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서영표 제주대 교수...'자본'에 의해 제주인의 독특한 삶 '희미' 

최근 몇 년 동안 제주는 전국적으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외자 유치와 인구 유입, 관광객 1500만 시대 진입 등. 이로 인해 제주는 일찍이 겪어본 적 없던 문제가 현안으로 떠올랐다. 쓰레기, 오폐수, 교통, 부동산폭등, 난개발, 환경파괴까지. 급기야 제주가 이대로 가도 되겠느냐는 근본적인 성찰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 문제에 주목해온 서영표 제주대 교수에게 제주의 현주소와 미래에 대해 얘기를 듣는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지금 제주는 어떤 의미, 가치를 부여받고 있는가
(2) 제주도민들은 ‘개발’에 목말라 있었다?
(3) 과연 ‘제주다움’은 무엇인가
(4) ‘지속가능한 제주 발전계획’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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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서귀포시 중문색달해변.
제주도처럼 대양에 열려진 섬이 문화가 교차하고 전파하는 통로가 될 수 있는 것은 바다 때문이다. 바다는 ‘가두기도’ 하지만 ‘열어주기도’ 한다. 자연적 현상이나 사회적 현상 모두가 그렇지만 인간세상은 ‘흐름’이다. 흐름은 곧 이동을 뜻하고 사람들에게 적용되면 이주가 된다. 사람의 이동에 따라 문화도 전파 된다. 하지만 이동과 이주는 정주의 결절점이 있을 때에만 의미를 가진다. 정주는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 되고 이동은 정주를 통해 의미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바다는 ‘이동’을 촉진하는 매개이면서 상대적으로 안정적 문화 공동체를 유지하게 하는 지리적 경계를 형성한다. 하지만 바다가 가지는 이러한 이중적 의미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역사적 발전에 따라 정주와 이동의 양상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치적 체계와 경제적 동학의 변화뿐만 아니라 기술적 발전에 영향 받는다. 향해 기술의 발전, 항공교통의 대중화, 자동차 문화의 확산은 이동과 정주의 의미를 송두리째 바꾸어 버렸다. 바다가 가지는 ‘열림’이 기술발전에 의해 더욱 강화되고 ‘닫힘’은 무력화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수천 년에 걸쳐 켜켜이 쌓여온 문화의 두께와 역사적 흔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즉 섬으로서 제주도가 가지고 있는 문화와 역사, 삶의 양식은 기술적인 ‘시·공간의 압축’으로 쉽게 지워질 수 없다. 제주도는 여전히 섬이며, 섬이기 때문에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다. 정주와 이동이 새로운 양상으로 변화하고 있지만 바다에 의해 격리되고 연결된 섬의 성격은 여전히 제주도의 정치, 경제, 문화를 결정하는 요소인 것이다. 그리고 지난 20-30년 동안 섬으로서의 제주도가 겪고 있는 정주와 이동 중 지배적인 양상은 ‘관광’이다. 항공교통과 제주도 내의 자동차 이동의 폭발적인 증가는 관광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물론 관광뿐만 아니라고 ‘문화이민’이라는 새로운 현상에 나타나기도 했지만 크게 보면 관광의 목적지로서의 제주도가 가지는, 바다와 섬이라는 상징에 의해 만들어진, 로맨틱한 관광의 시각(tourist gaze)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열림’과 ‘닫힘’의 효과를 동시에 가지는 바다에 둘러싸인 제주도가 섬으로서의 문화와 사람이 교류하는 네트워크의 중심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가정은 ‘이상적’일 뿐이다. 실제 제주의 역사는 네트워크의 중심이기보다는 육지의 부속된 내부 식민지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문화의 교차지이지만 통치자들이 보기에는 육지와의 동질성이 약한 식민통치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근대화가 이러한 양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내부 식민지로 간주되던 시기 제주에 살고 있던 사람들, 즉 탐라인(제주인)은 역사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그들은 가혹한 부역과 공납의 의무를 가지고 있었지만 왕조국가의 ‘백성’으로 대우 받지 못했다. 그런데 소위 경제 근대화의 시기 제주의 발전에도 제주인은 없었다. 신식민지 종속발전의 길에서 그것에 종속된 변방으로서의 위치만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제주도가 가지는 문화나 역사는 고려대상이 아니었고 결과적으로 제주인들이 삶의 양식 따위는 어찌되든 상관없는 것이었다. ‘식민지배’는 대개 하나의 정치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경제적 균형을 해칠 수밖에 없으며 그것은 그 공동체의 생존능력을 저해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왜곡된 경제구조는 더 깊은 종속을 의미하게 된다.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된 민주화는 제주도를 짓눌렀던 정치적 억압을 완화시켰고 경제적 개발의 기회를 부여했다. 하지만 그 대가도 컸다. 민주화가 민주주의 심화 내지는 급진화의 길을 가지 못하고 국가가 독점했던 힘을 자본에게 이양시키는 경로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을 병들게 했던 원인인 돌진적이고 맹목적인 성장주의가 극복되지 못한 채 그대로 이식된 것이다. 더욱 강화된 시장의 논리가 개개인의 의식 속에까지 침투했다. 과거 전통사회를 지탱했고 개발독재시대에도 왜곡된 형태나마 유지되었던 사회적 유대와 협동은 시장과 경쟁의 논리에 의해 잠식되었다. 제주도 사람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이야기했던 ‘수눌음’의 정신, ‘삼무’ 정신은 순식간에 파괴 되었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전면화 된 시장의 논리가 제주도에 끼친 영향은 한국이 지나왔던 파괴적 근대화의 길을 더욱 ‘압축적’으로 추진하게 만든 것이었다. 발전에서 소외되었다는 박탈감이 시장 맹신주의에 의해 열려진 개발의 기회를 만났을 때 발생한 것은 민주주의의 외피를 걸친 ‘돌진적’ 근대화였다. 미래를 고려하지 않고 자연의 지속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은 채 밀어버리고, 부수고, 콘크리트를 들이 붓는 개발의 열풍이 제주를 휩쓸기 시작한 것이다. 비판의 목소리는 인정받지 못했다. 세상물정 모르는 이상주의자들의 한심한 푸념으로 받아들여졌다. 

