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고 싶은 제주가 아닌 보아야 할 제주를 보다. ⓒ정신지

[제주밭담 시간여행] 제주 하르방의 제주'담'론

제주밭담이 ‘세계중요농업유산(GIAHS)’으로 지정되고 3주년을 맞이했다. 기나긴 시간 속에서 제주의 자연과 사람들의 생활에 보이지 않는 질서를 만들어온 제주밭담은, 이제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물려줘야하는 소중한 인류의 유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제주밭담을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사람들은 제주밭담을 ‘흑룡만리‘라 부른다. 검은 현무암의 돌담이 구불구불 길게 이어지는 풍경이 마치 살아 꿈틀대는 흑룡의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섬 곳곳의 밭을 에워싼 이 돌담의 정확한 길이는 알 길이 없으나 그 길이는 약 2만2천km 정도로 추정된다. 밭담을 일렬로 펼쳐 길이를 잰다니, 다소 우습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지구 둘레의 반 정도를 밭담으로 쌓을 수 있다고 상상해 본다면, 만리장성 저리가라 인 것이 우리의 제주밭담이다. 

너무나 친숙해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은 비단 밭담의 길이뿐만이 아니다. 농사짓는 삼촌(어르신의 제주어)들께 밭담이 무어냐 물으면, 대부분이 ‘내 밭과 놈(남)의 밭을 경계 짓는 선’이라 대답한다. 하지만 밭담은 경계를 ‘나누기’보다 수많은 것들을 ‘더하고’, ‘연결해’ 왔다. 산과 바다, 자연과 인간, 개인과 공동체를 연결하며, 그곳에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겹겹이 더하고 쌓아왔다.  

시공을 초월한 수많은 이야기가 마치 조각보처럼 엮인 제주밭담은, 하늘에서 새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전체가 보여 오고, 돌 사이의 구멍을 통해 가까이 들여다보았을 때 진정한 가치를 이해할 수 있다. 일상의 풍경인 제주밭담이 세계인의 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진정 축복할 일이다. 하지만, 유산은 ‘물려받아 물려주는 것’이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제주밭담의 ‘무엇을’ 물려받아 ‘어떻게’ 물려줄 것인지, 모두가 함께 고민해 볼 시간이다. 대답은 멀리에 있지 않다. 밭담이 있는 곳에는 늘 길이 있다.  

본 연재는 밭담길을 따라 걷다 만난 우리네 삼촌들에 관한 것이다. 밭담과 함께 섬의 살림을 일구어온 한 사람 한 사람의 제주 농민들에게, 미처 보물인줄 몰랐던 보물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들의 역사가 곧 제주밭담의 역사이고, 삼춘들의 살아 온 이야기 속에 우리가 후세에게 들려줄 밭담의 소중한 유산이 숨겨져 있다. 

하르방의 <제주'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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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돌아가신 돌담 장인. ⓒ정신지

"... 게난(그러니까), 알로도(아래에도) 돌. 우로도(위에도) 돌. 사는 디도(곳도) 돌. 산에도 바당(바다)에도 돌. 검질매는(풀 베는) 바티도(밭에도) 돌. 사방천지 돌 어신 디가(없는데가) 어디 셔게(어디 있어)?"

애월읍 중산간 마을에서 평생을 석공으로 살다가 돌아가신 하르방의 말씀이다. 듣고 싶어도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이야기가 늘어나는 것은 참으로 큰 슬픔이다. 하지만 생전에 그를 만났다는 것을 행운으로 여기며, 떠난 그의 흔적을 찬찬히 되새겨 본다. 

하르방 말씀에 의하면 제주는 살아있는 '큰 돌'과, 거기서 잘려나간 '작은 돌'로 이루어진 것이라 한다. 송두리째 지구에 붙어 바다 위에 모습을 드러낸 한라산은 그가 말하는 '큰 돌'의 꼭대기이다. 백록담에서 부터 해안가 바다 속까지 검게 흘러 깊이 뿌리내린 큰 돌을 그는 '산 돌(살아있는 돌)'이라 말했다. 제주사람들은 그 검고 큰 화산암 덩어리를  '빌레'라 부른다. 하르방은 살아있는 큰 돌을 제외한 모든 '작은 돌'은 '죽은 돌'이라 한다. 잘려나간 돌에는 뿌리가 없으니 생명도 없다. 그러니 마음대로 이용해도 괜찮았었다고 그는 말했다. 섬 자체에 생명이 깃들어 있다는 평범한 제주 노인의 비범한 우주관에 턱하니 무릎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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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담 사이를 걸어가는 어르신. ⓒ정신지

