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밥상 이야기> (26) 전복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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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복죽. ⓒ 김정숙

봄 바다는 세련되고 차분하다. 지천에 부산대는 생명들로 아침마다 꿈자리가 몽롱하고, 방올방올 헤삭헤삭 꽃봉오리 터져도 바다는 은근한 눈빛을 보낼 뿐이다. 절경을, 때론 절망을 앞에 두고도 호들갑스럽지 않는 제주 사람들에겐 어쩌면 봄 바다의 피가 흐르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바다 풍경을 바라보노라면 전복죽 한 그릇 놓고 마주하고 싶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제주 음식 중에 귀한 것으로 치면 전복죽을 빼놓지 못할 것이다. 해녀의 집이라 해도 전복은 쉽게 먹을 수 있는 식품이 아니었다. 지금도 자연산 전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허다할 것이다. 좋은 건 다 내다 주고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나마 양식기술의 발달로 가다오다 한 번씩 호강을 누릴 때가 있어 다행이다. 전복죽은 맛도 맛이지만 쇠약해진 몸과 마음을 북돋아 주는 음식이다.  먹자들면 전복죽도 쉽고, 맛있는 걸로 치자면 넘치고 넘치는 세상에 산다. 전화 한 통이면 현관까지 달려와 주는 서비스까지 갖추고 말이다.

전복은 껍데기만 떼어내고 내장채로 다 먹는 식품이다. 뭍사람들은 게웃을 넣지 않고 죽을 끓이지만 제주에선 다르다. 게웃이라고 하는 전복내장은 젓갈을 담그기도 한다. ‘게우젓은 애첩에게도 안준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풍미가 좋다. 죽을 끓일 때도 게웃을 같이 넣고 끓여야 맛있다. 죽을 끓이는 전복은 너무 큰 것 보다는 중간크기정도가 질기지 않아서 좋다.

수세미로 문질러 씻으며 물때를 벗긴다. 숟가락을 이용하여 껍데기를 떼어내고 이빨 있는 부분을 도려낸다. 그냥 써도 상관없다. 내장과 함께 얇게 저며 썬다. 솥에 전복과 쌀을 넣고 물을 넉넉히 부어 끓인다. 압력솥을 이용하면 쉽고 맛있다.

밥하는 만큼의 시간이면 충분하다. 물을 넉넉히 잡으면 죽이고 밥물로 잡으면 밥이 될 것이다. 김이 빠지면 솥을 열고 소금으로 간하고 참기름을 두른다. 밥이라면 비빔장을 따로 만들어 곁들인다.

전복은 이제 대중식품에 가깝다. 회, 찌개, 전골, 구이, 찜, 장아찌 심지어 삼계탕에까지 오지랖을 넓힌다. 전문영역으로 때로는 얼굴마담으로 그 귀함을 이어가고 있다. 그렇다고 전복으로서의 격이 내려가는 건 아니다. 제 아무리 귀하더라도 필요 한 곳, 쓰일 데 쓰이는 전복다움이다. 제주 토박이라서 그런지 내 입에는 전복죽만 한 건 없다. / 김정숙(시인)

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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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 시인은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출신이다. 200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에서 당선됐다. 시집으로 <나도바람꽃>을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30여년 동안 제주도농업기술원에서 일하다 2016년 2월 명퇴를 하고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에서 귤 농사를 짓고 있다. <제주의소리>에 ‘제주 밥상 이야기’를 통해 제주의 식문화를 감칠맛 나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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