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후 칼럼] 합법적인 감찰과 불법적인 사찰은 종이 한 장 차이
 
보도지침과 블랙리스트 

제5공화국시기 문화공보부에서 거의 매일 각 언론사에 기사 보도를 위한 가이드라인인 보도지침(報道指針)을 시달했다. 전두환 정부는 효과적인 언론 통제를 위해 문화공보부 내에 홍보조정실의 상설기구를 설치했다. 문화와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제약하는 불법적인 통제가 폭로되고 사회 의제로 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30년 전이다. 

청와대가 기획하고 문화언론 행정기관이 집행한 사실이 밝혀진 1986년의 전두환 정부의 보도지침과 2016년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blacklist)는 30년의 간격을 두고 발생했다. 민주화 30년, 민주주의가 제도로 정착된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불법 행위가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보도지침과 블랙리스트는 청와대의 지시를 받들어 문화공보부, 문화체육부에서 실행했다. 

'위대한 보통사람의 시대' 노태우 정부시절 슬로건이다. 겉과 달리 속사정은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과 비슷했다. 1990년 10월4일, 국군보안사령부 대공처 수사3과에 근무하던 윤석양 이병이 “보안사가 민간인을 사찰했다.”고 폭로했다. 군은 무려 1303명의 민간인을 감시하고 있었다. 

군이 민간인을 왜 이렇게 곰살궂게 챙겼을까. 한국 사회의 양심 세력이니 지켜주려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2007년에야 수수께끼가 풀렸다. ‘노태우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할 경우 잡아들일 900여명의 목록’을 보안사가 1989년에 작성했다는 것이다. 그해 을지훈련 기간에 도상훈련까지 했다니 무시무시했다. 

민간인 사찰을 폭로한 윤이상 이병은 큰 고생을 했다. 가족들 직장에까지 기관원이 찾아와 괴롭혔다. 윤이상 이병은  재야단체들의 보호 속에 도피생활을 하였다. 500여 명으로 '윤석양 후원회'가 구성되고, KNCC인권위가 주는 '90년 인권상'을 수상하는 등 인권의 표상으로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이명박 정권은 또 어떤 정권인가? 박근혜 블랙리스트가 드러나서 충격을 주고 있는데, 이명박 때부터 민간인에 대한 불법 사찰이 시작되었다. 이명박 정권은 미디어법 날치기하고, 언론 탄압을 하는 등 민주주의를 외면했던 정부였다. 국민이 반대한 4대강에 22조를 퍼부었고 자원외교에도 31조를 내다버렸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보면서 갑자기 과거 보안사 민간인 사찰파문이 떠올랐다. 블랙리스트에 소설가 한강이 포함되어 있다. 한강은 소설 《채식주의자》로 영국의 세계적 문학상인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하였다.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를 아시아 작가로서 처음 수상이다. 역대 최연소 작가 수상이라는 기록까지 세웠다. 국가적 위상을 높인 만큼 대통령이 축전을 보내는 것은 마땅하다. 축전을 보낸 것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다. 

역시 블랙리스트에는 고은 시인도 포함되어 있다. 고은은 한국 시 문단의 거목이다. 요즘 《萬人譜》로 역량을 과시하고 있다. 최근 이탈리아 로마 아드리아노신 전에서 열린 ‘국제시인상’도 수상했다. 아시아 시인으로는 최초의 수상자가 됐다. 매년 노벨문학살 수상 후보에도 오르는 인물이다. 

고은 시인의 지적처럼, 정말 우리 정부가 얼마나 구역질나는 정부가 되고 말았는가. 그것은 아주 천박한 야만이다. 한 번도 저 밑바닥 국민이 돼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정치를 하니 이 꼴 아닐까? 블랙리스트에는 모두 9473명의 이름이 올랐다. 제주지역 예술인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는 소문이다. 

대체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블랙리스트가 존재하는가? 예술인으로서 현실에 목소리를 내는 것은 시대의 소명이다. 지금이 박정희 독재정권 시대인가? 블랙리스트라는 검열은 창작인에 대한 모독이며 창작에 대한 심각한 자유 침해다. 시대의 목소리는 예술 창작의 기본적인 바탕이 되는 것을 지금 정부는 모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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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을 받고 있는 인물들. 왼쪽부터 박근혜 대통령,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출처=오마이뉴스.