…그때, 마을이 몬딱(모조리) 불 타비연(불에 타서)... 다덜(다들) 살아보잰(살려고) 알녁더레(아랫마을로) 소까이(피신) 갔주게(갔지). 그디(거기) 초등학교에 강(가서) 살아신디(살았는데), 것도(그것도) 뭐 아주 잠시라. 선생님들이 몬딱(죄다) 끌려강 (끌려가서) 죽고, 학교도 다 불 태와부렀주게(불살라버렸어). 사람들도 많이 죽고. 남은 사람들이 갯가(해안가)에 강(가서) 돌담 위에 새(짚)를 얹은 엉성한 초집(초가집) 지성이네(짓고), 그디(거기) 곱앙(숨어) 살았주게(살았지). ‘함바집’이엔(이라고) 헌(하는) 집. 

그때 제일 처음에 한 일이 밭담 허물엉(허물어) 성담을 담는(쌓는) 거라나서(거였어). 남녀노소 할 것 어시(없이) 바티(밭에) 신(있는) 돌 봉가당이네(주어다가) 담을 다와신디(쌓았는데), 아마 그게 내 나이 아홉에 처음 다운(쌓은) 담일거라. 겅행(그러고 나서) 사태(4.3사건) 끝나난(끝나니), 마을로 돌아왔주게(돌아왔어). 왕 보난(와서 보니) 뭐가 셔(있어)? 아~무것도 어신(남지 않은) 마을을 재건허잰허난(하려니까), 또시(다시) 제일 먼저 한 것이 담을 쌓는 일이라. 집 만드는 ‘축담’, 길 만드는 ‘올렛담’, 화장실에 ‘통싯담’, 먹고 살잰(살라고) 밭 맹글엄시민(만들면) 그딘(거긴) 또 ‘밭담’, 죽은 마을 사람들 산(무덤)을 맹글멍(만들면서) ‘산담’... 아이고 이추룩(이렇게) 고람시난(이야기하자니) 그 시절부터 이제꺼정(까지) 돌담만큼은 셀 수도 어시(없이) 다왔쪄(쌓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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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에 기대어 쉬는 어르신. ⓒ정신지
하르방은 1940년 3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아버지와 할아버지, 게다가 남동생까지 일찍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증조할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증조할아버지는 4.3사건 때 돌아가셨다. 어린 그였지만, 집안의 모든 남자와 마을의 많던 남자들이 이유 없이 사라져버리는 것을 보고 자랐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하르방을 사람들은 '밭가는 장남'이라 불렀다. 그만큼 마을의 귀한 일꾼이었던 것이다. 어린 아들이 혼자 나르지 못하는 쟁기를 어머니가 밭에 가져다주면, 작은 꼬마의 몸으로 끙끙거리며 그녀를 도와 밭을 갈았다. 세상의 어떤 어머니가 아직 초등학생인 외아들에게 고된 일을 시키고 싶었겠느냐마는, 소도 없고 일꾼도 없어진 마을에서는 삶을 일구기 위해 모두가 일했고, 그것이 당연했다. 있는 사람은 베풀고 없는 사람은 서로 도우며 살았던 인정 많던 시절이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자, 새마을운동이라는 이름하에 곳곳의 돌담이 허물어지며 마을의 모양새가 조금씩 달라져갔다. 초가집 돌담 사이사이에 시멘트를 바른 집이 생겨나고, 흙길 위로 미끈한 새 길들이 생겨났다. 큰 길을 내기 위해 올렛길이 사라지기도 했다. 풍경만 달라진 것이 아니다. 서서히 사람들의 직업이 변했고 문화가 달라졌다. 집안의 농사일이 대물림 되는 일이 줄었으며, 자식들은 시로 나가 가족을 일구고 일자리를 구했다. 하지만 그는 그저 어머니 곁에서 묵묵히 농사를 지으며 틈틈이 돌담을 쌓는 돌챙이(석공)의 일을 했다. 그렇게 하르방이 돌을 쌓아 지은 집만 여섯 채. 그 집에서 하르방은 멀리 중국에서 시집 온 며느리들과 함께 농사일과 식당일을 하며 평화롭게 살다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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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평생 돌을 만진 제주 석공의 손. ⓒ정신지

