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자치단체 선양 사업 논란... 반헌법행위자 명단에도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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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 7월 'Picture Post'지에 실린 사진. 공주형무소 재소자들의 살해되기 직전 모습이다. 출처=오마이뉴스.
정부(국가보훈처)와 지방자치단체(충남도, 청양군)가 '6·25전쟁 영웅'이라며 동상 건립 등 선양사업을 하려는 대상 인물인 송요찬(1918~1980). 그는 전국 곳곳에서 민간인을 학살한 원흉으로 불리고 있다.

그는 일제강점기 일본군에 지원해 육군 오장까지 진급했다. 악행은 해방 이후 더 두드러진다.

우선 그는 제주도민들로부터 '살인마'로 불리고 있다. 1947년부터 48년까지 발생한 제주 4.3사건과 관련해 송요찬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무자비한 학살로 악명을 떨쳤다.

일본군 출신... 제주도민들에겐 '살인마'로 불려

여러 증언과 자료에 따르면, 당시 9연대장(중령)이었던 그는 '해안선으로부터 5km 이상 들어간 중간산 지대를 통행하는 사람 모두를 폭도배로 간주해 총살하겠다는 '대량학살 계획'을 채택했다. 또 초토화하는 소개령을 내렸다. 사람이 거주가 가능한 모든 곳을 없애거나 불태우게 했다. 미처 소개령이 내려진 사실을 전해 듣지 못해 마을에 있던 주민들까지 모조리 살해했다. 무자비하게 죽였다. 죄가 있어 죽인 것이 아니라 묻지도 않고 죽였다.

제주 도민의 학살을 주도한 대표적인 인물 중 한 명이 송요찬이었다.

대한민국의 헌법과 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한 반헌법행위자를 집중 검토해온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아래 편찬위원회)는 그의 혐의 내용을 '무차별 학살을 지시하는 내용의 포고령 발포'라고 썼다. 제주4.3사건 관련 학살 책임자로는 송요찬을 비롯해 이승만 대통령 등 모두 9명의 이름이 올라갔다.

보도연맹원 학살 + 형무소 재소자 학살 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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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4월 경, 대전 골령골 내 유해매장 5추정지에서 발견된 유해. 하지만 이 유해는 2015년 사라졌다. 출처=오마이뉴스.

송요찬은 6.25 전쟁 당시 헌병사령관(대령)을 맡았다. 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헌병대에 계엄지역에서는 예방구금을 할 수 있다는 '체포·구금 특별조치령'을 발령했다. 전국 각지에서 요시찰인과 보도연맹원들이 헌병대와 경찰에 의해 불법 체포돼 살해됐다. 

보도연맹은 '좌익 사상자를 전향시켜 보호한다'는 취지로 결성됐다. 정부의 주도로 전국에서 30만 명이 가입했다. 그런데 전쟁이 일어나자 인민군에 동조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수십만 명에 대해 '예방학살'을 자행한 것이다.

편찬위원회는 학살에 가담한 23명 중 한 명으로 송요찬을 꼽고 그의 혐의를 '보도연맹 및 예비검속 사건의 핵심 책임자'라고 썼다.

살해는 보도연맹원으로 그치지 않았다. 전쟁이 터지자 전국 형무소에 수감된 좌익 사상범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인 학살이 시작됐다. 짧은 형량을 받은 사람은 물론 미결수까지 처형됐다. 대전형무소를 비롯해 광주형무소,대구형무소,부산형무소에 수감된 정치범들이 끌려가 살해됐다.

대전의 경우 제2사단 헌병대와 제5연대 헌병대가 대전형무소에 파견됐다. 이들은 형무소 측에 포고령·국방경비법 위반 등 주로 제주 4.3사건, 여순사건 (관련자), 보도연맹원, 10년 이상 강력범을 인도하라고 요구했다. 수감 정치범들은 산내 골령골로 끌려가 집단 살해됐다.

편찬위원회는 형무소 재소자 학살 관련자 23명에 송요찬의 이름을 올렸다. 그의 혐의는 '대전 및 광주 형무소 재소자에 대한 총살 명령자'다.

"무리한 토벌작전으로 주민 살해"... '내란 중요 임무 종사' 혐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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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이 광천읍 담산2리 산 92번지에서 발굴한 유해. 출처=오마이뉴스.

인천상륙작전 이후 퇴로가 막힌 북한 인민군과 지방 좌익들은 지리산 등 산악지대로 숨어들었다. 정부는 공비소탕을 목적으로 토벌대를 편성했다. 하지만 토벌 과정에서 무고한 주민이 대거 사살됐다. 무리한 토벌작전 때문이었다.

특히 '백(白) 야전 전투사령부'는 '비무장 입산자'도 토벌 대상으로 간주했다. 또 산간마을을 초토화하는 토끼몰이 방식의 대토벌작전을 펼쳤다. 편찬위원회는 후방에서의 이 같은 학살과 관련해 송요찬이 '백 야전 전투사령부 소속 기동부대장'을 맡아 작전을 지휘했다고 밝혔다.

송요찬은 5.16 군사반란에도 관여했다. 5.16 군사반란은 32년간 이어진 군사독재의 시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당시 한국군의 주요 요직을 장악한 일본군 또는 만주군 출신 친일세력들은 헌법에 의해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으로 전복시켰다. 내란을 일으킨 것이다.

송요찬은 당시 육군참모총장을 사퇴한 후 미국 유학 중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후 내각 수반을 맡았다. 편찬위원회는 그에게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를 적용했다.

이처럼 그는 민간인학살과 관련 4개 사건에, 내란 분야 1개 사건 등 모두 5개 사건에 반헌법행위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런 그의 행위는 편찬위원회가 아니더라도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피해 유족들 "송요찬 선양사업 취소하고 공식 사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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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1월, 이석화 청양군수가 '6.25 전쟁 영웅 송요찬 장군 선양사업 범군민 추진위원회 발기인대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출처=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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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 6.25 한국전쟁을 전후해 군경에 의해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살해된 희생자의 유가족들이 위령제에 참석해 흐느끼고 있다. 출처=오마이뉴스.

하지만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와 충남도(지사 안희정),청양군(군수 이석화)은 '송요찬은 청양이 낳은 큰 인물로 6·25전쟁 당시 주요 전투에서 빛나는 전공을 세우고 5·16군사반란 직후 내각 수반을 맡아 국가와 국군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며  선양 사업을 벌이기로 했다.

이들 기관은 예산 지원을 확정(국가보훈처, 청양군)했거나 지원 예정(충남도)이다. 편찬위원회가 '내란 종사'로 평가한 일마저 '내각 수반을 맡아 국가 발전에 기여했다'고 정반대로 평가하기도 했다.

이들 기관은 '6.25 전쟁 영웅 송요찬 장군 선양사업 범군민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7억여 원의 혈세를 들여 생가 복원, 동상 건립, 공원 조성 등 선양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청양군 관계자는 <오마이뉴스> 보도 이후인 23일 오후 "송요찬의 부정적 행적에 대한 내용을 정리해 군수님께 보고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사업 보류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관련 기사] '민간인 학살' 송요찬, 7억 들여 기념 사업?

이에 대해 제주 4.3 유족회 관계자는 "인터넷 검색만 해도 그의 죄상이 줄줄이 쏟아져 나온다"며 "국가보훈처와 충남도, 청양군 등 지방자치단체가 이 같은 그의 행적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사업 보류가 아닌 사업 취소, 유가족에 대한 공식 사과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와의 협약에 따라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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