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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피제 신부 평전 발간식과 호스피스 병원인 성이시돌 복지의원을 후원하기 위한 자리가 18일 김만덕기념관에서 열렸다. 이날 참석한 임피제 신부(사진)는 제주도민을 위한 호스피스 병원이 원활히 운영될 수 있도록 많은 이들의 관심과 후원을 당부했다. ⓒ제주의소리
임피제 신부 평전 발간식 겸 성이시돌 복지의원 후원의 자리...처음처럼 끝까지 ‘제주 사랑’

20대 청년 시절 제주에 들어와, 90세를 목전에 둔 백발노인이 될 때까지 평생 제주인을 위해 헌신한 천주교 신부 임피제(89, P.J.맥그린치). 그의 사실상 이번 생의 마지막 소망은 변함없이 제주를 향하고 있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한 무료 호스피스(Hospice) 병원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지역사회가 힘을 모아달라는 변함없는 마음가짐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기 충분했다.

임피제 신부 기념사업회(상임대표 박승준)는 18일 오후 3시 김만덕기념관 강당에서 ‘성이시돌 호스피스 병원 후원 및 임피제 신부 평전 발간 기념식’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양영철 사업회 공동대표(제주대 행정학과 교수)가 집필한 평전 《제주한림이시돌 맥그린치 신부》를 소개하면서, 임피제 신부의 뜻을 받들어 설립된 호스피스 병원 성이시돌 복지의원을 후원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준비된 자리다.

행사는 경과보고, 기념사, 원희룡 지사·신관홍 의장 등의 축사, 임피제 신부의 답사, 김만덕 기념관과의 MOU체결식, 임피제 신부와 이시돌에 대한 회고, 성이시돌 복지의원 소개, 평전 소개, 임피제 신부 다큐 <돼지신부> 예고편 상영 순으로 진행됐다.

임피제 신부의 일대기는 이미 언론, 서적 등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제주도, 특히 한림읍 출신 중·노년층이라면 임피제 신부의 업적과 노고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아일랜드 출신 임피제 신부는 1954년 26세의 나이로 제주도로 건너왔다. 허허벌판이었던 땅 위에 목장을 일구고 신용협동조합, 수직 회사, 가축은행 등의 개발 사업을 추진하면서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시간이 흘러 90세를 앞둔 나이까지 왔지만 여전히 제주를 떠나지 않으며 이시돌농촌산업개발협회 고문을 맡아 호스피스 병원 사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임피제 신부로부터 삶의 희망을 얻은 제주사람들은 지난 2014년 2월 21일 임피제신부기념사업회를 창립해 숭고한 그의 뜻을 이어 제2, 3의 임피제 신부를 배출하겠다는 뜻을 결의했다.

이날 기념식은 강당 좌석 뿐만 아니라 빈공간을 찾기 어려울 만큼 사람들로 가득 찼다. 특히 임피제 신부와의 추억을 간직한 중·노년층이 상당수 모여 눈길을 끌었다. 참석자들은 임피제 신부와의 인연을 기억하며 그가 제주에 남긴 나눔의 씨앗이 더욱 퍼져나가기를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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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사장으로 입장하는 임피제 신부.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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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피제 신부(오른쪽)와 평전 저자인 양영철 교수(왼쪽).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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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스피스 병원에 대한 제주사회의 관심을 당부한 임피제 신부의 이야기에 강당을 가득 채운 참석자들이 귀를 기울이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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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피제 신부의 이야기에 밝게 웃는 참석자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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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피제 신부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참석자들. ⓒ제주의소리

임문철 신부는 “1954년 임피제 신부님에게 세례를 받았다. 신부님을 보며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 저런 성직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내가 장가를 가지 못하게 만든 주인공이 바로 신부님”이라고 말해 좌중에게 웃음을 안겼다.

한림읍 주민 강율리안나(68) 씨는 “어릴 적 신부님이 치즈와 버터를 가져와서 아이들에게 나눠주셨는데, 당시는 그것을 비누라고 착각했다. 그래서 한수리 빨래터에서 치즈, 버터로 빨래를 문지르니까 거품은 나지 않고 찐득해져서 난감했던 기억이 난다”고 밝혔다.

또 “신부님은 해외 원조를 받기 위해 늘 바쁘셨지만 성당에 돌아오시면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시고 공부도 시키셨다. 식사 시간에도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로하느라 얼굴 뵙기 힘들 정도였다”며 “당시 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육지로 나가서 일을 해야 했는데, 신부님이 세운 수직회사가 있어서 멀리 나가지 않고 가족과 함께 일 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임피제 신부는 지팡이 없인 걷기도 힘들어질 만큼 노쇠했지만, 처음 제주에 왔던 1954년 그 때처럼 여전히 제주사회를 위한 애틋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다.

임피제 신부는 “일반 병원은 의사, 간호사가 질병을 고치는 목적이라면 호스피스는 불치병이나 암 같은 큰 병으로 더 이상 치료할 수 없는, 제일 불쌍한 환자들을 위한 공간이다. 내 누님 역시 임종하기 직전에 본국인 아일랜드 고향 호스피스 병원에 들어가 편안히 생을 마감했다”며 “호스피스 병원은 가족적인 분위기 속에 세상을 편히 떠날 수 있게 도와준다. 입원한 환자 뿐만 아니라 환자 가족도 돕는 것이다. 호스피스 병원은 제주에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전 세계적으로 많은 호스피스 병원이 후원 회원제로 운영된다. 우리 한림 성이시돌 복지의원도 후원 회원이 2000명 정도 있다. 그렇지만 운영비의 절반 밖에 충당하지 못한다. 4000명 정도 회원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예전 양돈협동조합도 작은 힘을 모아서 만들었다. 호스피스 병원도 힘을 모아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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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피제 신부.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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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영철 교수가 쓴 임피제 신부 평전 《제주한림이시돌 맥그린치 신부》. ⓒ제주의소리

제주시 한림읍 산록남로 50에 위치한 성이시돌 복지의원은 말기 암환자, 요양이 필요한 무의탁 환자 등을 위한 공간이다. 현재 20개 병상이 운영되고 있다. 후원금을 기반으로 무료로 운영되지만 부족한 살림에 적자 운영을 면치 못하고 있다. 호스피스·간호·목욕·이발·청소·식사수발·주방·말벗·산책·나들이동행·차량봉사 등 여러 봉사활동도 모집하고 있다.

문의: 064-796-2244, 010-2698-2121, www.isidorehospic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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