...모르는 사람들은 돌담이 그냥 아무 돌이나 봉강(주어) 왕(와서) 아무추룩(아무렇게나) 다우민(쌓아올리면) 되는 중(줄) 알주게(안다). 협동해서 다우민 금방 다와지는 줄로(쌓이는 줄) 알아. 겐디(하지만) 돌 하나하나에 다 생각이 들어이신(들어있어)거라. 여럿이 같이 다울(쌓을) 적에는, 나가 아맹(아무리) 잘한댄(잘한다고) 해도, 놈(다른 이의) 허는(하는) 것도 영(이렇게) 잘 베리멍(보면서) 해사는(해야하는) 거주게. 혼(한) 사람이 잘못허민(하면) 힘들게 쌓아놓은 것이 한방에 무너지거든. 

...경허곡(그리고) 요즘에는 돌을 기계로 반듯하게 잘랑이네(잘라서) 쌓는 것도 있지만, 경(그렇게) 멋지고 튼실해 보이는 것이 꼭 존(좋은) 것만은 아니라. 오히려, 고망(구멍)이 뚫려서 호끔(조금) 영 서툴어 뵈는(보이는) 담이 강한 거주게. 게난(그러니) 뭣이 비결이냐고 물으난(물으니) 고람주만은(말하는 거지만), 담은 고망이 시난(있으니까) 쓰러지지 않는 거. 또 그것이 직선으로 반듯하지 않고 구불구불 다와져 이시난(쌓여져 있으니) 비바람이 불어도 견뎌내는 거라. 겐디(근데) 요즘 시에서 용역을 보내서 마을에 새로 쌓이는 돌담은 그저 경치 좋으랜 담는(쌓는) 거주게(거지).

그렇게 평상에 앉아 종일 돌담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화창한 여름날의 기억을 내게 남겨주신 그는, 힘이 다 할 때 까지 농사를 지으며 담 쌓는 일을 했다. 하르방은 가고 없지만, 그가 남긴 마을 곳곳의 돌담은 흐트러짐 하나 없이 건재하다. 그 담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돌담이 사라진다고? 허허허, 게민(그러면) 제주도가 사라지주게(사라지는 거지)!” 하며 크게 웃던 그의 얼굴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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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중산간의 밭담 풍경. 잔잔한 잣돌로 쌓인 잣담이 낮게 쌓인 것이 특징이다. ⓒ정신지

‘죽은 돌’과 ‘산 돌’ 이라는 세계관을 경험하지 않고 살아가는 우리와는 달리, 제주의 노인들은 사방에 널린 크고 작은 돌을 옮기고 치우며 살림을 일구어 왔다. 다시 말해, 그가 말한 죽은 돌이 집과 밭이 되고 길이 된 것이 제주의 모양새다. 서로 다른 다양한 존재가 만나는 접점들의 모임이 바로 제주의 돌담이다. 그래서일까. 제주 사람들은 담을 '쌓는다' 하지 않고, '다운다', '담는다' 한다. 그것은 어쩌면, 이러한 각자의 다름이 서로에게 가 '닿는', 혹은 맞'닿는' 것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를 일. 수직적인 경제논리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형형색색의 가치들이 서로에게 가 ‘닿이며’ 시공의 흔적을 ‘담아’ 온 것이 제주밭담이고 우리의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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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지 인터뷰 작가.
넓은 곳을 두루두루 걸어 온 사람의 세계관보다, 때론 한 곳에 점을 찍고 한 우물을 파며 살아온 이의 세계관이 필요할 때가 있다. 지금이 바로 그 시점이다. 세계농업유산으로 지정된 제주밭담을 '누구에게 어떻게 물려줄 것인가?'를 고민하기 이전에, 아무데나 있으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보이던 작은 돌맹이에 관한 이야기를 제주의 노인들과 나누어봄은 어떨까. 그들의 평범하지만 결코 순탄치 못했던 삶의 파편 속에, 어쩌면 우리가 아직 물려받지 못한 소중한 가치가 숨어있을지 모를 일이다. /정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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