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의 일반적 개념은 “모든 사회구성원의 ‘적절한 삶’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 등 정치공동체가 모든 구성원에게 개별적으로 아무런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현금성 소득”을 말한다. 그야말로 공짜로 돈을 주되, 그것도 찔끔 주는 것이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기본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매달 생활급여처럼 주는 것이다. 모든 구성원이기에 갓 태어난 영아로부터 돌아가시기 전까지의 소득과 재산의 유·무나 과·소에 관계없이 주는 것이다.

그러면 이런 기본소득제도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허무맹랑한 몽상가들의 허황된 주장일까? 아니면 점점 더 심해지는 불평등과 빈곤 문제, 그리고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예상되는 대규모 실업의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획기적이며 현실적인 정책대안이 될까?

아직 생소한 개념의 기본소득에 대해 이 정도로 얘기하면 아직까지의 일반인들은 “가당치 않은 허황된 얘기하지 말라”고 한다. 심지어는 ‘무책임한 포퓰리즘을 넘어 노동의욕 저하 및 오히려 불공평으로 ’국가사회와 한 인간을 망치게 만드는 파괴적 주장’으로 단정해 버린다.

그러나 좀 더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살펴보면 귀가 솔깃한 면도 있다. 지금도 복지에 많은 돈을 투입하고 있고, 앞으로도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복지효능감은 낮다. 이러한 전통적인 복지제도에는 기초생활보장제 등 공공부조, 건강보험·고용보험 등 사회보험, 노인요양·보육서비스·교육 등 사회서비스, 아동수당·청년수당·노인수당 등 사회수당 등 각 분야의 많은 제도와 정책으로 지금도 벅찬 직접비용이 들고 있고, 이를 심의·선정·조사·관리·평가를 위한 인적(복지공무원), 조직적인 관리비용, 부가비용도 만만찮다.

실업 대책, 빈부격차 해소, 인구절벽 대안 등의 직접적인 대안으로서만이 아니라 이런 부가적인 이유로도 기본소득제만 가지고 모든 수당과 각종 선별적 복지제도를 다 묶어서 지급하기에 비용절감도 된다. 즉, 각종 복지제도를 통폐합해 일정금액만큼의 기본소득을 제공하면 오히려 추가적인 비용이 많지 않은 채 더 큰 장점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특이한 것은 이런 기본소득제가 진보적 단체나 복지계에서만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보수적인 입장에 있는 학자나 정치인들도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경제계와 노동계에서도 진지하게 논의를 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 하다. 따라서 실용주의적 입장에서라도 마음 문을 열고 심도 있게 검토해 볼만하다고 본다.

현재 이러한 기본소득에 대한 움직임은 여러 국가, 지방자치단체에서 나타나고 있다. 핀란드, 스위스를 비롯해 미국, 캐나다, 네덜란드, 브라질, 인도의 지자체 등에서 부분적이고 단계적으로 시범 실시를 하고 있다.

왜 이런 시도가 세계 도처에서 이뤄지고 있는 걸까? 돈이 남아돌아서 기본소득제도를 도입한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국가와 지자체마다 사정이 다르긴 해도 대체적으로 빈곤, 실업, 빈부 양극화, 소비감소에 따른 내수위축과 경기침체, 중상층 이하의 삶의 질 저하, 계층 간 갈등, 공동체 파괴 등 현안을 해소할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다는 데에 주목해야 한다. 즉 ‘완전 또는 부분적 기본소득’을 통해 빈곤 감소, 실업 해소, 소비 진작, 근로의욕 증진, 기본권적 삶의 보장 등의 효과를 기대하며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사회구성원이 인간적 존엄과 시민으로서의 주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또한 기본소득이 보장되면, 한 번의 실패로 영영 신용불량자로 떨어질까 봐 쉽게 도전하지 못했던 청년창업도 활발하게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무엇보다 기본소득이 근로의욕을 오히려 높여준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가령 기초생활수급자가 일정급여 이상을 받게 되면 수급대상에서 탈락할까봐 아르바이트 수준의 급여를 주는 곳만 찾아서 최소한의 노동만 제공하는데, 기본소득은 월급여로 수백만원을 벌든, 수천만원을 벌든 심사하지 않고 무조건 지급해주기 때문에 소득에 구애받지 않고 일을 더 적극적으로 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최근 제주는 높은 고용률을 자랑하고 있다. 그렇지만 통계로 보면, 제주도내 임금 수준은 전국 최하위 수준에 머물러 있다. 더욱이 도내 부동산 값이 폭등하면서 최하위의 임금 수준으로는 내 집 마련의 꿈은 하늘의 별 따기가 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제주도가 올 하반기부터 도내 임금 수준을 개선하고, 저임금 근로자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생활임금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힌 것은 반가운 일이다.

제주도의 이런 적극적인 자세라면 좀 더 나아가 ‘제주형 기본소득제도’를 도입해 볼 것을 제안한다. 문제는 돈이다. 모든 수당을 다 통합하는 전면적인 도입은 각종 관계 법률 개정이 필요하기에 당장에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따라서 현재의 각종 급여제도는 일단 두고라도 기본소득을 도민합의 하에 ‘일정액’을 모든 도민에게 제공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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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창권. ⓒ제주의소리
재원 확보와 관련해서는 국가적으로라면 논란은 클지라도 법인세 증액, 국토보유세 도입 등 별도의 증세를 통해 마련할 수 있겠지만, 지방정부 입장에서는 실제 재원 마련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입도세에 버금가는 환경부담금 부과나 별장용과 같은 주택에 중과세 부과, 그리고 각종 감면제도의 개선 등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되, 계층별·기간별·단계별 ‘부분’기본소득 도입을 하게 되면 큰 예산이 마련되지 않아도 추진은 가능하리라 본다.

제주도 공동체에 걸맞는 제주형 기본소득제의 도입은 총체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대안이 될 것이다. 시작이 반이다. / 송창권 제주자치분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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