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로 터전을 옮기는 이주민의 숫자가 한해 1만명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특히 이들 중에는 적지 않은 문화예술인들이 청정한 자연환경에 매료돼 바다 건너 제주로 향한다. 여기에 제주사회는 자연, 사람, 문화의 가치를 키우자는 분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유례 없던 이런 변화 속에 제주문화의 미래를 고민하는 목소리 역시 높다. 전통과 변화 사이에서 제주문화의 정체성을 지켜내면서 끊임없이 진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고민을 녹여내기 위해 제주출신 양은희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가 [제주의소리]를 통해 '양은희의 예술문화 이야기'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양은희의 예술문화 이야기> (26) 추모의 달 4월

“추모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지난 주말 아트스페이스 C에서 열린 좌담회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제주미술생태계를 위한 생각들>에서 고영자 박사가 화두를 던졌다. 필자가 준비한 이 좌담회는 올해 4.3미술제의 부대행사로 따스한 4월 주말 오후 미술계 인사들이 모인 자리였다. 고 박사는 이 질문과 함께 중국 작가 아이 웨이웨이가 바닷가에 누운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아이 웨이웨이는 2015년 유명했던 사진 한 장을 재현하고 있었다. 시리아를 탈출하려다 난파된 배에서 부모를 잃고 파도에 떠밀려온 어린 시리아 소년의 시신사진이다. 작가는 그동안 중국 당국의 탄압에 맞서온 저항 작가로 세계인을 숙연하게 했던 시리아 소년의 주검을 재현하며 난민문제에 주의를 환기시키고 인권이라는 보편적 문제를 제기하고 있었다.   

시리아 소년의 주검을 재현하는 아이 웨이웨이, 출처 인디아투데이_ 시리아 소년의 주검, 출처 인디아타임즈.jpg
▲ 시리아 소년의 주검을 재현하는 중국인 예술가 아이 웨이웨이(왼쪽)와 시리아 난민 소년의 주검. 출처=인디아타임즈.

4월은 가히 추모의 달이다. 그래서 고 박사의 화두는 이날 오후 아트스페이스 C에 모인 사람들을 넘어 제주 전역에서 진행되는 다른 문화행사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벼룩시장(플리마켓)에서도, 시청 민원실 벽에도, 카페에서도, 갤러리에서도 추모의 물결이 그치지 않는다. 원래 4.3을 기리는 행사가 많은 데다 4.16이 새로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세월호가 인양되고 육지에 거대한 시신을 드러내자 제주에 미처 도착하지 못한 세월호의 영혼들을 기리는 행사가 눈에 띄게 늘었다. 

누군가를 추모하는 일은 개인과 공동체의 기억을 다루는 중요한 사회적, 정치적 활동이다. 그리고 추모의 바탕에는 기억이라는 문제가 있다. 무엇을 기억해서 후대로 전달하여 역사를 만들 것인가. 한 사회와 국가의 구성원들이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기억들을 계속 재현하고 유통시키면서 현실이 구축되고, 그 현실은 역사가 되며, 그 사회가 만들어가는 문명의 근간이 된다.  

그런데 기억의 재현과 유통의 과정·방식은 획일적으로 결정되어 있지 않다. 현재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맞추어 기억을 수정하여 재현하고 의미를 구축한다. 따라서 4월 제주에서 열리는 추모의 문화행사를 들여다보면 우리가 누구인지, 어떻게 기억을 재현하고 있는지, 어떻게 의미를 구축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탑동의 빈 건물에서는 제주416기억위원회와 세월호 참사 제주대책회의가 주최한 전시가 열렸다. ‘사월꽃 기억문화제’의 <공감과 기억>전은 3일 동안 서울에서 온 유명작가들의 작업을 선보였다. 세월호 3주년. 아직도 죽음을 종결하지 못한 가족들이 서럽게 기다리고 있는 목포를 생각하면 3주년은 여전히 애도와 슬픔의 시간이다. 맛있는 떡 하나 먹기도 어려운 유가족들을 뒤로 하고 추모를 언급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다. 전시장에 그려진 얼굴들, 노란 메모들, 넘쳐나는 노란 색 물결을 보면서 과연 이렇게 추모하는 방식이 옳은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추모의 색으로 정해진 노란 색은 마치 백화점 건물을 보듯 화려하게 건물을 치장하고 있는데, 강렬하게 소비되는 상업광고의 스펙터클과 닮아 있었다. 그 화려함은 오히려 망각의 속도를 배가시키는 것 같다. 이렇게 화려한 추모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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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6을 기리는 전시 <공감과 기억>. 제공=양은희. ⓒ제주의소리

집단적 추모가 상업적 스펙터클에 가까운 큰 이미지 전략에만 몰두하는 것은 아니다. 요즈음 작은 이미지 하나가 4.3을 기리고 4.3미술제를 알리며 원도심에 퍼져 있다. 수많은 간판과 광고가 경쟁하는 원도심 13곳에 손으로 만든 동백꽃 배너가 달려 있다. 기계로 찍은 활자와 이미지가 흔한 요즘, 김영화 작가가 한 땀씩 바느질 하며 제작한 이 배너는 4.3을 언급하기가 두려운 시절부터 지금까지 24년 동안 추모해 온 예술가들의 마음을 소박하게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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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백꽃 배너. 제공=양천우. ⓒ제주의소리

정부기관이나 민간단체 등이 주도가 되어 집단적 기억으로서의 4.16이나 4.3을 공고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일은 그 기억을 개개인의 일상적 차원에서 자연스럽게 작동시키는 일일 것이다. 날마다 생계의 책임, 저마다 처한 상황의 절박함, 무관심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역사적 사건은 개인의 기억에서 비껴가기 쉽다.  그러나 우리가 개별적으로 기억하고 추모하지 않는다면 아픈 집단적 기억은 종종 허상이자 이념의 표상으로 변하며 시간이 흐르면서 빛바랜 기억이 될 수 있다.  

제주의 4월에 그런 개별적 추모도 보인다. 한 행사장에서 만난 문화인의 가슴에 작은 배지 두 개가 달려있다. 노란 리본은 세월호를 추모하는 것이고, 동백꽃은 4.3 60주년 기념으로 제작되었던 것이다. 9년이나 지나도 동백꽃 배지를 잊지 않고 찾아 옷에 달 정도로 기억하는 마음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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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개의 뱃지, 사삶 미술제. 제공=양은희. ⓒ제주의소리

그리고 4.3미술제가 열리는 원도심의 한 카페 앞에 추모의 마음을 해석한 작은 표지판이 눈길을 끈다. 더오이 카페 주인이 적은 ‘사삶미술제’는 눈여겨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십상이지만 읽는 순간 작은 깨달음을 준다. 추모는 오롯이 산 자의 것이자 살아있음의 표현이며 죽음과 삶 사이에 벌이는 일이라는 것을. 

 ▲필자 양은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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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희는 제주에서 태어나 초·중·고·대학을 졸업했고 영문학·미학·미술사·박물관학을 공부했으며, 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과 한국에서 큐레이터와 미술평론가로 활동해왔다. 뉴욕을 현대미술의 눈으로 살펴 본 <뉴욕, 아트 앤 더 시티> (2007, 2010) 저자이자  <기호학과 시각예술>(공역, 1995), <아방가르드>(1997), <개념 미술>(2007)의 번역자이기도 하다.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살고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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