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읽기] (44)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ere) 『미학 안의 불편함』/고영자 미학자·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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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크 랑시에르 『미학 안의 불편함』주형일 옮김, 인간사랑, 2008년
제주도정은 지난해 8월 "동아시아의 지중해라는 지정학적 여건을 활용해 제주를 '문화예술의 섬'으로 조성하겠다"며 팔을 걷어붙였다. 이를 위해 ‘세계섬문화축제’의 부활이라든가 국제예술축제의 한 형태인 ‘제주비엔날레’와 같은 메가급 국제행사의 구상과 계획을 내놓으면서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는 확실히 최근 제주사회 내 '문화·예술' 담론 형성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우리들 일상의 소소하고 잡다한 감정을 비롯하여 정치 이슈와 관련한 것까지도 '문화'니 '예술'이니 하는 용어로 포장되어 난무하다 보니 시민사회는 어느새 이들 용어에 식상함과 피로감을 넘어서 무관심까지 보이고 있다. 이는 어쩌면 작금의 '문화예술' 탄생과 보급 프로세스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정치적 징집이나 상업적 타협의 대상이 되고 있고, 그 결과 시민들과 더불어 대다수 예술가들조차 이들 '문화예술' 생태계에서 소외되어 있다는 각성에서 오는 최소한의 저항이라 볼 수도 있다. 물론 이는 제주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全) 지구화  자본주의 사회가 직면한 딜레마인 셈이다. 

한편, 문화예술이 이 지경에 놓이게 된 배경에는 미학이 문화예술의 '모든 것'에 대해 유죄라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여기서는 미학이 예술에 대한 기생적 담론에 불과하며, 그것이 예술을 철학적 절대와 사회적 혁명의 헛된 약속들로 잘못 인도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이번 호에 소개하는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ere)의 저서 『미학 안의 불편함』은 예술과 미학을 저자가 주재하는 '법정'에 세워 그 시시비비를 양자의 공모와 대결의 긴장된 역사 속에서 가리려는 야심작이다.

자크 랑시에르(1940년~)는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미학자로 지금까지 철학, 정치, 미학 그리고 문학과 영화 관련 책들을 다수 출간한바 있으며, 이들 중 국내에서도 여러 권 번역되어 우리에게 결코 낯선 이름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의 예술과 미학사상이 대중적으로 알려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의 예술과 미학의 관계, 그리고 미학의 문제를 사변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으로 바라보고 접근하는 시각은 매우 독자적이면서도 신선하다. 그러니까 랑시에르가 말하는 '미학'이라는 개념은 예술에 대한 이론이나 아름다움에 대한 학문이라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것과는 다르다. 

이런 배경에서 랑시에르가 말하는 미학은 "예술의 작동체제로서, 담론의 모태로서, 예술의 고유성의 식별형태로서, 감각적 경험의 형태들 사이의 관계들의 재분배로서"(43쪽)의 의미로 새롭게 탄생한다. 따라서 이 책은 넓게 보면 '랑시에르적' 현대미학이 의미하고 지향하는 바를 '미학의 정치'라는 함의 속에서 깊이 성찰할 수 있는 책이다. 

미학은 궤변의 담론?

미학은 평판이 나쁘다. 엄밀히 말해 여기서 말하는 미학은 2세기 전 유럽에서 탄생한 '사변적 미학'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러한 미학의 시대는 끝났다거나 미학의 악영향이 지속된다고 주장하는 새로운 책들이 매년 출판되고 있다. 랑시에르의 이 책도 이런 시대적 흐름에서 탄생한 것이다. 이들 후발 주자들은 과거 사변적 미학이 예술작품이나 취향 판단의 의미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왜곡하기 위해 사용하는가 하면, 동시에 이들 미학이 사회적 구별짓기라는 문화적 활동들을 은폐해 왔음을 고발하고 있다. 즉, 칸트가 만들어낸 것과 같은 "이해득실을 벗어난" 미적 판단은 "사회성을 거부"하는 최고의 장소였다는 부르디외의 지적이 그것이다. 이런 비난이 꾸준히 제기되는 가운데 현대예술(포스트모던 예술)은 이들 사변적 미학이론을 예술(행위 또는 작품)에 대한 기생적 담론으로 규정, 이로부터 해방되려는 저항의 몸부림을 펼쳐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런 배경에서 랑시에르는 일부 사변적 미학으로 인해 미학(aesthetics) 일반 모두에게 가해진 오명을 벗어 던지려는 야심찬 사유를 이 책에서 전개하고 있다.

미학의 정치/감각적인 것의 분배

랑시에르는 미학(aesthetics)을 감각이나 지각을 분배하고 해석하는 하나의 체제로 본다. 그는 감각적 경험들, 곧 볼 수 있는 것, 말할 수 있는 것, 사유할 수 있는 것을 누구에게 어떻게 분배하는가 하는 문제, 곧 지극히 정치적인 문제를 미학 안에 끌어들인다. 이른바 '미학의 정치'라는 랑시에르의 사상이 탄생하는 배경이다. 

