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제주신화의 재발견' 토론회에 다녀와서

'1만8천 신들의 고향'. 10년 전 제주에 이주했을 당시 나를 제주 신화의 세계로 인도한 말이다. 깜짝 놀랐다. 1만 8천 신이라니! 주몽과 단군신화를 떠올리며 척박한 제주 땅에 많아도 너무 많은 신들의 존재에 어안이 벙벙했다. 매년 정초에는 수만 명의 도민이 마을의 신당(神堂)을 찾고, 당에서는 심방(무당)의 굿판이 벌어졌다. 제주의 신화는 바로 이 굿판에서 심방에 의해 구전 전승되었다. 제주 신화는 '제주의 굿'에 고스란히 녹아있었고, 특히 여성이 당당히 주연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제주 신화의 매력에 빠진 나는 관련 도서를 섭렵하기 시작했다. 마을굿은 물론 탐라문화제나 해녀축제에서 공연하는 굿도 찾아다녔다. 한국의 변방 제주에서 화려한 신화의 꽃이 피었음을 알게 되었다. 제주 신화는 서사문학으로 박제된 기록이 아니고 민간신앙을 통해서 사람들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장에서는 젊은 제주인들을 만나기 힘들었다. 노년층과 관광객, 취재 기자들로 채워진 굿판을 보면서 씁쓸함을 느꼈다. 

19일(수) 도의회에서 열린 '제주신화의 재발견' 토론회에 방청객으로 참석했다. 제주신화 연구가 김정숙과 웹툰 <신과 함께>로 대박을 친 만화작가 주호민이 발표자였기에 놓칠 수 없었다. 김정숙의 신화 강의는 도서관 인문학 특강으로 종종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제주어로 맛깔나게 강의하는 신화이야기는 한마디로 제주인의 삶과 문화 그 자체였다. 그녀는 제주 신화를 매력적인 문화상품으로 개발하기 위한 전략을 제시했다. 그 일례로 제주 신화를 모티브로 한 가장 성공적인 문화콘텐츠 개발 사례로 일컬어지는 <신과 함께>의 창작과정을 작가인 주호민이 소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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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귀포시 성산읍 주민 성경미.
제주 신화를 문화콘텐츠로 개발하여 상품화하는 전략은 환영할 일이지만, 보다 신중했으면 한다. 우리는 현대화라는 미명하에 하늘과 땅을 시공간으로 거침없이 생활한 옛사람들과 단절되었다. 우리의 신화를 잃었다. 우리가 문명을 일구기 위해 잃어버린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고, 신화적 상상력을 회복하는 것이 먼저다. 신화에 대한 이해와 사랑 그리고 긍지가 제주 전체에서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제주도민들이 신화에 무지하고 신화가 전승되는 굿판을 외면하면서, 단순히 신화를 문화콘텐츠로 만드는 일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쌀과자가 제아무리 맛나도 주식이 될 수는 없다. 먼저 원재료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먼저다. 김정숙 또한 주먹구구식의 급한 개발이 아닌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접근하기를 제언했다. 제주는 이미 섬 전체를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유린했다. 제주의 정신인 문화를 상품으로 개발하는 지금은 조금 더 신중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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