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홍의 세상 사는 이야기] ㊻ 빅브라더 통제 사회, 블랙리스트 박근혜 정권 '판박이'

전체주의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이 최근 미국에서 베스트셀러 1위로 급부상했다고 한다. 트럼프 집권 이후 행해진 여론조작, 공권력에 의한 압제, 배타적 국가주의 등이 《1984년》에서 그리고 있는 독재 정권의 모습과 흡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트럼프의 표독한 언행과 권위주의, 강압적 이데올로기는 독재자 빅 브라더(大兄)가 여론조작, 감시 등의 수단을 동원해 사회 불만 세력과 저항 세력의 싹을 자른다는 내용을 담은 《1984년》의 공포와 전율을 환기시켜 준다.

트위터에서는 “1984년이 묘사한 디스토피아(dystopia)가 33년 늦게 찾아왔다. 이 책을 아직 읽지 않았다면 어서 읽어보라”고 권유한다. 그런데 정작 이 책을 읽어야 할 사람은 한국인이다. 왜냐면 《1984년》이 묘사한 세계상이 21세기 한국의 현 사태와 너무나 닯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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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쉰들러리스트’가 홀로코스트에서 유태인을 구하기 위한 보호와 구원의 명부였다면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는 통제와 감시와 배제의 인명록이다. 그것은 《1984년》에서 빅 브라더가 오세아니아 국민에 대한 통제와 감시의 수단으로 활용했던 텔레스크린을 연상시킨다.

大兄은 양면의 텔레비전으로, 송수신이 가능한 텔레스크린으로 개인의 사생활을 철저히 감시한다.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1만 명의 문화·예술계 인사들도 감시당하고 지원에서 배제되는 불이익을 당했을 거다. 그러니까 블랙리스트는 한 개인의 ‘표현의 자유’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정부 대 국민의 문제이고 인간 존재에 대한 부정이며 인격 말살이다.

둘째, 大兄이 통치하는 정부 조직 명칭을 보면 반어법이 확연히 드러난다. 진리성(眞理省)은 언어 변조와 역사 날조를 담당하고, 평화성은 전쟁 수행을, 애정성은 고문과 처형을 담당하는 부서이다.

빅브라더의 상징 조작과 마찬가지로 박근혜 정부의 아이러니는 언어 변조와 날조에 있다. ‘비정상화의 정상화’를 부르짖었는데 알고보니 ‘정상의 비정상화’를 도모했고 겉으로 ‘법과 원칙’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법과 원칙을 무너뜨렸다. 재벌의 목을 비틀어 재단 기금을 출연케 해서 결과적으로 문화 퇴보를 가져온 ‘문화융성’은 헛구호이고 특정인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도구였음이 밝혀졌다.

박근혜 정부의 허망한 슬로건인 ‘국민이 행복한 나라’는 가장 불행한 국민을 양산해 냈다. 참으로 우리는 반어법이 융성한 나라에 살고 있다.

셋째, 박근혜와 최순실의 모르쇠는 현대 심리학 이론(인지부조화, 선택적 인지)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1984년》에 나오는 이중사고(二重思考)로도 해명이 가능하다. 大兄이 지배하는 오세아니아의 사회는 사상 통제와 과거 통제라는 두 가지 정치 철학으로 특징된다. 이 둘을 연결시켜 주는 게 이중사고다. 

이 사고는 사실이 날조됐다는 걸 곧 잊어버리고 수정된 ‘허위의 사실’을 사실로서 믿도록 하는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사태의 주범들은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면서 이중사고를 하고 있다고 본다. 이들은 자명하고 객관적인 진실을 믿지 않는다. 아니 믿고 싶지 않은 것이다. 때때로 권력자들은 자신이 진실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헛된 유혹에 빠지기 쉽다.

조지 오웰의 《1984년》과 한국의 현 사태가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게 하나 있다. 소설에서 
섹스는 타인과는 물론이고 정상적인 부부관계에서도 쾌락으로 사용되는 걸 금지한다. 섹스란 오직 당에 충성할 자녀를 생산할 목적으로만 허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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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일홍 극작가. ⓒ제주의소리
대통령 측 변호인(대리인)의 공싱적인 발표에 따르면 최순실과 고영태는 연인관계(불륜)였고, 그 관계의 파탄으로 인해 이 끔찍한 사태가 야기됐다고 변명한다. 두 연인의 섹스는 생산의 도구가 아니라 쾌락의 수단이었다는 설명인데, 大兄의 입장에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야합이다.

우리가 이번 사태에서 얻은 분명한 교훈은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기 전에 국민의 마음을 지켜줘야 한다는 것이다. / 장일홍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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