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읽기] (47) 조너선 갓셜 『스토리텔링 애니멀』/ 노대원 교수

▲ 조너선 갓셜, 노승영 역, 『스토리텔링 애니멀』, 민음사, 2014.
우리는 문학에 대해 문학적으로, 또는 인문학적으로 말하는 것에 익숙하다. 그러면 문학과 이야기를 과학적으로 말하는 것은 어떨까? 이를테면, 우리가 이야기를 즐기는 ‘과학적’ 이유는 뭘까? 답은커녕 이런 질문조차 생소하지만 이제는 이런 질문에 성실한 답변을 제출하는 책이 나오기 시작했다.

 『스토리텔링 애니멀』의 저자, 조너선 갓셜은 젊은 문학 연구자답게 도전적으로 문학과 과학, 또는 과학과 예술의 접점에 천착해왔다고 한다. 이 책의 제목이 ‘스토리텔링 휴먼’이 아니라 ‘스토리텔링 애니멀’인 이유도 짐작이 간다. 진화론으로 문학을 살펴본 『이야기의 기원』의 저자, 브라이언 보이드처럼 갓셜 역시 문학을 논할 때 인문학적 사고에 자연과학적 상상력을 더한다.

물론, 꼭 문학의 자연과학적 탐구에 관심을 가진 사람만 이 책의 독자가 될 필요는 없다. 과학과 문학의 관계를 떠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 특히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에조차 열광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기 바란다. 이야기가 더 좋아질 것이다.  

갓셜은 문학과 인문학, 신경과학과 심리학, 소설과 영화, 게임과 리얼리티 TV 프로그램을 종횡무진 넘나들면서 이야기의 세계를 탐사한다. 연구자답게 전문적인 최신 학술 논문과 책을 인용하기도 하고 아주 유머러스한 필치로 예화를 들거나 자기 경험담을 말하기도 한다. 갓셜의 어린 두 딸 이야기가 종종 나오는 것도 이 책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지적인 만족감과 대중 교양서로서의 재미를 둘 다 잡으려는 의도였을 것이고 이 전략은 보기 좋게 성공한다. 갓셜은 좋은 스토리텔링 연구자이자 좋은 스토리텔러인 셈이다. 

이 책은 번역 역시 훌륭한 편이다. 번역 수준이 어떤지는 다음 대목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꿈에서 동물은 생존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 문제에 반응하는 법을 예행연습 한다. 고양이는 묘사(猫事)를 연습하고 쥐는 서사(鼠事)를 연습하며 사람은 인간사를 연습한다. 꿈은 사람과 동물이 삶의 거대한 문제에 대처하는 법을 연마하는 가상 현실 시뮬레이터다.” (107쪽)

원문의 내용도 흥미롭지만 번역의 기교는 더욱 놀랍다. 원문보다 더 창조적인 번역의 한 사례로 기억할 만하다. 여기서 인용한 부분은 꿈 역시 하나의 스토리텔링이라면서 ‘밤의 이야기’(꿈)를 다루는 대목이다.

4장은 재미있는 대목이 워낙 많은 이 책에서도, 개인적으로는 가장 재밌게 읽은 장이기도 하다. ‘꿈은 억압된 소망의 위장된 실현’이라는 프로이트 정신분석학 이론이 폭넓게 수용된 문학 이론과는 주장이 다른 최근의 심리학 연구 결과들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꿈 연구자들은 꿈은 우리 마음의 쓰레기(부산물)일 뿐이라며 ‘무작위 활성화 이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저자는 앞서 인용한 것처럼, 꿈이 어떤 기능을 갖고 있을 것이라며 꿈은 현실의 문제들을 연습하는 것이라는 미셸 주베의 시뮬레이션 이론에 힘을 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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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임스 켄라인(James Koehnline)의 『문학(Literature)』. 본문 179쪽 삽화.
갓셜은, 꿈의 시뮬레이션 이론을 지지하는 것처럼, 우리가 평소에 즐기는 이야기 역시 시뮬레이션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낸다. 소설과 영화 속의 이야기는 현실은 아니다. 그렇지만 뇌과학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의 뇌는 이런 이야기(픽션)를 현실처럼 받아들인다. 우리가 영화에서 무섭거나 야하거나 위험한 장면을 볼 때 뇌는 그 장면을 허구가 아니라 실제로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처럼 처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뇌의 반응은 fMRI(functional Magnetic Resonance Imaging, 기능적 자기공명영상)와 같은 도구를 이용해 촬영한 결과로 알 수 있었다. 논픽션보다 픽션을 즐겨 읽는 사람들이 사회성이 뛰어나다는 심리학 연구 결과도 이야기의 유익함을 새삼 알게 한다. 

“픽션은 삶의 거대한 난제를 시뮬레이션 하는 강력하고도 오래된 가상 현실 기술이다.” (93쪽)

셜록 홈스가 정교한 추리를 하듯 우리는 소설가가 아니어도 자주 머릿속에서 ‘소설을 쓴다’. 우리의 뇌는 불확실과 우연, 임의로 가득한 것보다 의미로 가득한 이야기의 세계를 선호한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의미 있는 패턴을 찾지 못할 경우에는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안간 힘을 쓴다. 이야기는 우리가 삶이라는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여러모로 유익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야기에 탐닉하도록 진화했던 것일까.

예를 들어, 갓셜은 진화비평 이론가인 보이드처럼 이야기의 도덕적 기능과 공동체 결속 기능을 강조한다. 그는 이야기의 도덕성이 도덕적 충동을 반영할 뿐 아니라 ‘강화’한다고 주장한다. 갓셜이 탈도덕주의를 지향하는 현대문학보다는 주로 대중적인 이야기를 염두에 두었으며 인간의 보편적 본성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론가라는 사실, 그리고 과학적 문학 연구자들의 공통적인 대중지향성을 여기서 발견한다. 그는 이야기의 미래를 두고 이렇게 장담한다.

“다음번에 어떤 비평가가 소설이 참신함의 결여로 죽어 간다고 말하거든 하품이나 한번 쏘아 주기 바란다. 사람들이 이야기 나라를 찾는 이유는 새롭고 신기한 것을 바라서가 아니다. 보편적 이야기 문법이 주는 낡은 위안을 원하기 때문이다.” (240쪽)

수많은 사람들이 오래된 이야기 문법의 즐거움과 위안을 원한다는 사실은 틀림없어 보인다. 하지만, 사람들은 오래된 문법을 새롭게, 적어도 색다르게 변주해서 즐기고 싶어 한다는 것 역시 참일 것이다. 또 여전히 어떤 많지 않은 사람들은 오래된 문법을 벗어난 새로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책의 마지막에서 이야기의 미래를 말하면서, 새로운 기술의 출현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 같은 새로운 스토리텔링 문화를 만들어냈다고 갓셜은 소개한다. 소설이 죽었다고 걱정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소설은 특정 역사적 시기의 이야기 형식에 지나지 않으며,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 주위에 넘친다. 차라리 오히려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혹은 너무도 매력적이고 강력한 디지털 스토리텔링이 우리 삶을 완전히 집어 삼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야말로 중요한 문제라고 그가 말하는 이유다. 이야기의 이야기도 아직 끝이 나지 않았다. 우리는 앞으로 스토리텔링 역사의 페이지를 어떻게 써나가야 할까? /노대원 교수

▷ 노대원 제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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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신문방송학 전공, 동대학원 국문학 박사과정 졸업

대산대학문학상(평론 부문) 수상 

201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 당선

제주대학교 국어교육과 조교수 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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