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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청중학교는 3월 한 달 동안 학생들이 4.3을 겪은 세대와 만나보는 ‘지역사회 전문가와 함께하는 세대 간 소통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29일 발표 자리를 가졌다. ⓒ제주의소리
제주 저청중학교, 3월 한 달간 지역 노인 4.3 인터뷰 프로그램 진행-발표

청소년들이 제주4.3 유족, 피해자들과 직접 만나 이야기 듣는 색다른 4.3교육이 눈길을 끌고 있다.

제주시 한경면 청수리에 위치한 저청중학교는 29일 오후 2시 ‘지역사회 전문가와 함께하는 세대 간 소통프로그램’(이하 소통프로그램)을 개최했다.

30여명 전교생이 참여한 소통프로그램은 지난 3월 7일부터 29일까지 약 한 달 동안 진행된 교육 과정이다. 6개 조로 나뉜 학생들이 지역 내 어르신을 찾아가 ‘우리 고장’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와 함께 그들이 겪고 생각하는 4.3은 무엇인지 인터뷰해오는 내용이다.

모든 과정은 임애덕(55) 사회복지법인 청수 대표와 교직원들이 함께 했다. 임 대표는 지난해 한경면 노인을 대상으로 그림 그리기 수업을 실시한 바 있다. 당시 수업은 청소년들로 구성된 생명사랑봉사대와 함께 했다. 그동안 여러 방법으로 4.3교육을 시도하던 저청중은 임 대표 수업을 적용해보자고 판단해 소통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저청중학교 학생들은 총 네 번에 걸쳐 설문지를 만들고, 노인들과 만나고, 발표물을 만들며 다 함께 모인 자리에서 결과를 공유했다. 동기부여를 위해 가장 우수한 팀에게는 상금 30만원을 제공했다. 공정한 심사를 위해 조성윤, 고창훈 제주대 교수를 심사위원으로 초청했다.

학생들은 ▲언제부터 이 지역에 살았나 ▲우리 동네 자랑거리는? ▲우리 동네에서 가장 불편한 점은? ▲우리 마을이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길 바라나 ▲손·자녀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 같은 지역 밀착형 질문과 함께 ▲4.3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나 ▲4.3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같은 4.3 관련 질문도 함께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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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통프로그램을 진행한 임애덕 박사(뒤쪽 서있는 이).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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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들의 발표 장면. ⓒ제주의소리

"나는 4.3하면 우리 동네 가옥이 다 불타고 해변마을로 소개됐던 것 밖에 기억이 안나. 그 때 경찰들이 사람들을 마구 학살했지."

"당시 (제주시 한경면) 한원리에 무장대가 들었는데 집을 몽땅 태웠어. 처녀들까지 죽창을 들고서 지켰지." 

마을 어르신들이 내놓는 답변이다. 조금씩 차이는 있었지만 "4.3은 끔찍하고 잔인하고 아픈 기억"이라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재치 발랄하게 각 조별 활동을 발표하면서도, 70년전 그날을 기억하는 목소리를 다함께 들을 때면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특히 타 도시에서 제주도로 거주지를 옮긴 ‘이주민’ 자녀 비율이 높은 저청중학교 특성 상, 이번 기회를 통해 이들에게 생소했던 4.3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는 소감도 눈길을 끌었다. 

윤지호 양은 “저는 서울에서 제주로 내려왔는데, 4.3을 이번에 처음 들었다. 조금이나마 그때 고통을 겪은 분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됐고, 아픈 역사를 제대로 알고서, 그런 걸 다시는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성숙한 소감을 발표하며 큰 박수를 받았다.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청수리 마을에 대한 애착심도 참가 학생 모두가 공유한 것은 덤이다.

행사를 준비한 교사 김희선(55) 씨는 “유족을 초청하거나, 유적지를 찾아가는 이전 4.3교육은 집중도가 떨어지더라.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학생들이 4.3에 대해 더욱 피부로 느끼고 새로운 생각을 가지게 되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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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표하는 학생.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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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당시 희생자 설명을 듣는 학생의 놀라는 표정.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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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당시 희생자 설명을 듣는 학생의 표정. ⓒ제주의소리ⓒ제주의소리

학생들의 질문이나 답변이 전문적이거나 밀도 있진 않아도, 현장의 생생한 역사를 담는 구술사를 자연스럽게 경험했다는 점에서 이번 교육은 큰 의미가 있다. 다만, 4.3에 대한 각자 다른 기억을 듣고 여과 없이 발표하면서, 가치중립적으로 정리하는 과정이 없어 아쉬움을 남겼다. 빨갱이, 폭도, 학살처럼 보충설명이 반드시 필요한 단어가 여럿 등장했음에도, 학생들은 단어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새였다. 

임애덕 대표도 “발표 후에 전문가들이 의견을 보완하는 마무리 과정이 필요해보였다. 소통프로그램은 결과보다는 과정이 더욱 의미가 있는 교육이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더 시간을 들여 진행하고자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3학년 김채린 학생은 “4.3 유적지를 가면 사실 놀러간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 그런데 4.3을 실제로 겪은 할머니와 대화를 나눠보니 몰랐던 4.3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됐고, 이런 게 역사구나 느낄 수 있었다”며 “다음에는 더 길게 인터뷰를 준비하고 우리들이 의견을 주고받고 정리하는 시간이 학교 안에서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친구들의 발표를 즐겁게 바라보는 학생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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