좌파 척결 블랙리스트

척결(剔抉)은 살을 도려내고 뼈를 발라내는 것이다. 나쁜 부분이나 요소들을 깨끗이 없애 버리는 것이다. ‘좌파 척결 블랙리스트’는 기존에 알려진 문화·예술계뿐만 아니라 사실상 한국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작성·실행되었다. 청와대는 모든 수석실이 참여하는 ‘민간단체보조금 티에프(TF)’를 만들어 463개 정부위원회를 전수 조사하는 방식으로 ‘좌편향 인사’들을 걸러내고 있었다. 이를 위해 2014년 5월 좌편향 인사 8000여명, 3000여개 문제 단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기도 했다. 

블랙리스트는 비뚤어진 이념 편향적 인식에서 출발한다. 국정 지표가 문화 융성인데 좌편향 문화예술계에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전투모드를 갖추고 불퇴전의 각오로 좌파세력과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부림 사건을 소재로 노무현 대통령이 주인공인 영화 '변호인'이나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이빙 벨' 등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종북 좌파들은 북한과 연계해 어떻게든 다시 정권을 잡으려 한다는 그들의 주장이다.  정권이 문화인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했다는 것. 그 블랙리스트는 색깔이 다른 문화인들을 차별 또는 격리시키기 위해 만들어서 운용했다는 것. 같은 나라에서 같은 국민들을 똑같이 대우하지 아니하고, 성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격리-탄압리스트를 만들어 국정에 운용했다, 블랙리스트는 아주 위험한 리스트이다. 정권이 국민을 탄압하기 위하여 만든 독(毒)이 든 리스트이다 

정부는 문화와 예술, 그리고 예술인들을 함부로 대하고 말았다. 예술은 권력을 풍자하고 시대를 비판하는 것이 중요한 사명중 하나다.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블랙리스트는 박근혜 정부의 예술적 무지를 드러내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지금도 합법적인 감찰과 불법적인 사찰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는지 모른다. 

미국에서도 민간인 불법사찰은 중앙정보국(CIA)이 주도한다. 연방수사국(FBI)에 의한 불법 정보 수집활동은 그 유명한 코인텔프로(COINTELPRO)이다. 코인텔프로는 "Counter Intelligence Program"의 약칭이다. 해외 비밀공작의 온갖 더러운 수법을 미국으로 들여온 ‘파괴분자 대응 정보활동’이다. 

코인텔프로는 저항정치 조직을 조사하여 파괴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설립했다. 연방수사국은 비밀임무를 수행하면서, 그것에 사용된 방식은 단순한 감시활동과 첩보 수집을 넘어 혐의조작 공작과 정당방위를 유도한 현장 타격도 자행하였다. 미국은 냉정했고 결코 기구나 기능을 폐지하지 않았고 입법적 보완도 했다. 

코인텔프로가 1971년 연방수사국 지부 사무실을 턴 젊은이들과 언론에 의해 시행 15년 만에 폭로됐을 때도 미 정부는 끈질기게 축소와 은폐를 시도했다. 삼년 뒤 구성된 미 의회 상원위원회는 보고서를 통해 “대외관계에서 미국의 책임을 피하려는 ‘그럴듯한 부인’을 국내정책 결정 과정에까지 적용해 헌법상의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1974년 12월22일 뉴욕타임스의 특종으로 세상에 드러난 미국 판 X파일 사건. 미국 중앙정보국이 존 F 케네디 행정부 시절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사찰을 벌였으며, 1만 명에 가까운 사람의 사찰 파일을 보관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1947년 제정된 한국의 국가보안법은 정보기관의 활동을 ‘대외안보업무’에 한정한다. 박정희 정권시절 중앙정보부는 야당 정치인은 물론 여당 정치인까지 사찰했다. 의정 활동에까지 개입해 의원들을 위축시켰는가 하면 의원의 사생활을 사찰해 약점을 잡은 다음 필요시에 협박용 카드로 활용했다. 

겉으로는 비위 사실 수집이라 했지만, 실제로는 여자관계를 포함한 모든 사생활을 사찰했다. 그들은 사실상 법 위에 존재했고, 통상적 지휘·명령 계통을 완전히 무시했다. 국군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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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관후 작가.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사령부에 소속 윤석양 이병이 “보안사가 민간인을 사찰했다.”고 폭로했다.

합법적인 감찰(監察)과 불법적인 사찰(査察)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그만큼 그 경계는 애매모호하다. 단순한 동향보고를 위한 것이라고 해도 사찰이다. 감찰은 보통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임직원의 위법․ 비위 사실을 조사하고 징계처분을 내리는 일을 뜻한다. 사찰은 조사하고 살핀다는 뜻으로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 김관후 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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