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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년만에 모습 드러낸 세월호 23일 오전 전남 진도군 세월호 인양 현장에서 바닷속에서 녹슬은 세월호 선체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세월호가 진도 해상에서 침몰한 뒤 이날 수면 위로 처음 떠오른 것은 정확히 1천73일째다. ⓒ 오마이뉴스. 사진공동취재단
절대, 잊지 않기 위하여
[여는 글] '4월 16일, 세월호 : 죽은 자의 기록, 산 자의 증언'을 내놓으며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수많은 학생들이, 사람들이, 통째로 바다 속에 가라앉는 상황에서 너무 무기력한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우리가 이 정도였던가. 그 와중에 때가 되면 배가 고프고, 때가 되면 잠을 자야 하는 자신이 싫었다. 집에 계신 노모는 TV를 보다 울컥 우시기를 몇 날, 결국 밤잠을 잘 못 주무셔 응급실로 가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주변 사람 중 세월호에 탔던 사람이 있든 없든, 세월호 침몰 사고는 모든 사람에게 트라우마를 남겼다.

이 참사를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이 기획은 그 질문에서부터 시작했다.

기억은 의외로 불완전하고, 쉽게 왜곡되며, 잘 잊힌다. 그래서 기록하기로 했다. 2014년 4월 16일 그날, 그 시각, 세월호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시간은 최대한 잘게 쪼개고, 공간은 최대한 좁게, 하나 하나 꼼꼼히. 우리는 기록하는 자들이 아닌가.

분노는 행동을 위한 에너지가 되기도 하지만, 정확한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분노는 엉뚱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최대한 확보 가능한 객관적인 기록을 모았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을 직접 만났다. 아직 참사가 진행형이었기에 최대한 조심스럽게. 

우리는 지난 3주간 서울에서, 안산에서, 인천과 부천에서, 그리고 제주도에서, 세월호에 탑승했던 성인 생존자 17명을 만나 증언을 들었다. 어떻게 살아 돌아왔는지를. 그때 그 곳에서 무엇을 보고 들었는지를. 세월호 도면을 펼쳐 한 곳 한 곳 같이 찍었다. 그 분들은 힘든 상황에서도 취재에 응해주셨다. 이 지면을 빌려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안산 단원고 학생 생존자는 좀더 시간이 필요했다. 학생 생존자는 부모를 통해 접근하는 방법을 취했다. 하지만 부모들은 말했다. "아이들이 첫날은 막 이야기 했는데, 이후 입을 닫았다"고. "우리도 물어보지 않는다"고. "관련 전화가 와도 나가서 받는다"고. 충분히 이해가 됐다. 우리는 좀 더 기다리기로 했다. 

오늘 <4월 16일, 세월호 : 죽은 자의 기록, 산 자의 증언>을 공개하지만, 오늘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학생들을 포함해 다른 생존자들을 계속 만날 것이다. 그래서 계속 추가할 예정이다. 그리고 이 기록은 <오마이뉴스>가 존재하는 한 계속 보존될 것이다. 우리의 부족한 점을 독자 여러분들이 채워주시길 바란다. (기사 제보 클릭)

우리는 진심으로 한국 사회가 세월호 사고 전과 후로 구분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바라건대, 그 변화의 방향은 사람 값이 똥값인 시대에서 사람을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시대였으면 한다. IMF 언저리에 태어난 아이들 수백명을 산 채로 바다에 던졌으면, 이제 충분하지 않은가. 

공간의 재구성 타임 링크 ↓

2014년 5월 15일 참사 30일째
특별취재팀
이병한 김도균 안홍기 김동환 박소희 김지혜 고정미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와의 업무협약에 따라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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