제주도가 관광지로 개발될 수 있는 이유는 그 동안 근대화의 변방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경계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독특한 문화와 가치가 보존될 수 있었고 자연경관은 훼손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제주도를 관광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육지의 논리는 문화와 자연경관을 자본의 논리에 종속시킨다. 문화는 제주인의 삶의 방식이고 자연은 그들의 생존 터전이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관광의 ‘자원’으로 전락한다. 자연은 제주인의 삶과 격리되어 그 자체로 누군가에게 ‘보여져야할’ 전시물이 되고, 사람들의 삶터는 관광객의 동선에 의해 잘려 나간다. 자연경관과 도시경관, 그리고 문화경관은 상품이 되어 ‘팔려야’ 하기 때문에 사진이라는 재현도구를 통해 화려하게 치장되고, 때때로 과잉되게 표상된다. ‘장소’들은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서로 경쟁하게 되고, 경쟁의 결과는 더욱 가속화된 공간의 상품화로 돌아온다.

‘섬’이라는 지리적 특수성에서 본 제주
바다는 개방성과 폐쇄성 모두를 가지고 있다. 바다의 개방성과 폐쇄성은 섬에게는 ‘열림’과 ‘닫힘’이다. 개방성/폐쇄성, 열림/닫힘은 공간적(지리적) 차원의 개념이지만 시간적 차원에 의해 다르게 해석 될 수 있다. 짧은 시간 지평 안에서 바다는 폐쇄성을 의미하고 섬은 닫혀 있다고 할 수 있다. 전근대 시대 사람들에게 탐라는 궁벽하고 고립된 장소였을 것이다. 종종 도피처로 상상되었을 것이고 유배지라는 상징이 지배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대가 더 길어지면 바다는 문명이 전파되고 문화가 교류되는 매개의 역할을 하고 제주는 그 ‘흐름’의 결절점이었다. 개방성과 열림이 우세하게 나타난다. 역사가 언제나 ‘현재’의 연속이라면, 제주인은 지속되는 ‘현재들’ 속에서 서로 길이가 다른 시간성(temporality)을 체험함으로써 실존했을 것이다. 즉 분석적으로 구분이 가능한 서로 다른 시간성은 사람들의 삶 속에서 구현될 때는 그저 실존적으로 체험될 수 있었을 뿐이었다. 이동과 정주, 열림과 닫힘이 구체적인 장소에서 살이 숨 쉬는 사람들의 연속되는 세대를 통해 생산, 재생산, 전승되는 것이다. 
 
이렇게 체험된 복합적 시간성은 여전히 개념적이다. 이동과 정주, 닫힘과 열림 속에서 살아  가는 사람들은 ‘섬’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동과 열림을 타고 섬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공간감각/시간감각과 접합되고, 새로운 변종들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렇게 ‘들어오는’ 사람들의 시간-공간 감각이 ‘권력’으로 작동하는 경우다. 권력을 가진 ‘들어오는’ 사람들은 제주인의 시간-공간 감각에는 관심이 없었다. 자신들의 시간-공간 감각을 제주에 투영하고 제주인들에게 강요하게 되는 것이다. 

