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밥상 이야기> (31) 고사리육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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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사리육개장. ⓒ 김정숙

제주의 대표 산나물은 고사리다. 봄철 잦은 비 날씨와 안개는 제주에만 있는 ‘고사리장마’다. 고사리가 많이 나고 잘 자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른 봄 아래쪽부터 나기 시작한 고사리는 봄을 따라 한라산 중턱 깊은 숲까지 올라가며 여름이 보일 때쯤 끝이 난다. 지금은 나들이 삼아, 소일거리 삼아, 재미삼아, 체험으로 간다.

어떤 날은 고사리보다 사람이 더 많게 보이는 들도 있다. 그렇게 꺾어도 여름철이면 들은 활짝 핀 고사리로 가득해 있다. 고사리는 꺾이고 꺾이면서 아홉 번이나 나온다고 한다. 그래서 자손이 번성하라는 의미로 제사상에는 꼭 올려야 하는 나물이다.

제주 고사리가 유명한 덕에 봄철 고사리로 얻는 수익은 꽤 쏠쏠했었다. 학교가지 않는 날 고사리 꺾으러 가시는 할머니를 따라가면 꽤 많은 용돈이 생겼다. 할머니가 숨겨놓은 고사리 밭에서는 할머니 보다 더 많이 고사리를 꺾기도 했다.

큰 비가 아니면 비오는 날도 갔다. 비오는 날이나 안개 속에서는 고사리가 더 많이 보였다. 안개 속에 고사리를 꺾다가 길을 잃고 산 아래로 흐르는 내를 따라 걷다 보면 이웃마을에 도착 할 때도 있었다. 고사리에 대한 추억은 봄마다 고사리처럼 솟는다.

고사리를 잘 꺾는 아낙들은 자기만 아는 고사리 밭이 있다. 며느리에게도 알려주지 않는다는. 내가 사는 마을도 고사리가 많이 난다는 곳이다. 이맘때면 고사리 많이 꺾었느냐는 인사를 종종 받는다. 고사리 밭을 알려 달라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고사리에 이력이 난 나는 고사리 꺾기를 즐기지 않는다. 숨겨 놓은 고사리 밭도 없다. 아무 곳이나 데려가도 초보자들에게는 기본을 해 주는 들이, 고사리가 아직도 있어 고마울 뿐이다.

고사리는 생으로 요리하기 보다는 말려두고 일 년 내내 먹는다. 생으로 먹을 때는 삶아서 씁쓸한 맛이 빠지도록 여러 번 물을 바꾸면서 우린다음 요리한다. 말릴 고사리는 잘 삶아야 한다. 겉모양은 흐트러지지 않으면서 손끝으로 잡으면 쉽게 물러질 정도로 삶아서 말린다. 말린 고사리는 장마철 습기를 조심하고 좀 먹지 않도록 밀봉포장을 하는 게 좋다. 먹을 때는 물에 담가 불리고 삶아서 다시 물을 갈면서 담가 잘 우려서 쓴다.

고사리는 특별한 맛이 없다. 양념 맛대로 같이 쓰는 재료 맛대로 맛을 낸다. 보말과 같이 볶으면 보말 맛, 돼지고기와 같이 볶으면 돼지고기 맛이다. 아무재료나 잘 어우러지는 식품이다. 뭐니 뭐니 해도 제주를 대표하는 고사리음식은 ‘고사리육개장’이다.

돼지고기 뼈나 고기를 푹 삶아 우려낸 육수에 찢은 살코기와 으깬 고사리를 넣고 끓인 탕이다. 다진 마늘을 넣고 소금이나 간장으로 간 한다. 다 될 무렵 메밀가루를 물에 풀어 넣고 국물을 걸쭉하게 끓여낸다. 고춧가루, 깨소금, 송송 썬 달래나 쪽파를 곁들인다.

집안 대소사에 가마솥에서 끓인 고사리 육개장은 정말 따뜻하고 맛있다. 밥은 관두고 고사리육개장만 달라는 사람들도 많았다.

잔치집, 상가집이 다 전문화된 ‘식장’으로 옮기면서 고사리육개장을 맛볼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작정하고 전문 음식점을 찾아야 하는 수고를 감당해야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한 가지가 편해지려면 한 가지를 내줘야 한다.

지난 어느 날 하루에 네 군데 결혼 피로연을 다녀왔다. 판박이 같은 음식을 네 번 먹었다. 누군가 짜 놓은 대로 사고, 짜 놓은 대로 먹고, 짜 놓은 대로 살다가 가게 되는 것인가. 구속의 자유인가, 자유의 구속인가. 끈질기게 솟는 고사리를 보며 생각이 많아지는 봄이다. 고사리육개장을 못 먹어서인가... / 김정숙(시인)

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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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 시인은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출신이다. 200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에서 당선됐다. 시집으로 <나도바람꽃>을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30여년 동안 제주도농업기술원에서 일하다 2016년 2월 명퇴를 하고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에서 귤 농사를 짓고 있다. <제주의소리>에 ‘제주 밥상 이야기’를 통해 제주의 식문화를 감칠맛 나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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