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詩 한 편> (3) 안경을 벗고 보니 / 홍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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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화천사 경내에 있는 석인상. ⓒ 김연미

개나리 맞춤법에
그냥저냥 맞춰 사는

어제도 오늘도
오타투성이
주변머리




다 닳아버린
미륵불이
앉았다.

-홍경희 <안경을 벗고 보니> 전문-

사는 게 다 그렇다. 마음에 낸 길 열두 갈래일지라도 어느 하나를 제대로 밟고 가지 못한다. 마음이 혹하는 대로, 또는 아쉬운 마음에 어쩔 수 없이 ‘그냥 저냥 맞춰’ 산다. 그러다보면 ‘오타투성이’ 시간들만 덩그러니 남아서 너의 삶은 이러 하였느니 빛나지 못하는 인생의 한 페이지를 부끄럽게 내 보이고 마는 것이다.

안경을 벗고 거울 앞에 앉았을까. 거울 속에 비친 얼굴에 눈 코 입이 불분명하다. 반짝이던 눈망울도, 날카롭던 콧날도, 한일자로 굳게 닫혀있던 입도 잘 보이지 않는다. 마치 오랜 세월에 다 닳아버린 미륵불처럼 둥그런 형체 하나 거울 속에 있을 뿐이다. 도수 높은 안경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제 얼굴마저 제대로 볼 수 없는 시력이었던 것.

조금씩 원칙을 어기고, 조금씩 실수를 하고, 조금씩 포기를 하면서도 똑바로 살기 위해 도수 높은 안경을 쓴다. 어겨진 원칙 위에 다시 원칙을 세우고 실수를 발판 삼아 또 한 계단을 넘는다. 포기는 배려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그렇게 사는 동안 눈 코 입 실루엣 다 없어지고 모나고 날카로웠던 마음의 모서리들이 둥글둥굴 둥그러졌다. 그 깎임의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일희일비하지 않는, 넓고 깊은 항아리 얼굴이 채워졌다. 곧 미륵이다. 너와 나, 그렇게 사는 사람 모두 미륵인 것이다.

오늘도 우린, 뚜렷한 목적도 사명감도 없이 개나리 맞춤법처럼 하루를 산다. 햇살 따뜻한 곳 찾아 고개 내밀었다가 때로는 꽃샘추위 시샘에 맥없이 시들기도 하고, 계절도 분간 못한 채 가을에도 불쑥, 겨울에도 불쑥, 앞뒤 없이 삐뚤빼뚤 살아간다.

그런 삶이 지겹다 생각이 들 때 안경을 벗고 시인처럼 거울 앞에 앉아 보자. 거울 속에 흐릿하게 떠 있는 얼굴을 미륵이라 믿으며 어깨 한 번 다독여 주자. ‘그만하면 잘 살고 있는 거야.’ / 김연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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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미 시인은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 출신이다. 『연인』으로 등단했고 시집 『바다 쪽으로 피는 꽃』을 펴냈다. 2010년 제2회 역동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젊은시조문학회, 한국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표선면 가마리에서 감귤 농사를 짓고 있다. <제주의소리>에서 ‘어리숙한 농부의 농사일기’ 연재를 통해 초보 농부의 일상을 감각적으로 풀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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