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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 제도의 변화는 주민 삶의 질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 하나의 예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사진은 제주도의회 전경.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창간특집 - 특별기고]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변호사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한지도 10년 반이 지났다.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 등등 말잔치는 화려했지만, 지금 제주특별자치도의 현실을 보면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만은 어렵다. 특별자치를 하는 목적은 결국, 그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현 세대만이 아니라 미래세대의 지속가능한 삶을 보장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특별자치 실시 이후에, 제주가 그렇게 변하고 있는가?

역시 핵심적인 문제는 정치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특별자치’가 제대로 되려면, 특별자치에 걸맞은 정치가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정치가 제 역할을 하려면 정치제도(정치시스템)가 제대로 갖춰져야 한다. 정치는 사람이 하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시스템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특별자치가 출범할 때에는 행정체제에 대한 고민만 있었지 정치시스템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그것이 지금 제주특별자치도가 부딪힌 한계 지점 중 하나이다. 지역의 특성에 맞는 정책대안들을 고민하는 정치, 중앙정부에 대해 때로는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정치가 특별자치도 출범 이후에 과연 얼마나 이뤄져 왔나? 

정치시스템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특별자치도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할 때에 해외의 여러 사례들을 참고했었다. 그런데 정작 그 지역들의 정치시스템에 대해서는 참고를 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제주특별자치도는 포르투갈의 아조레스, 마데이라와 같은 섬 지역을 모델로 했다. 본토와 멀리 떨어져 있고, 특별한 자치권을 인정받고 있는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조레스와 마데이라의 정치시스템을 보면, 제주와는 전혀 다르다. 선거제도가 정당중심의 비례대표제 선거제도이다. 제주처럼 지역구 소선거구제 중심의 선거가 아닌 것이다. 물론 포르투갈은 국가차원의 선거제도도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특별자치를 하려고, 국가 차원의 선거제도와는 전혀 다른 선거제도를 택한 곳도 있다. 스코틀랜드 사례가 그렇다.

스코틀랜드는 역사·문화적으로 잉글랜드와는 차이가 큰 지방이어서 1990년대에 특별한 자치권을 획득했다. 그 결과 스코틀랜드 자치의회를 뽑게 되었는데, 이 때 스코틀랜드 지방에서는 독일식에 가까운 연동형 비례대표제(권역을 나눠 권역별로 적용)를 선거제도로 채택했다. 참고로 영국 국회의원은 지역구에서 1등을 하면 당선되는 소선거구제로 100%의 국회의원을 뽑고 있다. 

차별화된 정책으로 삶의 질을 높이는 스코틀랜드

스코틀랜드가 도입한 선거제도의 결과는 긍정적이다. 스코틀랜드의 경우에는 영국에서도 ‘삶의 질’이 높은 지역이 되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정치가 영국의 중앙정치와는 다른 정책대안들을 채택하면서 주민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정치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스코틀랜드는 대학교육에 관한 자치권도 갖고 있는데, 스코틀랜드 자치정부는 대학까지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스코틀랜드 출신 학생에 대해서는 대학등록금을 받지 않는 것이다. 영국 국가차원에서는 대학등록금이 1년에 9250유로(우리 돈으로 1000만원이 훨씬 넘는다)까지 오르면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지만, 스코틀랜드는 자치권을 활용해서 다른 정책을 채택한 것이다. 

이런 정책을 가능하게 한 요인 중에 하나는 스코틀랜드가 채택한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이 배분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는 결국 선거에서의 승패가 정당득표율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당들이 정책으로 경쟁하는 선거가 치러지게 되고, 그 결과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정책들이 채택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제주도의회 선거구 문제도 완전히 새롭게 접근해야

스코틀랜드의 사례를 보더라도, 지금 논의가 되고 있는 제주도의회 선거구 개편 문제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는 특별자치에 걸맞은 선거제도로 큰 틀의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그저 지역구를 분구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접근할 일이 아닌 것이다.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특별자치를 시작한다고 하면서, 특별자치에 걸맞은 선거제도를 고민하지 않았다는 것이 제주지역 지방자치의 근본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공정하고 민주적이면서도, 정당의 책임정치가 가능한 선거제도는 정당득표율과 의석비율을 일치시키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이다. 