여기서 보다시피 정치는 특정 정치체제 안에서 권력을 소유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가 말하는 "정치는 시간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공동 공간의 거주자로 자리 잡기에 필요한 시간을 가질 때, 자신들의 입이 고통을 표시하는 목소리뿐만 아니라 공동의 것을 발화하는 말을 내보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을 가질 때 발생한다."(55쪽)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미학의 정치'는 공동체의 공동의 것을 규정하는 '감각적인 것의 분배(le partage du sensible)'를 재구성하는 일을 주관하는데, 이른바 공간과 시간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소리와 말의 절단과 재절단을 통한 자리와 신분의 배분과 재배분 행위가 그것이다. 거기서는 새로운 주체와 대상들을 공동체에 끌어들이고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만들고 시끄러운 동물들로만 지각됐던 사람들의 말을 들리게 하는 정치적 행위가 끊임없이 펼쳐진다. 

이처럼 랑시에르가 말하는 미학의 정치는 특정 집단의 합의(consensus) 체제 내에서만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그 체제 밖 이견(異見, 불일치, dissensus)을 품은 세력들도 매순간 끌어안아 몫을 갖지 못한 그들에게 몫을 부여하는 새로운 분배 방식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출현시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랑시에르가 생각하는 공동체는 모두가 동의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이견(異見, dissensus)들이 발현되는 감각의 공동체로서 실현된 공동체이다. 

이 연장선에서 (<시사 IN> 2008년12월 9일자 대담에서) 랑시에르는 민주주의란, 그리고 정치란 불화의 지점이며 그러한 불일치들이 발현되는 순간을 가리키는 이름이라 주장하며, 오히려 합의라는 관념에 기초한 민주주의에 반대한다고 표명하기도 했다.

미학과 정치의 윤리적 전회

이 책 마지막 장에서 랑시에르는 미학과 정치의 '윤리적 전회'를 다루고 있다. 이 단계에서는 윤리(ethics)를 위해 미학과 정치가 공동 제거된다. 이는 플라톤이 윤리적 공동체, 정치 없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민주주의와 예술을 동시에 배척했던 바, 미학과 정치는 각각 자신이 되기 이전에 이미 연결돼 있는, '감각적인 것들의 분배' 이전의 공동 영역이다. 

윤리(ethics)의 어원인 '에토스(ethos)'란 단어는 규범이나 도덕성을 의미하기 전에 체류이다. "윤리의 지배는 예술의 활동들이나 정치의 활동들에 가해지는 도덕적 판단의 지배가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구분되지 않는 영역의 구성을 의미한다. 그 영역에서는 정치적이거나 예술적인 실천들의 특수성뿐만 아니라 오래된 도덕의 핵심 자체였던 것도 해체된다.……윤리는 규범이 사실 속에서 해체되는 것이며, 담론과 실천의 모든 형태들을 구분되지 않는 동일한 관점 하에 식별하는 것이다.……(윤리는) 존재방식이며, 삶의 양식이다. 윤리는 따라서 환경, 존재방식 그리고 행동원리 사이의 동일성을 확립시키는 생각이다. 그리고 현대의 윤리적 전회는 이 현상들의 독특한 결합이다."(172쪽)

랑시에르는 미학과 정치가 '감각적인 것들의 분배'와 관련해 사실상 동일한 작업을 수행한다고 본다. 그것은 감각적 경험의 정상적 정보들을 중지시키는 일, 새로운 감각적인 것들의 분배에 참여함으로써 낡은 분배 형태와 '이견(異見, 불일치)'하는 일이다. 존재하는 분배 질서를 중단시키고 새로운 분배의 질서를 구성하는 것이 정치라면, 감각적인 것에 대한 합의된 분배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고 새로운 분배 방식을 만들어내는 것이 미학이고 예술이다. 이렇듯 역사적 경험의 자리에서 정치와 미학은 서로 조건화된 한 몸으로 등장하고 있다고 랑시에르는 주장한다. 

이처럼 랑시에르에게 미학은 그 자체로 독립적이거나 자율적인 실천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잠재성의 영역이다. 그리고 이 두 영역은 궁극적으로 사회적 윤리로 수렴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랑시에르에게 미학과 예술 나아가 정치는 언제나 사회적 윤리의 문제와 연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랑시에르의 사상은 작금의 '문화예술' 나아가 '정치'라는 말에 식상함과 피로감을 넘어서 무관심까지 보이는 우리들의 태도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우리는 우리들 스스로 자의반타의반으로 얼마나 정치와 미학의 근원적인 탄생과 쓰임을 망각하고, 그것으로부터 점점 소외되면서, 일상생활의 감성적 차원마저 포기하는 환경 속으로 스스로를 내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성할 시간이 마침내 온 듯하다./고영자 미학자·번역가

 ▷ 고영자(미학자·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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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및 재일제주인센터 특별연구원

일본 오사카대학 대학원에서 미학(예술학) 전공으로 석사 및 박사학위 취득.
프랑스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소(EHESS) 연구원 역임.
부산대학교 예술대학 대학원 강사(미학) 역임.

현재, 근·현대 문화매체론, 제주미학론, 제주 ‘이미지’ 생성 및 변천사 등을 연구하고 있으며, 번역서로는 크리스틴 조디스 저《미얀마 산책》(2008년), 데이비드 네메스 저《제주 땅에 새겨진 신유가사상의 자취》(2012년),《서양인들이 남긴 제주견문록(1845~1926)》(2013년),《서양인들이 남긴 제주도 항해·탐사기(1787~1936)》(2014년), 《구한말 佛語·英語 문헌 속 제주도(1893~1913)》(2015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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