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가 차량 통행 등을 이유로 도로 주변 수십년생 벚나무를 마구 잘라내 물의를 빚고 있다. 일부 완공구간은 주차장으로 변하면서 보행자 안전마저 위협하고 있다.
<제주의소리>가 29일 제주시 애월읍 ‘하귀1리 노견 확포장사업’ 현장을 방문한 결과 하귀1리 교차로에서 광령리 경계지까지 약 500m 구간에서 50여 그루의 벚나무가 잘려나갔다.
하귀1리 교차로에는 벚나무 가지들이 무덤처럼 쌓여 있었다. 마을 안길로 들어서니 공터에는 각종 공사자재 더미에 벚나무 뿌리가 널브러져 있었다.
도로 주변으로 시선을 돌리니 잘려나간 벚나무 밑둥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톱으로 자른 나무와 중장비에 꺾인 나무 등 종류도 다양했다. 콘크리트가 발라진 나무도 시야에 들어왔다.
애처롭게 잘려나간 나무 밑둥에 작은 가지가 살포시 솟아올랐다. 가지 주변에는 꽃봉오리가 달려 있었다. 평년 같았으면 하얀 벚꽃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지만, 올해는 달랐다.
공사 과정에서 제주시는 도로 양쪽에 심어진 수십년생 벚나무 50여 그루를 잘라냈다. 나무가 도로와 보행로 사이에 있어 제거가 불가피하다는 이유에서다.
광령리 주민 이순옥(73)씨는 공사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며 쓴소리를 건넸다. 30년 넘게 마을에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해 온 벚꽃이 사라졌다며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씨는 “봄이 되면 벚꽃길이 아름답게 펼쳐지는데 느닷없이 장비들이 들어오더니 나무를 모조리 잘라냈다”며 “한 순간에 마을의 경치가 완전히 삭막해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도로 확장으로 덤프트럭만 쌩쌩 달려 더 위험해졌다. 나무가 잘려나간 공간은 보행로가 아닌 주차장으로 변했다”며 “대체 무슨 생각으로 공사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혀를 찼다.
이영웅 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벚나무는 차량의 인도 진입을 막고 서행을 유도하는 역할을 했다”며 “나무가 뽑히면서 오히려 공사 취지가 무색해졌다”고 꼬집었다.
이 사무처장은 “실효성이 의심되는 사업으로 애꿎은 나무들만 사라지고 말았다”며 “제주도의 녹지 확대와 보전정책이 후퇴하고 있다”고 밝혔다.
제주환경운동연합에 따르면 제주시는 2010년 시민들이 ‘생애주기별 기념 내 나무갖기 행사’를 통해 제주시 사라봉 공원에 심은 나무까지 모두 잘라 주차장을 만들었다.
제주시는 2016년 사라봉 공원 내 제주칠머리당 영등굿 전시관을 건설하면서 7년 전 시민 250여명이 심은 먼나무 100그루를 통보도 없이 뽑아 다른 곳으로 옮겼다.
생애주기별 기념 내 나무갖기 행사는 결혼과 출산 등을 기념해 나무를 심어 추억을 간직하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2012년 당시 행정안전부 지역특화 우수사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김정호 기자
news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