사냥이나 온천욕처럼 자주 즐길 수 없는 것이었다.   

자본주의와 병행하며 발전하는 테크놀로지와 미디어는 현대인의 지갑을 열라고 재촉한다. ‘문화’의 옷을 입은 자본주의가 인간을 유혹하는 오늘날 권력자의 미의식은 과거와 다른 도전을 받고 있다. 통치철학에 ‘문화’가 주요 키워드로 부상하기는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자본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고 집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문화를 지향하고 있다. 결국 좋든 싫든 성공적인 자본의 유치와 그에 어울리는 발전이 바로 통치자의 미의식과 직결될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런 시대에 제주의 문화예술은 어디로 가게 될까? 

 ▲필자 양은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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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희는 제주에서 태어나 초·중·고·대학을 졸업했고 영문학·미학·미술사·박물관학을 공부했으며, 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과 한국에서 큐레이터와 미술평론가로 활동해왔다. 뉴욕을 현대미술의 눈으로 살펴 본 <뉴욕, 아트 앤 더 시티> (2007, 2010) 저자이자  <기호학과 시각예술>(공역, 1995), <아방가르드>(1997), <개념 미술>(2007)의 번역자이기도 하다.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살고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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