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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와 규슈에 자라나는 '평화의 씨앗'

오한숙희 kyou0079@naver.com 2017년 03월 16일 목요일 13:00   0면

[일본 규슈올레서 만난 제주] ④ 진짜 삶을 위해 길을 걷다 / 오한숙희

남에게 폐끼치면 안된다는 일본의 예절문화에는 외로움이 배어있다.  오루레에 환호하는  이유는 소통과 연대의 욕구에 다름 아닐 것이다..jpg
▲ 남에게 폐끼치면 안된다는 일본의 예절문화에는 외로움이 배어있다. 오루레에 환호하는 이유는 소통과 연대의 욕구에 다름 아닐 것이다. /사진 제공=강올레 ⓒ 제주의소리

남의 동네에서 환영받는 기적

미야마 코스에는 산이 두 개였다. 대나무로 울울창창했던 여신의 산을 내려오니 또 산, 거긴 대나무 보다 물이 많았다. 돌마다 촉촉하고 보드라운 이끼들이 덮혀있는 길이 끝없이 이어져서 걷는 내내 몽환적인 느낌이었다.

청수산이라는 코스의 이름대로 푸른 산과 맑은 물, 어느 화장품 광고에서 모델이 혼자 걷던 수채화 같은 풍경 속에 내가 있었다.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내가 착해지고 있는 게 느껴졌다. 자연의 힘이란 이런 것이구나. 

문득, 자연 앞에서 인간은 하나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름다운 자연을 어찌 국경이라는 이름으로 조각낼 수 있으며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화낼 민족이 어디 있을까? 자연을 즐기고 사람 사는 정을 나누는 것 외에, 언젠가 사라져 버릴 운명의 인간이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이 뭐가 더 있을까?

자연보다는 돈, 나눔보다는 내 것, 국경, 국가, 이런 추상적인 관념의 틀에 매여 걱정하고 긴장하고 전쟁하는, 뉴스에 나오는 세상은 얼마나 헛되고 어리석은 삶인지, 그래서 사람들은 길을 걷는 건지도 모른다. 그 어리석은 환영에서 벗어나 진짜 삶을 살기 위하여.

오루레가 일본에서 대환영을 받는 이유도 ‘진짜 삶’에 대한 갈망 때문일지 모른다. 일본은 지방자치의 세계적인 모범사례이지만, 뒤집어보면 자기 동네에만 국한된 삶을 산다고 할 수 있다.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일본 예절문화의 뒷면에는 나와 너를 가르는 단절이 엄연하다.

각이 서게 정돈된 주택가 담장의 나무들 속에는 나뭇가지가 옆집에 넘어갈세라 매일 잘라내야 하는 이웃간의 긴장이 숨어있다. 일본 화가 요시토모 나라가 창조한 캐릭터, 사납고 공격적인 얼굴 속에서 배어나오는 외로움과 슬픔을 세계의 평론가들은 현대인의 소외라고 해석했지만 일본 사람들의 깊은 속내가 모티브였을 지도 모른다.     

남의 마을을, 남의집 마당 앞을 이렇게 가까이 지나는 것이 일본사람들에게는 오루레가 만든 기적이다.jpg
▲ 남의 마을을, 남의 집 마당 앞을 이렇게 가까이 지나는 것은 일본사람들에게는 오루레가 만든 기적이다. /사진 제공=강올레 ⓒ 제주의소리

실제로 일본 올레꾼은 길을 걸으며 “남의 집 앞을 이렇게 가까이 지나가고 남의 집에 이렇게 들어오고...정말 꿈만 같다”고 하더니 급기야 오루레가 기적이라고까지 했다. 폐 끼치지 않는 외로운 예의와, 서로 민폐 끼치며 어울려 사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이 살맛나는 삶인지는 물을 필요조차 없이 자명한 것이다. 

올레를 수입한 일본관광추진기구로서는 관광산업의 일환이었겠지만 평범한 사람들에게 오루레는 자기 마을과, 자기 집 마당을 열어 소통의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공식적 명분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내가 사는 우리 마을이 아름답다하여 찾아와 주는 사람들의 존재는 분명 삶에 활력이 된다. 그들은 경계를 요하는 낯선 사람이 아니라 반가운 손님이다. 손님이 오면 아이들이 기뻐서 흥분하는 이유는 정체되었던 집안 분위기가 확 바뀌기 때문이다. 소통의 에너지란 그런 것이다.  

오루레 코스 개장행사를 치르느라 들썩였던 두 마을에는 어떤 에너지가 돌고 있을까. 그들이 우리에게 베풀어준 만큼 좋은 에너지를 주고 갈 수 있기를, 질문이 풀린 자리에다 작은 기도를 심으며 길을 걸었다. 대나무처럼 쭉쭉 걷고 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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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루레를 사랑하는 일본 여성들. 제주 올레축제때 반드시 오겠다고 약속했다. /사진 제공=강올레 ⓒ 제주의소리

평화, 자꾸 걸어나가면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지만 일본의 도시락은 정말 매력만점이다. 추운 날에 밥이 찬 것이 흠이지만 건강에 좋은 재료를 조금씩 다양하게 채워넣은 디자인은 오감만족이다. 

과연 ‘벤또 싸비스’ 여사는 점심식사 장소에서 열심히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내가 행여 못 알아볼까봐 위생모자와 마스크까지 벗고 나를 반겼다. “오하이오 고자이마스(안녕하세요)” 마음은 그게 아니었지만 짧은 인사말밖엔 할 말이 없어 아쉽게 돌아섰다. 그런데, 그가 내 앞을 막아서더니 계속 뭐라고 뭐라고 말을 하는 게 아닌가.

