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있는 나의 그림책'으로 그림책의 재발견에 나섰던 오승주 작가가 다시 고전을 꺼내들었습니다. 서귀포시 안덕면 산방도서관에서 진행하는 논어 읽기 시즌2에 맞춰 <제주의소리>에 인문학 함께 읽기 칼럼을 펼쳐놓습니다. 좋은 생각에 힘입어 우리의 행복이 오래 가기를 바랍니다. [편집자 주]

[논어와 동서양 고전의 향연] (9) 맹자가 ‘기회주의 병’에 걸린 한국정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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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집주 | 성백효 (옮긴이) | 전통문화연구회 | 2010-09-25 | 원제 孟子集註

긴장 잃은 정치는 일방통행이다

“왕에게 큰 잘못이 있으면 간하고, 반복해도 듣지 않으면 왕을 갈아치웁니다.”
- <맹자>, 만장하8

제선왕은 맹자에게 고위 관리[경(卿)]의 본분에 대해서 물었다가 얼굴이 후끈해졌습니다. 엄격한 법도(法度)를 자부심으로 여기던 동양의 계급사회에서 왕을 갈아치운다는 말을 듣고 태연할 수 있는 왕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 말 때문에 <맹자>는 1,000년 가까이 사실상 금서(禁書) 취급을 받았고, 그의 초상화는 한무제(漢武帝)의 과녁이 되어야 했다는 후문입니다. 맹자는 보수정치의 표본입니다.

“유구한 역사를 가진 나라는 아름드리 나무가 있는 나라가 아니라 대대로 녹을 먹는 집안이 자리를 잡은 나라를 일컫는다.”(맹자, 양혜왕 하편), “마음을 쓰는 사람은 힘을 쓰는 사람을 다스린다.”(맹자, 등문공 상편)는 말에는 보수적 관점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인간은 자기 안에 진보 성향과 보수 성향을 고루 갖추고 있습니다. 진보 성향이 절반을 넘으면 진보적인 사람으로 보수 성향이 절반을 넘으면 보수적인 사람으로 평가됩니다.

<논어>나 <맹자>에서 진보적이라는 느낌이 들 만한 생각이 많이 발견되는 것은 한 사람을 보수와 진보라는 잣대로 분류하는 게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 보여줍니다. 왕이 잘못하면 내쫓을 수 있다는 말은 당대로서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젊은이 무서워할 줄 알아야 한다”(논어 자한편)는 말은 어떻습니까? “나날이 새롭게 하고 또 날로 새롭게 하라”는 <대학>의 말도 참신한 것에 대한 존중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우리 정치가 망가진 이유는 ‘보수적 감각이 없는 진보’와 ‘진보적 감각이 없는 보수’ 때문입니다. 양쪽 날개의 긴장이 없으면 새는 날지 못하듯 진보와 보수를 동시에 살피지 않는 정치는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기회주의 없는 정치를 보고 싶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기회주의의 유혹에 쉽게 빠집니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교수 출신 국회의원이 한 대사처럼 본인의 정치적 생존이 다른 목적에 앞설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오적(乙巳五賊)부터 자신의 생존을 위해 청(淸), 일본 힘을 빌려 동학농민운동을 진압시켰던 고종과 명성왕후처럼 대의(大義)가 어느새 실종돼 버리니 정치가 치사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철새처럼 당을 옮겨다니는 국회의원들과 될 것 같은 당에 모여드는 교수와 전문가들의 행태를 더 많이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민감한 정치적 사안에 대한 주요 후보의 입장은 마치 기계가 말하듯 자극적이지 않고 모호해질 것입니다. 벌써 이런 징조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까? 맹자의 제자들도 기회주의의 유혹을 받아 스승에게 권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맹자 활약 당시의 제(齊)나라는 강대국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진(秦)나라보다 제나라가 전국(戰國)을 통일하리라 예상했고, 은근히 바라기도 했을 정도로 중국대륙의 중심을 이루던 나라였습니다. 제자들의 말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진대가 물었다. “제후를 만나보지 않으신 것은 패착이 아닐까 합니다. 지금 눈 딱 감고 한 번 만나신다면 크게는 왕도를 실현할 수 있고, 작게는 패왕의 업적을 남기실 수 있을 텐데요. 옛 기록을 보니 ‘한 자를 굽혀 한 길을 편다’고 하였는데 과연 이 말이 스승님께 해당하지 않겠습니까?”
- <맹자>, 등문공 하편

