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밥상 이야기> (21) 꿩메밀칼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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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꿩메밀칼국수. ⓒ 김정숙

산새가 텃밭을 들락거린다. 사람 사는 냄새가 싫지 않은 모양이다. 무차별적인 사냥이 금지되고 나서 새들이 날개부심이 날로 심하다. 까투리를 거느린 장끼가 텃밭 돌담에 올라 집안을 살핀다. 붉은 깃털과 길게 뺀 꼬리, 치켜든 고개가 늠름하고 멋지다. 뒤이어 산비둘기 다녀가고, 참새가 포롱포롱 순찰하고 갔다. 저녁 무렵엔 까치무리가 발자국을 뒤지며 시끌벅적 할 거다. 주워 먹을 무엇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맴도는 자유가 새삼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비도 눈도 내리지 않으면서 하늘이 낮게 드리운 날은 부엌이 따뜻하다. 농부들은 일을 벌이지 말라는 하늘의 무언을 직감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저런 집안일을 하거나 남자들은 바람이 나 사냥을 나가기도 했다. 운 나쁜 꿩이라도 걸리는 날엔 고기 맛을 볼 수 있었다. 무를 넣고 시원한 국을 끓이기도 하고 적갈을 만들기도 하고 보양식인 꿩엿을 만들기도 했다. 메밀가루를 되게 익반죽하여 뚝뚝 썰어 넣고 끓인 꿩메밀칼국수는 별미 중에 별미였다. 점점 맛보기 어려운 음식들이 되어간다.

기름기 하나 없는 꿩고기는 질기다. 익힌 살코기 색은 소고기 같다. 고기 맛 보다는 푹 끓여 먹는 육수 맛이 맑고 담백하다. 한 때 꿩 사육 하는 이들이 있어 꿩을 사다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보았는데 그 때 그 맛이 나오지 않았었다. 여러 가지 깊어지고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입맛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고기가 귀한 그 시절 귀한 맛으로 남는 귀한 추억이다.

꿩 사육하는 농장도 거의 사라지고 있다. 꿩은 길들이기 어려운 날 짐승이다. 주는 음식 먹으며 살던 꿩들도 기회만 되면 죽기를 각오하고 날아간다. 길들여지면 닭이지 꿩이겠는가. 먹거리가 흔해서 굳이 꿩고기가 아니라도 메밀칼국수는 맛있다. 입맛 따라 흐르는 게 문화 아닌가. 그 때는 쇠고기보다 쉬운 꿩이었고 지금은 꿩고기 보다 쉬운 쇠고기를 넣고 끓이면 그만이다. 익숙한 맛이 오히려 더 좋다. 흐르다 보면 또 꿩이 표적이 될 수도 있을지 누가 알랴.

세상 장담 못하는 것이 사람 입맛이란 것을. 그러기에 날개가 있을 땐 날아야 하고 걸을 수 있을 땐 걸어야 하고, 들을 수 있을 땐 들어야 하는 건가 보다. 가진 것들이 퇴화되지 않도록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움직이자. 내 눈빛이 거북했는지 꿩이 울타리를 뛰어내려 뛰다가 난다. 꿔껑! 저녁하늘이 출렁했다. / 김정숙(시인)

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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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 시인은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출신이다. 200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에서 당선됐다. 시집으로 <나도바람꽃>을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30여년 동안 제주도농업기술원에서 일하다 2016년 2월 명퇴를 하고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에서 귤 농사를 짓고 있다. <제주의소리>에 ‘제주 밥상 이야기’를 통해 제주의 식문화를 감칠맛 나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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