▲ 도의회 선거구 개편 문제는 완전히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 사진은 스코틀랜드 지방정부 의회 본회의장 모습. 출처= www.scotland.org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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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제주도의회 본회의장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따라서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선거제도를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전환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고, 도의회 정수를 늘려줄 것을 중앙정부와 국회에 요구하고 설득해야 한다. 어차피 국회의원 선거제도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전환해야 하는 상황이므로, 명분이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015년 2월에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꿀 것을 권고했고, 지금 국회에는 3건의 관련 법률안도 발의되어 있는 상황이다. 어차피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전환해야 한다면, 지방의회 선거제도도 바꿀 수밖에 없다. 

그런데 광역의회를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꿀 때에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은, 지금 광역의회의 비례대표 의원 비율이 10%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하려면, 비례대표 의원 비율이 최소한 1/4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주특별자치도가 광역의회 중에 선도적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전환하겠다고 하는 논리가 설득력이 있다. 제주의 경우에는 특별자치도가 출범할 때, 육지부의 광역의회와는 달리 비례대표 도의원 비율을 도의원 정수의 20%로 했기 때문에, 도의원 정수를 5-6명 늘리고 늘어난 정수를 비례대표 의원을 증원하는데 사용하면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전환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비례대표 도의원을 늘릴 경우에는 비례대표 도의원 공천과정의 민주성·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서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좋은 제안을 하고 있다. 정당의 진성당원들의 비밀투표에 의해서만 후보자를 정하도록 강제하는 ‘공천과정의 민주화’ 조항을 선거법에 두자는 것이다. 이것도 제주특별자치도에 선도적으로 적용할 것을 제안할 수 있다. 

이처럼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특별자치에 걸맞는 정치를 바란다면, 선거제도부터 근본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제주의 미래를 위해 이 논의가 본격적으로 공론화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해설 : 연동형 비례대표제란?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의회의 의석을 정당득표율대로 나누자는 것이다. 민심대로, 표심대로 의석을 배분하자는 얘기다. 이것이 가장 공정하기 때문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택할 경우에 지역구 선거를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독일이나 뉴질랜드같은 경우에는 지역구 선거를 하면서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는 사례이다. 대한민국의 경우에는 이 방식이 아무래도 친숙할 수 있다.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 투표방식은 지역구 후보에게 1표, 정당에게 1표를 던지는 1인 2표방식이다. 우리나라와 같은 투표방식이다. 그런데 의석을 배분하는 방식이 다르다. 정당에게 던진 정당투표로 전체 의석을 정당별로 우선 배분한다. 그리고 정당은 자신들이 배분받은 의석범위 내에서 지역구 당선자부터 먼저 당선자로 인정하고, 모자라는 부분을 비례대표로 채운다. 예를 들어 전체 의석이 40석인데, A당이 20% 지지를 얻어서 8석을 배정받았고, A당의 지역구 당선자가 6명이라면 모자라는 2명을 비례대표로 채우는 것이다. 만약 A당의 지역구 당선자가 0명이라면 8석 전체를 비례대표로 채우는 것이다._#1

대한민국에서 하고 있는 비례대표는 ‘연동형’이 아니라 ‘병립형’, 즉 따로국밥 형이다. 지역구는 지역구대로 뽑고, 소수의 비례대표 의석만 정당득표율에 따라 배분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제주특별자치도의회의 예를 들면 29명의 지역구 도의원은 지역구에서 1등한 사람으로 뽑고, 7명의 비례대표만 정당득표율대로 나눈다. 이런 방식은 지역구에서 대부분의 의원을 뽑기 때문에, 정당득표율과 의석비율이 일치하지 않는 결과를 가져온다. 

반면에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득표율대로 전체 의석을 배분하기 때문에 정당득표율과 의석비율을 최대한 일치시킬 수 있다. 구체적인 사례로 설명하면 이해하기가 편할 것이다. 

영국의 런던광역의회는 2000년부터 이 방식으로 선거를 하고 있다. 총 25석의 의원을 뽑는데, 14명은 지역구 선거로 뽑고, 11명은 비례대표로 뽑는다. 그런데 전체 의석은 정당득표율에 따라 일단 할당을 하고, 각 정당은 자기가 할당받은 의석내에서 지역구 당선자부터 인정하고, 나머지를 비례대표로 채우는 방식이다. 

2016년에 있었던 런던광역의회 결과를 보면, 이 방식을 적용하는 방법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아래의 표에서 보는 것처럼, 각 정당은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할당받고, 할당받은 의석 범위 내에서 지역구 당선자부터 채우고, 남는 부분을 비례대표로 채운다. 예를 들면 노동당은 40.3%를 얻어 25석 중에 12석을 할당받았는데, 노동당의 지역구 당선자가 9명이었으므로, 모자라는 3명을 비례대표로 채우는 것이다. 녹색당의 경우에는 8.0%를 얻어 2석을 할당받았는데, 지역구 당선자가 없으므로 비례대표로만 2석을 채우는 것이다. 