제자가 이 질문을 하던 당시는 제나라가 이미 맹자를 위한 주거공간과 제자들에게 많은 연금을 지급하겠다고 제안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맹자는 제나라를 떠날 마음을 먹고 있었습니다. 고조선과 이웃한 중국 북방의 이웃인 연(燕)나라 정치가 어지럽자 제선왕은 연나라를 병탄할 마음을 품고 맹자에게 자문을 했던 적도 있었죠. 제선왕은 듣고 싶은 것만 들었습니다. 심동(沈同)이라는 신하를 시켜 “연나라는 정벌당해 마땅합니까?”(공순추 하편)라고 물었을 때 연나라의 실정(失政)을 잘 알고 있었던 맹자가 이에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제선왕은 맹자의 말을 자신이 연나라를 병탄해도 좋다는 식으로 해석했습니다. 이 때 맹자가 했던 유명한 비판이 ‘이연벌연(以燕伐燕)’입니다. 연나라 같이 어지러운 나라가 어지러운 연나라를 정벌한다면 결국 어지러움만 키울 뿐이라는 뜻이죠. 결국 연나라 백성들이 제나라를 몰아내 제선왕은 빈손으로 연나라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장면은 <맹자>에서 에피소드별로 상세히 정리돼 있을 정도로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므로 자세히 살펴본다면 정치 발전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지도자, 말을 왜곡하는 관료, 머릿속으로 계산하면서 이익을 적게 보려는 정치적 제안, 남 주기는 아깝고 받아들이기는 어려워하는 답답함, 신하를 통해 사과하고 신하들의 말재주로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무능한 군주, 바른 신하(설거주(薛居州)가 간신들 사이에서 질식되는 현상. 그러면서도 맹자는 제선왕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짐을 더디 챙기다가 제자들에게 항의를 받기도 합니다.

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라면 정치에 참여하지 않고 차라리 후학을 키우겠다는 뜻을 굳힌 맹자는 결국 정계 은퇴하고 제자 양성에 여생을 바칩니다. <맹자>는 맹자 스스로가 제자들과 다듬고 다듬은 끝에 나온 작품입니다. 한 자를 굽혀 한 길을 펴라는 제자의 항의에 대해서 맹자는 그것이 말이 안 되는 까닭을 상세히 설명합니다.

“자네가 인용한 말은 그저 이해관계를 고려했을 뿐인데, 그런 식이라면 한 자가 아니라 한 길을 굽혀 조그만 것을 개선할 수 있다고 한다면 받아들여야 하는가?”
- <맹자>, 등문공 하편

전국시대는 유학(儒學)이 크게 위축되었으니 맹자의 고군분투가 눈물겨울 수밖에 없습니다. <논어>와 <맹자>는 절박함에 있어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전국책>이라는 책은 전국시대에 활약하던 사람들을 기록하던 책인데 맹자나 공자의 이름은 별로 찾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소진과 장의 같은 종횡가, 손무나 오기 같은 병가는 많이 나오죠.

전통적인 가치와 인문정신이 사라지고 혁신과 효율성이 요구되던 당시의 상황은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과 닮았습니다. 맹자가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을 논박하는 논리에는 동의하기 어렵지만 양묵(楊墨)으로부터 보수의 가치를 지키려는 태도만큼은 존경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보수를 대표하는 세력들이 궤멸되었다고 해서 보수적 가치를 팽개칠 수 없습니다. 진보적 가치를 담은 정책은 보수라는 저울을 통해서만 현실화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보수의 나라가 아닙니까? 

변화돼야 할 점과 변화돼서는 안 되는 점 사이의 균형을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어떻게 반영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권을 절대목표로 해서 간 쓸개 다 내던져버리는 기회주의만큼 허무하고 무의미한 일도 없다는 게 최근 우리가 배운 교훈이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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