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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탐라미술인협회는 22일 아트스페이스C에서 4.3미술제 좌담회 <담소(談笑)> 두 번째 행사를 개최했다. ⓒ제주의소리
4.3미술제 좌담회 <담소> 두 번째...시간·노력 들여 공동체와 함께하는 예술 ‘공감대’

하루, 한달, 일년이 다르게 도로가 넓어지고 건물이 들어선다. '이주'라는 단어가 이제 더 이상 어색하지 않을 만큼 제주는 유래없이 빠른 변화와 직면하고 있다. 이런 변화 속에 '예술'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며 미래를 추구하는 공동체적 역할을 예술과 예술공간이 추구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사)탐라미술인협회는 22일 아트스페이스C에서 4.3미술제 좌담회 <담소(談笑)> 두 번째 행사를 개최했다. 이날 좌담회서는 제주 비영리창작공간 문화공간 양의 큐레이터 김연주 씨와 대표 김범진 씨, 《제주 생활사》의 저자이자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고광민 씨가 대담자로 참석해 ‘공동체를 위한 문화공간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문화공간 양 관계자들은 제주시 화북동 거로마을에 자리 잡은 자신들의 사례를 들었다. 지금 시대에 문화공간과 예술이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시간이란 절대적 가치를 공동체와 공유하며 함께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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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연주 큐레이터. ⓒ제주의소리
김연주 씨는 “문화공간 양이 문을 연 지난 2013년부터 여러 전시를 해오면서 가지고 있던 생각은 특수성을 가지고 보편적인 공감대로 이야기를 해보자는 것”이라며 “큰 그림이 아닌 공동체 안에서 예술과 예술가가 무엇을 할지 끝임 없이 고민하면서 우리 공동체의 이야기를 해보자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김 씨는 “예전 서당, 공회당 같은 공간이 현재 문화적 활동의 일부를 담당하지 않았을까? 그런 일부 역할을 지금 문화공간 양이 하고 있다. 물론 계몽주의적인 태도로 주민들을 가르치려 하고, 예술적인 의미를 전파 하려는 자세가 없었던 것은 아니”라며 “이제는 공간과 예술과 주민이 함께 어우러져서 하나로 가는 고민을 한다”고 방향을 제시했다.

김범진 대표는 문화공간 양이 자신의 외조부(김병하)가 살던 집이었고, 오랫동안 주민들이 사랑방처럼 드나들던 공간이라는 역사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러면서 예술이 단순히 과거를 복원하는 게 아닌, 현재와 미래를 연결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그는 “객관적인 기록뿐만 아니라 개개인이 모인 공간(마을)의 기록까지 함께 중첩 되서 연결돼야만 나라는 개인이 누군지 질문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점점 사라지는 제주 마을은 현재와 미래까지 여러 가지 영향을 준다”며 “우리는 과거를 어떻게 변경시키고 현재 것으로 만들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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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범진 대표. ⓒ제주의소리
김 대표는 지금도 문화공간 양에 있는 벽시계의 사연을 설명했다. 외할아버지께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칠 때 상으로 받는 벽시계인데, 그 당시만 해도 마을에 한 대 뿐이었다. 그래서 아이가 태어나고, 부모가 돌아가는 일이 벌어질 때마다 문을 두들기며 시간을 확인하러 찾았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벽시계가 마을 사람들의 죽음과 탄생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 이건 단순한 시계 이상으로 팽나무 아래나 굿판 같이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존재였다는 것이다. 전 단순히 예술을 형식으로만 바라볼 때 너무나 많은 것을 놓친다고 생각한다. 예술은 현 시대의 삶을 더 가까이 봐야 한다”며 “마을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옛 것을 최대한 지킨다는 취지도 좋지만, 변해가는 거로마을 뿐만 아니라 제주 전체에서 예술과 예술공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중요한 건 변화는 변화대로 인정하면서 역사·풍토를 매개로 예술과 삶이 같이 이야기하는 ‘시간’이 더 많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광민 씨는 국내 대표 화가인 김환기가 태어난 안좌도 사연을 들면서, 한 지역 공동체가 진정 추구해야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되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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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광민 연구원. ⓒ제주의소리
고 씨는 “신안군 안좌도 마을은 바위산과 마주하고 있는데, 오래 전 ‘바위가 얼굴을 드러내면 인물이 생기지 않는다’고 알려져 마을사람들이 공동으로 산을 구입하고 바위 앞에 커다란 소나무 숲을 만들었다. 그 뒤에 김환기가 태어났다”며 “그런데 1960년대 자동차를 싣고 다니는 배가 등장하면서 주민들이 소나무를 베고 그 돈으로 선착장을 만들었다. 실망한 김환기는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 미국으로 떠나 생을 마감했다”고 안타까워 했다.

더불어 “옛 제주 사람들은 투박하지만 여러 방법으로 희노애락을 공유했다. 함께 장례를 치루고 팽나무 아래서 대화를 나누며, 굿도 다함께 참여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시대가 변하면서 이런 역할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며 “문화공간 양처럼 공동체와 결합하는 예술공간 역할이 더욱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한편, 탐라미술인협회는 세 번째이자 마지막 좌담회를 29일 오후 3시 같은 장소에서 진행한다. 제주미술협회, 탐라미술인협회 회장이 참여해 지난 30년간의 제주 미술계 역사를 살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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