<2016년 런던광역의회 선거>

 정당

 정당득표율

 할당의석(A)

 지역구 당선자(B)

비례대표 당선자(A-B)

 노동당

 40.3%

 12

 9

 3

 보수당

 29.2%

 8

 5

 3

 녹색당 

 8.0%

 2

 

 2

 영국독립당 

 6.5%

 2

 

 2

 자유민주당

 6.3%

 1

 

 1

 기타 정당 **

 9.7%

 

 

 

합계

 100%

 25

 14

 11

** 5% 이상 득표한 정당만 의석배분

이 선거제도는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므로, 민심을 가장 공정하게 반영하는 제도이다. 

제주특별자치도의 경우에도 지방선거 때마다 정당이 얻은 득표율과 의석비율이 상당히 불일치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2014년과 2010년 지방선거의 경우에는 새정치민주연합과 민주당이 득표율에 비해 의석을 많이 얻었고,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이 45.3%의 득표율로 36석중 22석(의석비율 61.1%)을 차지하여 득표율에 비해 의석을 많이 얻었다. 이것은 표심이 도의회 구성에 공정하게 반영되지 않는댜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선거때마다 정당득표율과 의석비율이 일치하지 않는 문제점을 해소할 방법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선거제도를 바꾸면 소수정당의 의회 진출도 쉬워지게 된다.  

<2014년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선거>

 정당

 득표율 

 총 의석 수 

 의석비율 

 새누리당 

 48.69% 

 17석 

 47.2% 

 새정치민주연합

 37.82% 

 16석 

 44.4% 

  통합진보당

 4.30%

 - 

 

 정의당

 6.10% 

 - 

 

 녹색당

 1.65% 

 - 

 

  새정치당

 1.42% 

 - 

 

 무소속

 - 

 3석 

 8.3% 

  합계(교육의원 제외)

 

 36석

 


<2010년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선거>

 정당

 득표율 

 총 의석 수 

 의석비율 

 한나라당

 36.13% 

 12석 

 33.33%

 민주당

 35.79%

 18석

 50%

 민주노동당

 11.15%

 2석

 5.6%

 국민참여당

 9.90% 

 1석  

 2.78% 

 진보신당

 3.58%

 - 

 

 기타정당

 3.40% 

 - 

 

 무소속

  

 3석

 

 합계(교육의원 제외)

 

 36석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선거>

 정당

 득표율

 총 의석 수

 의석비율

 한나라당

 45.3%

 22석

 61.1%

 열린우리당

 26.6%

 9석

 25%

 민주노동당

 20.1%

 2석

 5.56%

 민주당

 8%

 1석

 2.78%

 무소속 

 

 2석

 

 합계(교육의원 제외)

 

 36석

 

또한 이 선거제도는 정당이 책임있게 정치를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 선거의 승패는 정당득표에 달려 있기 때문에, 정당들이 정책으로 경쟁할 수밖에 없다.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경우에는 지역구 선거도 하기 때문에 무소속도 지역구로 출마가능하다. 다만 비례대표는 당연히 정당들끼리 배분한다. 

더 바람직하다면, 제주지역의 주민정당(local party)도 인정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독일의 경우에는 지방선거에만 후보를 내는 유권자단체가 지방선거에 참여하고 있다. 

▲각주
#1
‘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는 특정한 정당이 할당받은 의석보다 지역구 당선자가 많은 경우가 간혹 발생할 수 있다. 그런 경우를 초과의석이라고 하는데, 비례대표 의석숫자가 30% 정도 되면 초과의석이 많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큰 흐름에는 지장이 없기 때문에, 그냥 초과의석이 발생한 부분을 인정해주는 방법도 쓰고 있다. 그럴 경우 다른 정당이 본래 할당받은 의석보다 의석이 줄어들면서 약간의 불이익을 받게 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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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수 변호사는?
변호사였지만, 10년째 휴업중입니다. 국립제주대학교 교수를 지냈습니다. 참여연대,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같은 단체에서 활동했고, 2011년 가을부터 5년간 녹색당 사무처장, 공동운영위원장을 맡았습니다. 지금은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고, 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를 전면개혁하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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