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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다 죽은 대장부나, 기다 죽은 밭갈 쇠나"

김길웅 kimku918@naver.com 2017년 05월 10일 수요일 00:15   0면
가벼움과 속도가 지배하는 요즘, 옛 것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더구나 그 옛 것에 켜켜이 쌓인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응축돼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 '옛 것을 빌려 지금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다. 고문(古文)에 정통한 김길웅 선생이 유네스코 소멸위기언어인 제주어로, 제주의 전통문화를 되살려 오늘을 말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김길웅의 借古述今] (19) 먹다 죽은 대장부나, 기다 죽은 밭갈 소나

평생 호의호식하며 부귀영화를 한 몸에 누리던 사람이나, 죽도록 일만 하면서 생고생한 사
람이나 죽기는 매일반이라는 말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선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말로 재해석할 수 있다.
  
제주 목사로 있던 이약동(李約東, 태종 16~성종 24)은 천성이 청렴해서 다만 가죽 채찍 하나만 지녔을 뿐인데, 직을 떠남에 이르러 ‘이것 역시 제주도의 물건이다’ 하고 그걸 관아의 문루에다 걸어 두었다. 제주도 사람들이 그것을 보물처럼 간수해 매양 목사가 새로 부임할 적에 내어 걸었다. 해가 오래돼 채찍이 다 헐어 버리자 고을 사람들이 처음 채찍을 걸었던 곳에 그 사적을 그림으로 그려 사모하는 마음을 나타냈다고 다산(정약용) 선생은 전하고 있다.
  
또 30년이라는 긴 세월을 정승 자리에 있었던 황 희(1363, 공민왕12~1452, 문종2)는 벼슬하기 전, 포의(布衣)로 있을 때와 그 생활이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그의 큰아들이 새 집을 짓고는 낙성의 잔치를 베풀었을 때(정부의 관리들이 모두 참석했다), 느지막이 당도한 그는 집을 한 바퀴 둘러보고는 말없이 그대로 집을 떠났다. 신분에 어울리지 않게 지었음을 마뜩찮게 여긴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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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평생 흥청망청 사나, 소처럼 일만 하며 살다 가나, 죽어서 가는 곳은 하나다. 출처=pixabay.

그런가 하면, 청빈하게 일생을 살다간 율곡 선생은 시신을 쌀 수의(襚衣)마저 마련하지 못해 빌려서 염(殮)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후대의 이름 없는 사람도 마음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관직을 다해 초야로 돌아가는 맑은 선비의 행장은 모든 것을 벗어 던진 듯 조촐해서 낡은 수레, 한 필의 야윈 말인데도 그 산뜻한 바람이 사람들에게 향훈으로 스며드는 법이다.” 
  
이는 다산 선생이 『목민심서』에서 임기를 마치고 돌아가는 지방 수령이거나 목민관들의 귀장(歸裝: 돌아갈 차비를 함)을 표현한 글이다. 초라하기 짝이 없는 수레에 그나마 서책이 반 넘어 차지했다는 그들의 고아(高雅)한 행색을 보면 가슴이 절로 탁 트여 오면서 청량한 바람과 만나게 되며 사람의 값어치란 게 어떤 것인지를 일깨워 주준다. 아울러 사람됨의 자긍심을 느끼게도 해준다.

“청렴이란 목민관의 본질적 임무이며 모든 선(善)의 근원일 뿐 아니라 모든 덕의 근원이기도 하다.” 

『목민심서』의 말씀이다.
  
새삼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떠올리게 된다. 그분이 말한 무소유는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 함이 아니다. 꼭 필요한 만큼만 가지라는 의미다. 생전에 스님이 강원도 어느 화전민이 살던 집에 기거할 때, 하루는 세속에 일이 있어 황망히 집을 나서서 한참을 걸어 내려오던 중, 아차 하고 되돌아갔다지 않은가. 인연이 있어 받은 한란 분을 밖에 내놓은 채로 나왔던 것이다. 한란은 직사광선에 치명적이다. 

바로 되돌아가 난분을 안에 들이고 다시 길을 재촉한 스님, 얼마 후 그 난분을 한 도반에게 건네 버렸다 한다. 난분도 자신을 구속하니 소유로 여긴 것이다.

한 생애를 귀히 몸을 놓아 풍족하게 살 수 있으면 그보다 좋은 일이 없을 것이지만, 설령 가난 속에 구차한 삶에 생을 놓는다고 해서 그것을 놓고 가타부타 할 것이 아니다. 한평생 흥청망청 사나, 소처럼 일만 하며 살다 가나, 죽어서 가는 곳은 하나다. 그게 생멸이라는 자연의 순환법칙이 아닌가.
  
그럴진대 부와 권세를 한 손에 거머쥔 고관대작이라 위세 떨 일이 아니고, 천석꾼이라 해서 소작농을 하인 대하듯 안하무인으로 거들먹거릴 일이 아닌 게다.
  
되뇌거니와, 평생 잘 먹고 잘 입고 부귀영화를 누린 자가, 소처럼 일만 하며 산 자나 종국엔 매한가지다. 수저계급론이 입에 오르내리지만, 사람의 삶이란 저 하기 나름인가 한다. 중요한 것은 인생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전력투구 하는 성취욕이고 실천이다. 개천에서도 분명코 용이 난다.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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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길웅 시인. ⓒ제주의소리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모색 속으로>, 시집 <그때의 비 그때의 바람>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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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의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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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봉 2017-05-22 20:23:44    
훌륭한 조상님을 두었는데 후손은 왜 그럴까요?
11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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