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밥상 이야기> (28) 해삼토렴

noname01.jpg
▲ 해삼토렴. ⓒ 김정숙

봄은 남쪽 바다로 부터 올라온다. 해초를 살찌우며 소리 없이 올라온다. 봄 오면 달래, 냉이, 쑥 등 산나물을 생각하지만 바닷가 사람들은 톳이나 미역을 캐는 바다에 먼저 빠진다.

긴 겨울 물살을 이겨낸 미역이나 톳은 산나물보다 더 진한 봄내를 풍긴다. 삶의 터전으로 치자면 땅위보다 몇 배는 더 척박한 곳이 물속 아닌가. 그래서 해초가 풍기는 봄 내음은 산나물과 비교할 바가 아닌 것이다. 다만 지난날처럼 누구나 그 진한 봄 내를 맡으러 바다 속으로 발을 들여 놓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크다. 

그렇다고 바다가 주는 봄을 건너뛸 수는 없다. 봄 철 만큼은 마른미역도 말고 양식미역도 말고 거친 물살이 길러낸 다소 부드럽지 못한 미역을 먹고 싶다. 그 미역을 떠 올리면 이십 여 년 전 온평마을에서 맛보았던 해삼토렴이 연이어 떠오른다. 예나 지금이나 해삼은 귀한 식품이다. 그래서인지 이렇다 할 맛도 요리도 별반 없다.

싱싱한 날 것으로 썰어 초장 찍어 먹거나 물회를 해 먹는 정도로 알고 있던 터였다. 토렴이라는 것은 얇게 저며 썬 고기를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치듯이 익혀먹는 음식을 말한다. 우리 모두 잘 아는 일본식의 ‘샤부샤부’와 닮았다. 해삼토렴은 해삼을 데쳐 양념에 찍어먹는 것이 아니라 미역과 함께 무쳐낸 미역나물에 가깝다. 미역나물보다는 재료가 자박자박 잠길 만큼 국물이 많다.

먼저 이 국물을 만든다. 멸치, 새우, 양파, 무를 같이 끓여 진한 맛국물을 내고 소금으로 간한다. 건더기를 걸러내고 국물만 한 번 더 끓여 성게를 체에 담고 끓는 국물에 두 세 번 넣다 뺐다 하며 토렴한다. 익힌 성게는 따로 두고 국물은 식힌다. 해삼을 저며 썰어 끓는 물에 토렴한다.

미역은 싱싱한 갈색의 날미역을 잘 씻어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미역과 토렴한 해삼을 한데 섞어 맛국물을 붓는다. 자장면 소스를 붓 듯이 국물은 재료가 잘 어우러질 정도만 붓는다. 참기름을 두르고 재료가 국물과 잘 어우러지게 무치고 위에 데쳐낸 성게를 올린다.

해삼이 부드럽고 미역과 궁합이 더 할 나위 없이 좋다. 이 음식은 젓가락으로 건더기만 집어 먹는 것이 아니라 숟가락으로 떠먹는다. 날씨가 더워지면 시원하게 해서 먹어도 참 별미다. 여느 나물반찬 같은 음식이지만 건강하고 독특하다. 생각하면 할수록 그 가치가 귀하고 크다.

웃뜨르 사람들은 꿩 토렴, 바닷가 사람들은 해삼 토렴. 지금은 거의 사라진 음식 반열에 가 있다. 고기를 주재료로 한 음식에 밀려 빛을 보지 못한 이 음식을 일품요리 하나로 챙겨두어도 좋겠다. 귀한 재료를 귀하게 여기고 쓰는 것도 자연에 대한 예의리라.

몇 해째 해삼토렴의 봄은 침샘만 건드리며 가고 있다. 산과 바다를 다 끼고 오롯한 봄을 만끽할 수 있는 곳에 산다는 건 큰 행운 중 하나다. 이 봄 아니면 다음 봄, 다다음 봄도 기다릴 수 있는 희망만 있다면. / 김정숙(시인)

김정
IMG_4694.JPG
숙 시인은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출신이다. 200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에서 당선됐다. 시집으로 <나도바람꽃>을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30여년 동안 제주도농업기술원에서 일하다 2016년 2월 명퇴를 하고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에서 귤 농사를 짓고 있다. <제주의소리>에 ‘제주 밥상 이야기’를 통해 제주의 식문화를 감칠맛 나게 소개한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