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2011년 상표등록자 천만원 요구에 “우린 훨씬 전부터 써왔는데” vs 도용 막자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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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지역 분식점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는 '모닥치기'. 해당 사진은 이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 제주의소리

10년 넘게 제주시 도심에서 분식점을 운영 중인 정모(58, 여)씨는 최근 우편으로 한 통의 문서를 받아보고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봉투 속에 있던 문서의 정체는 내용증명서. 발신인은 한 법률사무소의 변호사였다.

특허청에 상표등록이 된 ‘모닥치기’라는 메뉴를 상표권자의 동의를 받지 않은 채 무단으로 사용했다는 내용이었다.

“상표권침해죄에 해당돼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며 “사용료와 배상금 명목으로 1000만원을 지정 계좌로 입금하라”는 내용에 정씨는 충격을 받았다.

이 내용증명서에는 “특허청에 등록을 마친 상표로, A씨만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라며 “가능한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할 의사가 있다”는 문구도 담겨 있었다.

정씨는 “제주지역에서는 이 같은 메뉴를 많은 곳에서 판매하고 있다”며 “황당하고 억울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손님들이 떡볶이에 다른 음식을 섞어달라고 할 때 마다 조금씩 내놓던 메뉴에 ‘모다치기’라는 이름을 붙여 판매를 시작한 게 언제일지도 모를 정도로 오래됐다”며 “무슨 큰 돈을 번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더군다나 정씨는 ‘모닥치기’와 구분되는 ‘모다치기’라는 명칭을 사용해왔다.

‘모닥치기’라는 이름의 상표가 특허청에 등록된 것은 2011년 6월. 상표권자는 제주시에 거주하는 A(48)씨다.

우리나라는 상표권의 경우 먼저 출원한 사람에게 우선권을 주는 ‘선(先) 출원주의’를 택하고 있다. 창업 초기 웬만한 업체나 동네 영세 식당들은 상표권을 챙길 여력이 많지 않아, 상표권자 측에서 이런 빈틈을 노리기도 한다.

이 같은 ‘후(後)사용자의 선(先)출원’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무효소송을 한다고 해도 법리다툼에 따라 승리를 장담할 수도 없다. ‘원조’가 ‘피고’가 되거나 벌금을 내야하는 상황에 놓이는 경우도 있다.

실제 제주지역 분식집에서는 ‘모닥치기’ 또는 ‘모다치기’라는 이름의 메뉴가 널리 판매되고 있다. 떡볶이에 김밥, 튀김, 계란, 만두, 순대 등을 한 접시에 내놓는 메뉴로, 누가 맨 처음 이 음식을 시작했는지는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다.

원조격으로 꼽히는 서귀포매일올레시장 내 한 분식점은 1998년부터 ‘모닥치기’라는 명칭을 사용했다고 밝히고 있다.

또 다른 원조격으로 알려진 서귀포시내 한 분식점은 자신이 내용증명을 보낸 것으로 오해한 다른 업주들의 항의전화를 받느라 진땀을 빼기도 했다.

‘모닥치기’가 제주지역 분식점에서 흔하게 판매되는 만큼 정씨와 같은 사례가 속출할 전망이다.

A씨의 법률대리인인 H변호사는 18일 <제주의소리>와 전화 통화에서 “전국 체인점을 가진 대형업체들이 ‘모닥치기’를 무단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의 명칭 도용을 막자는 취지”라며 “(상표를 출원한)당사자도 웬만해서는 합리적으로 합의를 하려고 하지 무리한 금액을 요구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전국적으로는 총 13곳, 이 가운데 제주지역에는 5곳에 내용증명을 보냈다”며 “현재 진행 중인 만큼 그 수가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제주의소리>는 문제를 제기한 당사자인 A씨와 수 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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