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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출신 다큐멘터리 사진 작가 故 김수남 작가의 작품 기증식이 16일 제주도청에서 열렸다. 원희룡 지사, 김수남 작가의 유족 등이 함께한 모습. ⓒ제주의소리
'기증시 심사' 박물관·미술관 진흥법 첫 적용...“기준없는 기증 방지”

김창열미술관 사례로 대두된 예술품 기증 문제가 앞으로는 줄어들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기증 여부를 결정하는 심사 과정 근거를 담은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이 지난해 말부터 시행됐기 때문이다. 제주 출신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故 김수남 씨의 작품이 진흥법에 따라 기증된 첫 사례로 기록됐다.

제주도는 16일 오후 2시 도청 본관 로비에서 김수남 작가 작품 기증식을 개최했다. 기승식에는 원희룡 지사, 김수남 작가의 장남 김상훈 씨, 부인 이희영 씨, 김수열 제주도문화예술위원장, 박경훈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장, 강정효 제주민예총 이사장, 서재철 자연사랑미술관장, 손영준 제주도 문화정책과장 등이 참석했다.

이날 김수남 작가 유족들은 액자 사진 작품 146점, 카메라·메모수첩 등 유품 62점, 원판 디지털 파일 17만점을 제주도에 ‘조건 없이’ 기탁했다. 공공 목적에 맞는 용도로 활용하고, 외부로의 양도 또는 판매는 안된다는 당부만 더했다. 사진 작품과 유품은 제주돌문화공원 오백장군 갤러리 수장고에 보관하면서, 올해 상반기 문을 열 예정인 가칭 ‘제주작가전시관’(옛 일도1동 녹수장·금성장)에서 전시된다. 앞서 1월 한 달 동안 도청 본관 로비에서도 일부 작품이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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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원희룡 지사, 김수남 작가의 장남 김상훈 씨, 부인 이희영 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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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남 작가의 장남 김상훈 씨. ⓒ제주의소리

이번 기증은 국내보다 아시아권에서 더 인정받는 무속 전문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의 소중한 유산을 고향 제주가 간직하게 됐다는 의미를 넘어, 예술품 기증의 새로운 기준을 세운 사례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지난해 5월 29일 공포하고 같은 해 11월 30일 시행된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는 예술품을 기증받는 법적 근거가 새롭게 만들어 졌다. 제8조 ‘재산의 기부 등’에 따르면 법인·단체·개인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설립한 박물관 혹은 미술관에 금전, 부동산, 소장품으로서 가치가 있는 재산을 기부 또는 기증받을 수 있으며, 기증품을 기증받고자 하는 경우에는 수증심의위원회를 두고 수증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제주도는 이 같은 법적 근거와 ‘제주도립미술관 설치 및 운영 조례’(작품 기증 등의 신청이 있을 경우에는 미술관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수락여부를 결정한다)에 따라 지난해 10월부터 김수남 작가 작품 기증 작업에 착수했다.

기증 심사는 제주도가 제주도립미술관에 맡겨 진행됐다. 미술관이 이미 운영하고 있는 작품수집위원회, 가격평가위원회, 운영위원회를 활용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격평가위원회는 작품 원판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가격평가를 유보했고, 운영위원회는 추후 원판 확보 작업을 진행하면서 기증자 이름을 내건 전시 공간은 만들 수 없다는 조건을 달아 기증 제안을 의결했다. 미술관 내 위원회들은 미술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다.

제주도는 이런 의견을 유족에 전달했고, 유족은 작품을 공공 목적으로만 사용하고 외부 양도를 금지한다는 조건만 제시해 기증 의사를 확정지었다. 운영위원회가 요구한 사진 원판(디지털 필름)도 제공하기로 수락하면서, 기증식 날 사진 파일 17만점이 담긴 대용량 보관장치를 원희룡 지사의 손에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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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훈 씨가 사진 파일 17만장이 담긴 대용량 보관장치를 원희룡 지사에게 넘기고 있다. ⓒ제주의소리

이런 과정은 앞서 김창열미술관 설립 과정에서 불거진 기증 논란에 비춰볼 때 진일보했다는 평가다. ‘물방울 작가’로 알려진 김창열 작가의 이름을 딴 김창열미술관은 작품 기증 과정에서 전용 공간 건립까지 여론 수렴이나 공감대 형성이 부족한 채 이뤄졌다는 비판을 받았다. ‘다른 작가들이 기증 의사를 밝히면 그때마다 전용 시설을 만들어줄 것이냐’, '기증 받는 기준은 뭐냐' 같은 문제 제기도 문화 예술계와 도의회에서 제기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수남 작가 사례부터 시작된 심사 절차는 무분별한 기증 사례를 막고, 비교적 전문적인 가치 판단에 따라 기증 받을 수 있는 기준점이 될 것이란 판단이다.

제주도립미술관 관계자는 “예술품을 기증 받을 때는 분명한 타당성, 공론화, 가치 판단이 뒤따라야 한다. 그런 판단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전문가 집단이 공정하게 진행해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공론화 과정이 부족했고 제도상으로도 미비한 점이 있었다”며 “앞으로 이 제도를 잘 이행한다면 기증과 관련된 여러 문제점이 해소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또 “지역 대표 공공미술관으로서 도립미술관의 역할도 전시 중심의 내부적으로 한정짓는 것이 아닌 지역 문화 진흥 차원에서 넓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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