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제주의 아름다운 바다와 오름, 돌담, 곶자왈, 사시사철 푸른 들과 정겨운 마을들을 지나 평화와 치유를 꿈꾸는 제주올레의 모든 코스 약 425km를 두발로 걸어서 완주한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제주올레 도보여행자입니다.
- 2016년 12월 21일, 제주올레 완주증서.

간세라운지에서 전 구간 스탬프가 찍힌 올레 여권을 받는 순간 기쁨이 저절로 터져나왔다. 내가 아름다운 제주올레 도보여행자라니! 누군가 내게 지난해 2월부터 12월까지 425km 올레 완주 비결을 묻는다면, 매번 작은 목표를 하나씩 만들고 해치우는게 취미인 친구를 둔 덕분이라고 말하겠다. 신기한 것은 그 친구는 처음부터 완주를 목표로 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내가 뭐 그리 대단한 비전을 가졌다고...해보는데까지 해보자’라고 여유있게 여정을 시작했다.

올레길은 평화와 치유를 꿈꾸는 길이지만, 그 위에서 보낸 시간은 내내 행복하고 아름답지 않았다. 아스팔트 시멘트길에 짜증이 나면서 아름다운 자연에 취하고 친구와 대화에 취하며 제주의 속살을 느껴나가기 시작했다.

'고사리는 따는 것이 아닌 꺾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알려준 친구와의 수다, 숨차게 마지막 있는 힘을 다해 올랐던 땅끝 지미봉, 제주의 시작 마을 시흥에서 마지막 종달, 담장 아래 움푹 앉아 들어서있는 우영팟이 휜히 보이던 시골 작은 집, 숨겨진 마을 대평과 박수기정, 당산봉을 걸으며 자석처럼 내 얼굴을 계속 끌어당겼던 차귀도, 무엇보다 추자에서 바라본 아련히 하늘 끝에 떠오른 한라산 정상! 올레를 걷는 매 순간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올레길은 내게 반가운 만남도 안겨줬다. 정말 오랜만에 만난 옛 동료, 연차를 받고 홀로 걷던 대기업 사원, 어린 아들과 함께 완주를 꿈꾸며 스탬프를 꾸욱 누르던 젊은 아버지...자연만이 전부였다면 아마 완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영혼없이 시작했던 나의 발걸음은 언제부터인가 '제주도민이라면 두 발로 한번쯤 올레를 걸어야 한다'는 오기와 책임감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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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 문화정책과 강은영. 제공=제주도청. ⓒ제주의소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라고 외치던 복두장의 대나무숲처럼 올레는 나의 온갖 푸념을 전부 품어준 치유의 대나무숲이었다. 사람이 있었고 이야기가 있었고 추억이 생겼다. 비가 촉촉이 내리던 어느 날, 곶자왈 올레를 갔다오고 양말 목선을 따라 쪼르르 난 빨간 종기 흉터는 올레에 대한 내 자랑스러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드라마 <도깨비>의 대사가 떠오른다. 

“올레와 함께한 시간, 모두 눈부셨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날이 좋았다. 제주인이라서 행복했다.” / 제주도청 문화정책과 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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