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립미술관 비엔날레 3차 토론회 개최...“제주 여건 감안, 지역 문제·여론과 소통” 의견

올해 제주에서 처음 열릴 미술 전시행사 ‘제주비엔날레’는 제주의 현실적인 예술 여건을 감안해 준비해야 하고, 제주가 앓고 있는 다양한 사회문화적 문제까지 아울러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자문위원회, 토론회 등으로 여론 수렴 중인 주관 기관 제주도립미술관은 각계 의견을 모아가면서 비엔날레의 모양을 만들어가겠다는 입장이다.

제주도립미술관은 17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미술관 강당에서 제주비엔날레 3차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은 다른 지역에서 열리는 비엔날레 사례를 발표하고 토론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백기영 학예연구부장(서울시립미술관), 안미희 전시팀장(광주비엔날레)은 각각 유럽 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를 소개했고 김준기 도립미술관장, 백지홍 편집팀장(미술세계), 김백기 대표(서귀포문화빳데리충전소), 강민석 교수(제주대 미술학과)가 토론을 진행했다. 

# 순수 예술 불모지? 제주의 민낯 감안해야

토론에서는 전국 각 지역에서 비엔날레, 예술행사가 열리면서 ‘비엔날레 피로’라는 말까지 나오는 현실과 순수 예술이 대중적으로 자리 잡지 못한 제주 여건을 고려하며, 제주비엔날레를 준비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홍대에서 서귀포로 거처를 옮겨 30년 가까이 실험예술을 이어가고 있는 김백기 대표는 “서귀포, 제주는 새로운 예술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다. 제주비엔날레도 이런 부분이 중요하다고 본다”며 “도립미술관은 이런 제주의 민낯을 고려해서 비엔날레를 준비해야 한다. 민낯이란 표현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닌 현실에 기초한 판단”이라고 강조했다.

백지홍 편집팀장은 서울부터 광주, 부산, 대전, 창원, 순천에서 비엔날레가 열리고 이와 유사한 규모있는 미술행사도 곳곳에서 열리는 현실이 상당한 피로감을 준다고 해석했다.

백 팀장은 “대도시에서 규모 있는 비엔날레들이 열리고 있는데, 제주가 그런 행사들과 유사하게 현대미술의 최전선을 보여주는 미술행사로 치러진다면 전망은 회의적”이라며 “구색을 맞추기 위해 여러 주제를 다루는 백화점식 전시도 지양해야 한다. 제주는 해양, 자연 환경, 역사 등 가능성이 있는 주제가 있지만 시작인만큼 효율적으로 타이트(tight)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민석 교수는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급변하는 제주의 현실이 ‘혼란스럽다’고 표현하면서, 비엔날레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는 예술 행사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지역 작가들에게도 비엔날레는 좋은 자극이자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강 교수는 “비엔날레 같은 대규모 전시는 지역 미술계가 새롭게 고민하는 숙제 같은 역할이 될 수 있다. 다만 미술관이 비엔날레에 지역성을 담고자 한다면 그 성격을 가장 잘 담보하는 주체가 누군지도 고민했으면 한다”며 비엔날레 과정에서의 제주 작가 역할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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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립미술관은 17일 제주비엔날레 3차 토론회를 개최했다. ⓒ제주의소리

# 대규모 전시행사, 방향성과 대중 접근 방법 ‘과제’

발표에 나선 백기영 학예연구부장은 유럽에서 열리는 카셀도쿠멘타, 베를린 비엔날레, 이스탄불 비엔날레를 소개했다. 카셀도쿠멘타는 5년마다 한 번 씩 독일에서 열리는 국제미술제다. 베를린, 이스탄불 비엔날레는 2년 마다 각각의 도시에서 열리는 행사다.

백 부장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문화·정신적 재건 차원에서 열린 카셀도쿠멘타, 사회정치적인 성향이 강한 베를린 비엔날레, 비서구권 비엔날레의 대표 격인 이스탄불 비엔날레 등을 통해 제주에서 처음으로 열린 비엔날레가 가져야 할 특징을 설명했다. 

백 부장은 “비엔날레라면 어떤 사유와 형식을 제안할지 반드시 검토돼야 한다. 동시에 방식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카셀도쿠멘타는 엄청나게 많은 사회적, 정치적 주제를 담아냈는데, 주최 측은 보는 이들이 어떻게 하면 지루하지 않게 전시를 볼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밝혔다.

백 부장은 “제주비엔날레의 방향이 무엇일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다른 도시, 문명과 확장하는 차원에서 고려하면 섬 안에 갇힌 것이 아닌 확장성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며 “제주에 접촉한 신화, 해양 문화가 제주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줬고, 그 가치를 지금 다시 발견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미희 전시팀장은 1995년부터 시작해 국내, 아시아권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광주비엔날레 사례를 소개했다.

안 팀장은 광주비엔날레가 지난 2014년 정권 비판적인 전시로 외압에 휘둘린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해부터 변화를 시도했다고 강조했다. 지역사회와 적극적으로 만나는 기회를 마련한 것이다. 해외 작가들이 수개월 동안 머물면서 주민과 진행하는 지역 공동체 프로젝트, 5.18 같은 지역의 중요한 역사를 주제로 한 작업 등은 좋은 반응을 얻었다.

더불어 비엔날레 참여 작가, 지역 작가, 지역 미술 관계자들이 10개월 동안 만남을 이어가고, 비엔날레 행사장 인근 상권이나 지역사회와 편안한 분위기 속에 비엔날레를 알리는 과정 역시 호응을 얻었다.

안 팀장은 “광주비엔날레가 한동안 세계화에 집중했지만 정치적 문제를 겪으면서 지역과의 소통·연계가 부족했다는 점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래서 지난해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내용을 대폭 추가했다. 이전에는 외형적으로 화려한 점을 중시했었다”고 피력했다.

특히 “지난해 행사가 끝났지만 이미 다음 비엔날레를 위한 작업을 곧 진행한다. 올해 3월이면 2018년 비엔날레 책임자인 예술감독이 선정될 것”이라며 충분한 준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토론회 좌장을 맡은 김준기 관장은 “제주지역 사회 문제에 대한 고민, 미술관 밖 섬 전체를 활용하는 방안, 제주에 남아있는 무속적인 문화를 포용하는 역할, 해양·여성 같은 주제 등 성공적인 비엔날레를 위해 계속 고민하고 있다”며 “더 많은 조사와 고민을 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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