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밥상 이야기> (33) 자리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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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리젓. ⓒ 김정숙

그리워하는 음식을 보면 그 사람의 고향을 짐작한다. 설령 그것이 없으면 못 견딜 만큼 좋아하는 게 아니더라도 말이다. 고운 정 미운 정이 섞여 더 진한 정이 드는 것처럼 냄새조차도 싫을 만큼 물린 음식은 평생 잊을 수 없다.

요즘이야 식생활이 양적 질적으로 풍부해져 그런 음식이 흔하지 않겠지만 그런 음식 하나쯤 품고 사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청장년 시절을 다 보내고 슬금슬금 추억을 꺼내먹기 시작 할 때면 누구랄 것도 없이 숟가락 들고 끼어 들 수 있기 때문이다. 맛 집 순례 자랑도 아닌데 저마다 할 말이 바쁘다. 그 시절이 통째로 그리워지는 건 두말 할 것도 없다.

제주사람들이라면 그 음식 중 하나가 자리젓이 아닐까. 자리젓과 김치로 달랜 보리밥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냥 생 젓갈로 먹기도 하고, 뜸 들이는 밥솥 귀퉁이에 쪄서 먹기도 하고, 다져서 식초와 깨, 쪽파, 부추 따위를 잘게 썰어 넣어 양념을 해서 먹기도 했다. 집집마다 취향은 제 각각이지만 봄마다 자리젓 담그는 일은 같았다.

자리돔은 검붉은 색에 빈틈없이 비늘을 붙인 작은 생선이다. 봄이 따뜻함을 넘어 더운 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는 계절과 함께 찾아오는 생선이다. 바다생선이라지만 그 크기가 남자 엄지손가락 내외이고 보면 참 작다. 머리가 삼분의 일이다. 좀 큰 것들은 골라 구이나 조림을 하기도 하고 중간정도의 것들은 가시 째 저며 회로 먹는다.

젓갈은 크기와 상관없이 담근다. 젓갈에 대한 취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소금을 적게 써서 빨리 발효시킨 것으로 단내가 나는 젓갈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소금을 조금 세게 써서 오래 발효시킨 젓갈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소금을 많이 쓰면 일 년이 되어도 자리돔은 그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대부분 젓갈이 그렇듯이 입맛을 당기지만 나트륨에 대한 부담은 감당해야 하므로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상온에서 발효와 저장성을 가지도록 하자면 적어도 자리돔 5킬로에 천일염 800그람 정도는 넣어야 한다. 그늘에서 두 달 정도면 발효되지만 소금을 1킬로 정도 쓰면 가을쯤은 돼야 익는다. 모름지기 비늘 있는 돔의 반열에 있는 생선 젓갈이다. 먹을 때마다 비늘이 걸리지만 비늘 째 담가야 맛이 제대로다. 비늘을 벗기고 담그려면 비늘을 벗기고 바닷물로 헹군 다음 담근다.

발효음식은 담가 발효할 때 양이 많을수록 잘 익는다. 자리젓도 한 번에 3킬로 이상은 담가줘야 한다. 바닷물에 헹군 자리돔에 분량의 천일염을 골고루 섞어 바락바락 주물러 항아리에 담고 공기는 통하되 해충이 드나들지 못하도록 입구를 잘 봉한다. 그늘에서 발효시킨다.

해마다 이렇게 반복하면서 자리젓을 담갔지만 이젠 어쩌다 몇 번 생각나는 음식일 뿐이다. 한 번 담그면 다 먹지 못하고 2, 3년 흐르다 보면 살은 거의 녹아 국물이 흥건해진다. 그 때는 잘 걸러서 액젓으로 사용해도 좋다. 액젓 위에 뜨는 기름을 잘 걷어내고 밀봉하면 상온저장이 가능하다. 여기저기 감칠맛을 더 해 주면서 자리젓은 젓갈로서의 생을 마감한다.

시간을 먹을수록 그 가치를 발하는 젓갈, 자신보다 다른 것을 빛나게 해주는 젓갈. 그 많은 젓갈 중에서도 자리젓은 제주 것이다. / 김정숙(시인)

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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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 시인은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출신이다. 200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에서 당선됐다. 시집으로 <나도바람꽃>을 펴냈다. 젊은시조문학회,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30여년 동안 제주도농업기술원에서 일하다 2016년 2월 명퇴를 하고 서귀포시 남원읍 수망리에서 귤 농사를 짓고 있다. <제주의소리>에 ‘제주 밥상 이야기’를 통해 제주의 식문화를 감칠맛 나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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