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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지 먹은 놈이나 국물 먹은 놈이나"

김길웅 kimku918@naver.com 2017년 03월 20일 월요일 09:03   0면
가벼움과 속도가 지배하는 요즘, 옛 것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더구나 그 옛 것에 켜켜이 쌓인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응축돼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 것을 빌려 지금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다. 고문(古文)에 정통한 김길웅 선생이 유네스코 소멸위기언어인 제주어로, 제주의 전통문화를 되살려 오늘을 말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김길웅의 借古述今] (14) 건더기 먹은 놈이나 국물 먹은 놈이나

“맞주, 맞인 말이라 양?” (맞아, 맞은 말이라 예?)
  
둘 다 혼금(하나 같음)이라 함이다. 좀 풀어 말하면, 잘 먹은 놈이나 못 먹은 놈이나 결과적으로 배고파지기는 매일반이고, 잘 사는 사람이나 못 사는 사람이나 결국엔 매일반이란 뜻이다. 실은 다르다 해도 종잇장 한 장 차이다.
  
조금 확대하면, 비슷한 속담들이 내려온다.
▲거기서 거기, 그게 그거
▲오십보 백보(五十步 笑百步)
▲도토리 키 재기

참 그럴싸한 비유다. 건더기만 건져 먹었거나 국물밖에 먹지 못한 놈이나 따지고 보면 피장파장인 게 맞다. 

더욱이 옛날 제주처럼 못 살던 시절에 국이란 게 어디 별난 것이었나. 보리밥 조밥 같은 서속밥도 없어 못 먹던 때라 국이라고 끓여 먹던 게 된장 풀어 놓은 배춧국 무국이 고작이었다. 온 식구가 함께 받아 앉던 두레상에 어쩌다 개날 도날에 한번 고깃국이 오르는 수가 있었다. 

여름철 맬 거릴 때(멸치 잡힐 때)면 끓이던 맬국이 참 배지근(멸칫국이 참 후미져, 厚味)해 오랜만에 입을 호사시키곤 했다. 멸칫국엔 우영에서 토다온 송키(텃밭에서 캐 온 배추 따위 푸성귀)가 찰떡궁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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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전통음식인 멸치국. 출처=오마이뉴스.

그러니까 평소에 먹는 국은 건더기라거나 국물이라거나 그게 그거였다. 속담의 행간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절대빈곤으로 그렇게 못 살았다는 뜻도 숨어 있다.

좀 넓게 보면, 못 살던 시절에는 사람들의 삶이란 것이 엇비슷 비등해 별로 표 나지 않았다. 잘 산다 해도 그렇고 못 산다 해도 그렇고, 그만그만했다. 마을 전체가 작고 허름한 초가집이고, 사람들은 닭 울 무렵에 일어나 갈중이 적삼(갈옷 상하의) 입고 이슬을 차며 밭으로 가 몸이 기울게 일하다 어둑해야 집으로 돌아왔다. 등에 붙은 배를 달랜다고 정지(부엌) 토벽에 희미한 등잔불을 켜고 식구가 두레상에 둘러앉아 양푼이 식은 밥을 비웠다. 물이 귀하던 시절이라 세숫대야에 손바닥 담글 만하게 물을 부어 두어 번 낯 씻는 둥 마는 둥 하고 좁은 방에 몸을 뉘였다.

그런 살림 형편에 국 한 그릇 받아 앉아 건더기다 국물이다 타령하게 생겼는가 말이다. 나중에 이르러 이런 식생활은 머릿속에서 잘 살고 못 살고의 개념을 몰아냈을 것이다. 잘 산다고 해 봤자 수백 가호 마을에 기와집 한 채가 고작이던 시절 얘기다.

요즘처럼 빈부의 격차가 우심한 게 문제다. 계층 간의 구조적 갈등이 바로 이 고르지 못한 삶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잘 사는 사람을 바라보면서 부러워하고 시새워하는 마음이 다 거기서 나오는 게 아닌가. 그래서 사단이 생기면서 불화와 대립으로 갈등의 골이 깊어 간다. 못 사는 쪽이 갖게 되는 상대적 빈곤감은 해소할 출구를 못 찾은 채 숙제로 남을 수밖에.

생각다 보니, 너무 못 살아서 그렇지 옛날 잘 살고 못 살고 별로 표 나지 않아 그만그만하던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다. 

하지만 지금이라고 사람 못 살 세상인가. 아니잖은가. 

일하면 일한 만큼 돈도 만질 수 있고, 노력한 만큼 일신의 영달을 도모할 수 있다. 누구는 금수저, 누구는 흙수저라며 수저만 따질 일이 아니다. 개천에서 용 나던 건 옛일이라 하지만, 엄연한 건 지금도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사실이다. 여의주를 물면 승천하는 것이 용 아닌가. 가슴속 깊이 꿈을 갖고 살아갈 일이다.

“건지 먹은 놈이나 국물 먹은 놈이나”, 못 살던 시절 얘기다. 

불끈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몸을 일으켜야 한다. 직립(直立)해야 한다. 저 하기 나름이다. 용렬하지 않은가. 국그릇 놓고 건지다 국물이다 하지 말 일이다.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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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길웅 시인. ⓒ제주의소리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모색 속으로>, 시집 <그때의 비 그때의 바람>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http://www.jejusori.ne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1개의 의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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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r5501 2017-03-23 22:24:15    
요샌 건지보단 국물이 더 베지근헙디다
21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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