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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자면 행정선인 추자호는 추자도와 부속 유인섬을 연결하는 유일한 연락선이다. 추자호의 운항을 맡고 있는 황필운 선장(49)은 이 배와 17년째 한몸이다. 추자호에는 한사코 사진촬영을 수줍어 피하는 박종율(39. 기관장)씨와 박현웅(39.갑판원)씨가 황선장과 함께 팀을 이뤄 운항을 책임지고 있다. ⓒ제주의소리

[섬, 추자도가 좋다] 17년째 추포도-횡간도 외딴섬 잇는 추자호 황필운 선장 

섬은 사람이 그립다. 뭍도 그립다. 그래서 사람과 뭍을 그리는 섬사람들에겐 ‘소금’ 같은 존재가 있다. 오랜 벗처럼 늘 외딴 섬을 찾아주는 연락선이다. 

제주 최북단 섬 추자도(楸子島). 본 섬인 추자도와 유인 부속 섬을 연결해주는 유일한 연락선인 ‘추자호’의 선장 황필운 씨(49)도 추자도에서 소금 같은 일꾼이다. 

황 선장은 고향 추자도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나이 삼십대 초부터 쉰을 맞도록 섬에서 다시 섬으로 오가는 길잡이 역할을 맡고 있다.   

매주 월·화·목·금요일 매주 5회(금요일 2회), 추자도와 부속 섬인 추포도·횡간도를 오가는 유일한 교통수단인 추자호의 운항을 17년째 책임 맡고 있는 황 선장과 함께 18일 오후 추자호에 기자는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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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자호에서 바라본 추포도(왼쪽)와 그 오른쪽으로 횡간도가 푸른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곳에 펼쳐져 있다. 횡간도 뒤로 어렴풋이 보이는 섬은 전라남도 보길도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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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포도 선창에 내린 생필품과 발전기 연료를 뒤로 하고 추자호는 다시 횡간도를 향했다. 깍아지른 절벽을 따라 생필품 운송을 위해 설치된 모노레일이 보인다. ⓒ제주의소리

금방이라도 속살을 보여줄 듯 청명한 하늘과 바다가 만난 날이다. 바다에 점점이 떠있는 섬들. 신선이 머물다 간 것 같은, 에메랄드 같은 푸른빛 바다는 눈이 부시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 소속 공무원 신분인 황 선장은 20대에 외항선을 타다 30대 초반에 고향으로 돌아와 연락선 선장이 됐다. 

사람이 그리운 섬과 섬 사이를 오가는 연락선을 강산이 두 번 바뀔 시간을 오롯이 책임지고 있으니 얼마나 많은 사연을 품고 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숱한 응급환자를 싣고 오갔고, 태풍 같은 기상악화로 고립됐던 섬에 생필품을 보급하던 일….

이날도 추포도와 횡간도로 보내는 연료와 생필품을 싣고 오후 1시30분 추자섬을 떠났다. 배에 실린 두루마리 화장지, 음료수, 소시지가 누구에겐 소소하고 하찮은 것들일 수 있지만 외딴 섬에 사는 주민들에겐 꼭 필요한 생필품들이다. 

추자도에서 뱃길로 15분을 달리는 추포도(楸浦島)에 닿았다. 추포도는 하추자도 예초리 포구 북쪽 바다에 있다. 추포도에 사람이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은 300여 년 전. 

이곳에 지씨 문중이 터를 잡아, 현재 추자도에 뿌리를 내린 지씨 문중 후손들의 시조는 추포도에 시작됐다.  

현재 ‘물질’과 ‘민박’으로 생계를 잇는 1가구 4명의 가족이 살고 있는 추포도에는 자가발전기로 전기를 생산한다. 이 섬에 한 달에 한번 자가발전기를 돌릴 수 있는 연료를 공급하는데 마침 오늘이 그날이다. 

연락선이 추포도에 닿기도 전에 한 주민이 선창에 나와 반갑게 배를 맞았다. 발전기를 돌릴 유류를 담은 플라스틱 기름통 수십 개가 선창 위로 금세 옮겨졌다. 배가 떠나고 나면 아슬아슬한 급경사를 따라 설치된 모노레일로 뱃머리에서 집 앞까지 생필품과 사람을 싣고 오르내린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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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횡간도 주민들이 수확한 톳과 미역을 내다팔기 위해 추자호에 싣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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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은 사람과 뭍이 그립다. 섬과 섬 사이를 연결해주는 연락선은 그래서 소금같은 존재다. 추포도와 횡간도를 들른 추자호가 추자도를 향해 가고 있다. ⓒ제주의소리

추포도에 잠시 머물렀던 추자호는 다시 뱃머리를 돌려 횡간도(橫干島)를 향했다. 횡간도 너머에 전라남도 보길도가 시야에 들어온다. 고산 윤선도가 유배왔던 보길도와 추자도의 횡간도가 바로 지척이었다. 

추자호가 횡간도 선창에 닿기도 전, 연락선을 기다리는 주민들이 선창에 나와 있다. 수확해 말린 ‘톳’과 ‘미역’ 포대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횡간도에 거주 중인 5가구 7명의 주민들이 땀 흘려 장만한 톳과 미역을 뭍으로 내다팔기 위해 연락선을 기다린다. 섬에 사는 강아지까지 덩달아 뛰어나와 연신 꼬리를 흔들어대기 바쁘다. 

연락선이 다시 뱃머리를 돌려 추자도를 향하는데도 아쉬운 듯 한참동안이나 주민들은 연락선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추자도는 모두 42개의 섬으로 형성된 군도(群島)다. 상추자, 하추자, 추포도, 횡간도 등 4개의 유인도와 38개의 무인도가 점점이 한 무리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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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자호 3인방은 늘 한팀을 이뤄 추자도 유인 부속섬을 누빈다. 맏형인 황필운(49. 사진 가운데) 선장과 박종율(39. 기관장. 사진 오른쪽)씨와 박현웅(39.갑판원)씨가 추포도 발전기 연료로 쓰일 유류통을 추자호에 싣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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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 소속 행정선 추자호. 16톤급. 승선원 12명. ⓒ제주의소리

이 연락선이 없었으면 추포도와 횡간도는 철저하게 고립된 외로운 섬이 되었을 것이다. 섬은 원래 외롭다 했던가. 그래서 연락선은 단순한 배가 아니다. 섬 주민들의 ‘발’이자 ‘대중교통’이다. 외로움을 달래주는 벗이다. 

황 선장은 “고향 추자도가 좋아 고향에 다시 돌아와 연락선 선장을 맡은지 17년째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이 섬에서 주민들을 위해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른다.”라며 “사람을 치유하고 위안을 주는 추자도에 꼭 한번 다녀가시길 권하고, 꼭 하룻밤을 머물다 가시라”고 권했다.   

포말로 부서지는 파도소리, 밀물과 썰물이 만들어내는 모진이 해안의 몽돌 합창을 듣노라면 시나브로 자연인이 된다. 여유와 느림의 미학이 있는 섬. 그 섬에 우직한 황 선장이 있어 더욱 아름답다. 추자도는 사람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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