어제 저녁처럼 내 눈을 열정적으로 들여다보면서. 그리더니 갑자기 손뼉을 치며 막 웃어대는데, 거의 동시에 나도 빵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의 웃는 모습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마지막에 한 말을 내가 이해한 까닭이었다. 

“나는 왠지 네가 내 말을 다 알아 들을 거 같아서 하고 싶은 말을 막 쏟아 놓는 거야. 이러는 내가 나도 너무 웃겨”

그가 웃기 직전에 한 말은 분명 이거였다. 그의 표정과 태도가 딱 그랬다. 도시락을 든 나 그리고 주방모자를 쓴 그, 분명 말은 안 통하는데 같이 깔깔대는 이상한 상황, 그럼에도 정작 우리 둘은 하나도 이상할 게 없는, 이 희한한 내막을 하늘에 뜬 저 해는 이해하겠지?         

사실 규슈올레 2박 3일 동안 나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있지 않았다. 지구에 있는 아름다운 자연과 그 자연에서 태어난 마을에 있었을 뿐이다. 내가 만난 것은 뉴스에서 본, 군국주의 망령을 좆는 일본사람이 아니었다. 사람을 반기는 시골마을의 그저 착한 사람들이었다.

‘환영’이라고 한글을 쓴 작은 종이를 손에 들고 마을 길목에 서 있는 할머니들과 열 살 남짓한 소녀, 그들의 마음에 작은 정표라도 건네려고 열심히 배낭속을 뒤지는 올레꾼,

순간순간 길 위에서 펼쳐지는 가슴 찡한 장면들은 각본없는 휴먼드라마였다. 사람과 사람이 순수하게 마음을 여는 이것이 사람 사는 맛이 아니고 무엇이랴. 이들은 일본인과 한국인이 아니라 비행기로 1시간 떨어진 거리의 이웃이었다. 

헤어지면서 벤또 싸비스 여사가 내 이름을 물었다. “숙희”라고 하자 그가 “스끼”라고 따라 말했다. 일본발음이라 그러려니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더니 그가 머리 위로 하트 표시를 하면서 “라브라브” 하고는 또다시 깔깔 웃어댔다. 알고보니 스끼는 좋아한다는 뜻. 이 명랑아줌마를 어이할꼬.

나는 그에게 올 가을 제주 올레 축제에 놀러오라고 초대했다. ‘제주올레’라는 말은 오루레가 있는 곳에서는 외국어가 아니었다. 단박에 알아들은 그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약소꾸. 약속이 일본말로는 약소꾸라니 이쯤 되면 일본어 배워볼만 하겠는 걸,       

전날 만찬 파트너였던 걷기 협회장은 제주올레축제 날짜가 정해지면 메일을 달라고, 반드시 회원들과 함께 오겠다며 진작에 자기 명함을 쥐어주었다. 오루레를 개장한 그들에게 제주는 세상에서 가장 각별한 곳이었다. 

올레는 일본사람과 우리나라 사람을 길동무로, 평화를 만들어갈 동지가 되게 한다.jpg
▲ 올레는 일본사람과 우리나라 사람을 길동무가, 평화를 만들어갈 동지가 되게 한다. /사진 제공=강올레 ⓒ 제주의소리

올레와 오루레, 길은 한국사람과 일본사람을 길동무로 만들었다. 식민지의 역사를 넘어 같은 시기에 지구별로 소풍 온 친구로 만들었다. 일본정부의 군국주의 분위기가 한층 고조되고 있다는 뉴스가 계속 나오는 요즘, 이런 길동무와 친구들이 점점 많아진다면 ‘뉴스의 세상’은 ‘진짜 삶’에 밀려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걸었던 길, 내가 위로 받았던 자연, 나에게 음식을 베풀어준 사람들이 사는 그 곳에 폭탄을 쏜다고 하면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세계 걷기여행을 하면서 저절로 평화운동가가 되었다는 어떤 사람의 말은 그만의 것이 아닐 터이다. 길은 평화를 낳는다. 길을 내는 것은 평화를 낳는 것이다. 사라진 길은 되살리고 끊어진 길은 잇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는 올레 정신으로, 걷는 길이 지구에 자꾸자꾸 생겨난다면?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들 다 만나고 오겠네.
온세상 어린이가 하하하하 웃으면
그 소리 들리겠네, 달나라까지

노랫말처럼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사람들을 다 만날 것이고, 온 세상 사람들이 하하하하 웃으면 그게 바로 평화 아닌가. 옛길이 회복되면서 되살아난 이즈미 마을의 샘처럼, 세상에 길을 내다보면 평화로웠던 지구별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노란색 멜빵 반바지를 입은 오루레 완주자와 오루레 핑클은 이 말에 동의하리라.        

나는 일본어공부를 결심했다. 올 가을, 벤또 싸비스 여사와 제주 올레길을 걸으며 웃고 또 웃을 것을 기대하면서. 일단 우리 둘이 웃는 것으로 평화의 씨앗을 심겠다는 야무진 각오로. / 오한숙희 <끝>

▲ 여성학자 오한숙희.

오한숙희는? 1959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전공했다. <딸들에게 희망을>, <그래, 수다로 풀자>, <부부? 살어? 말어?>, <사는 게 참 좋다> 등을 펴냈다. 

여성학자이면서 방송인, 에세이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제주 서귀포로 이주한 지 3년차다. 제주문화방송 TV <스토리 공감>을 진행하고 있으며 제주도 양성평등위원. 서귀포다움을 위한 건축포럼 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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