바다와 섬이 가지는 ‘열림’과 ‘닫힘’ 사이의 균형은 외부로부터 강요된 권력의 시선에 의해 ‘닫힘’으로 기울게 된다. 문화와 사람의 ‘흐름’ 속에서, 그리고 자연에 대한 경외와 그로부터 생겨난 신화에 의해 과잉 결정되어 출현한 문화의 두께와 독특한 삶의 방식은 외부적 시선에 의해 통치되고 관리되어야 하는 ‘평면적 대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여전히 도도한 문화적 흐름이 지속되지만 길어야 100년을 넘지 못하는 사람들의 시간 지평 안에서 도드라지는 것은 폐쇄와 닫힘이었던 것이다.  

권력으로 작동하는 외부적 시선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더라도 문화의 두께를 완전히 부수어 평면으로 만들 수는 없다. 사람들의 시간-공간 감각은 항상 통치의 망을 흘러넘칠 수밖에 없다. 통치의 망이 촘촘하지 못했던 전근대 시대 권력은 일상의 세세한 부분까지 침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구체적인 삶은 양식은 제주인의 그것으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 처음부터 ‘원형’ 또는 ‘원본’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미 권력의 외부적인 시선에 의해 변형되었을 지라도 권력의 논리와 삶의 논리 사이에는 틈새가 열려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다에 의한 지리적 격리는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생활세계를 가능하게 했다. 

제주의 근대화 과정의 특징적인 양상
짧은 시간 지평 안에서 작동하고 있는 외부적 시선, 밖으로부터의 권력의 정치적 결과는 분명했다. 제주는 변방이었고 육지의 식민지였다. 몽고의 간섭기에도, 일제 강점기에도 식민지 속의 식민지였다. 외부적 힘의 의해 고립되고 격리되어 ‘나가는 흐름’과 ‘들어오는 흐름’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균형을 찾지 못하고 지배의 시선에 의해 관리되고 통치되는 대상일 뿐이었다. 하지만 문화적으로 훨씬 역동적이었다. 문화의 시간지평은 정치의 시간지평보다 더 넓고 길기 때문이었다. 지배적 코드가 만들어내는 매끈한 공간과 선형적인 시간과는 달리 ‘닫힘’과 ‘열림’의 변증법에 의해 만들어진, 흐르지만 상대적으로 고정되어 있는 문화는 겹쳐지고 주름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매끄러운 공간과 선형적인 시간의 이데올로기는 구체적인 일상 속의 제주인들의 삶의 실천과 마찰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그 마찰이 공간을 더욱 겹쳐지고 주름지게 한다. 그리고 서로 다른 시간성이 ‘지금-여기’서 접합되게 한다. 

‘지금-여기’의 마찰은 정치적 지배에 동반되는 경제적 착취를 견뎌내는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낸다. 제주인의 문화는 민중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활자로 인쇄된 것보다 평범한 사람들의 놀이와 이야기 속에 살아 구비전승 된다. 반란과 전복이 봉쇄당한 시기, 척박한 삶의 조건을 견뎌내는 방식은 육지의 지배, 관리와 통치의 빈틈에 제주인의 삶의 방식을 채워 넣는 것이었다. ‘들어온’ 사람들의 강요된 문화를 일면수용하면서도 그것을 뒤틀어 제주 사람들만의 연대와 상호부조의 문화를 만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제주사람은 결코 육지 사람과 동화될 수 없는 조건에 처해 있었다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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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영표 제주대 교수. ⓒ제주의소리

교통과 통신의 발전에 의한 시·공간적 압축은 바다의 ‘닫힘’에 의해서 보전되었던 주름지고 겹쳐진 일상의 공간과 비선형적 시간이 지배적인 문화에 의해 평면화 되고 획일화 되도록 한다. 이제 지배적인 코드는 ‘자본의 논리’였다. 자본의 논리는 보다 강력하게, 그리고 보다 세련된 방식으로 공간을 평면으로 만들어 구획하고 절단해서 서로 교환 가능한 상품으로 만들었다. 시간은 세분화되어 몸과 몸의 이동을 관리하는 데이터를 제공했다. 이렇게 강력한 근대화의 논리는 매우 큰 마찰을 일으켰지만 한 번 자리를 잡게 되면 보이지 않는 권력의 시선으로 몸과 마음을 규율하게 된다. ‘강요’와 ‘자발’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제주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가지는 독특함은 점점 엷어진다. /서영표 제주대 교수

(2)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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