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44_218278_4735.jpg

[초점] 판결문 없는 재심청구 전국 첫 사례...변호인 "고문 등 증거 충분" 법원 고심 클 듯 

폭도로 내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한 제주4.3 수형 생존자 18명이 4.3당시 불법적인 군사재판에 불복해 70년만에 재심 청구에 나서면서 실제 재판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판결문이 없는 사건에 대한 사실상의 첫 재심 청구이고, 군법재판 사건을 일반 법원에 청구한 특이 사례여서 재심 개시결정 여부를 두고 법원의 고민도 깊어질 전망이다.
 
양근방(85) 할아버지 등 제주4.3 수형인 생존자들은 19일 제주지방법원 민원실을 찾아 ‘4.3수형 희생자 불법 군사재판 재심청구서’를 직접 접수했다.
 
재심을 청구한 18명은 1948년 12월 제주도계엄지구 고등군법회의와 1949년 7월 고등군법회의에서 내란죄 등의 누명을 쓰고 최소 1년에서 최대 20년까지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4.3수형 생존자들은 영장없이 임의로 체포됐고, 재판절차 없이 형무소로 끌려갔다. 이송된 후에야 자신의 죄명과 형량을 통보 받았다.
 
1948년부터 1949년 사이 불법 군사재판으로 사형과 무기징역, 징역형을 선고 받은 희생자만 2530여명에 달한다. 이중 상당수는 복역 중 처형을 당하거나 행방불명됐다.
 
문제는 재심 청구의 근거가 되는 기소장과 공판조서, 판결문 등 입증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군법회의 유일한 자료는 정부기록보존소가 소장한 수형인 명부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새정치국민회의 제주 4.3사건진상조사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이던 1999년 정부기록보존소의 보관창고를 뒤져서 군법회의 수형인명부를 처음 발견했다.
 
수형인명부는 4.3사건 군법회의의 내용과 경과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공식 문서다. 이 명부를 제외하면 재판과 관련한 어떤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
 
당시 군법회의의 근거가 된 국방경비법 제81조, 83조에는 소송기록의 작성과 보존의무를 명시하고 있지만, 공판조서와 예심조사서는 빠졌고 판결문 역시 작성되지 않았다.
 
재심 청구를 위해서는 청구 취지와 재심 사유를 구체적으로 기재한 재심청구서에 원심판결의 등본, 증거자료, 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다만 형사소송법 제422조(확정판결에 대신하는 증명)에는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에는 그 사실을 증명해 재심의 청구를 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제420조(재심이유) 제7호에는 ‘공소의 기초가 된 수사에 관여한 검사나 사법경찰관이 그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한 것이 확정판결에 의해 증명된 때’를 재심 사유로 명시했다.
 
법률 대리인들은 수형인 명부와 4.3진상조사를 통해 군법회의 사실이 확인됐고, 생존자 진술을 통해 당시 구속과 재판의 위법성이 인정돼 재심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변호인측은 “당시 경찰 등이 청구인들을 불법 감금하고 폭행하는 등 직무상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확정판결을 대신할 정도로 증명된다”며 “법률상 장애로 인해 확정판결을 얻을 수 없는 때에 해당되는 만큼 재심 사유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실제 법원은 2009년, 유신정권 시절인 1974년 대통령긴급조치 위반죄로 실형을 선고 받은 A씨의 재심 청구사건에 대해 당시 경찰의 구타와 가혹행위 등을 이유로 ‘확정판결을 대신할 정도로 수사관들의 범죄가 증명됐다’며 재심 개시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군법회의에 따른 판결을 군사법원이 아닌 일반 법원에 청구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변호인측은 1심 법원에서 재심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애초 변호인측도 군사재판에 따른 재심 사건을 일반 법원에 청구하는 점을 두고 고민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리검토 과정에서 변호인단은 국방경비법이 법률로서 효력을 갖지 못하면 이 사건 군법회의의 당위성도 없다고 봤다. 이마저 폐지된 이상 일반 법원의 재심 청구는 문제가 없다는 판단이다.
 
헌법 제27조는 ‘군인 또는 군무원이 아닌 국민은 중대한 군사상 범죄나 비상계엄이 선포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군사법원의 재판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4.3수형 생존자들의 재심 청구에 따라 법원은 관련 자료를 검토하고, 개시 결정을 판단하기 위해 심문기일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검찰과 변호인간의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법원이 개시 결정을 내리면 변호인측은 증인신문 등을 통해 군법재판의 부당성을 입증하게 된다.
 
반대로 검찰은 당시 재판 기록을 찾아 이에 대응해야 한다. 이 경우 국방부와 행정자치부 등을 통해 4.3 군법재판에 대한 추가 자료가 등장할 수도 있다.
 
변호인측은 “법조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재심 청구사건이어서 법원의 고민도 깊을 것”이라며 “재심 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군법회의 자체를 무효화 하는 행정소송까지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